부적절한 장외 플레이, ‘옐로카드’ 쾅
![]() |
||
물론 예비명단은 말 그대로 ‘예비’일 뿐이다.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하지만 허 감독의 성격을 잘 아는 축구인들은 이번 명단에 담긴 의미를 이천수와 안정환이 잘 읽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정신력과 근성 그리고 투철한 국가관을 중시하는 허 감독이 당장의 전력 누수를 각오하고도 이천수와 안정환을 내친 건 ‘경고’라며 이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지난해 이름값에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을 남겼던 안정환의 대표 탈락은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지만 이천수의 탈락은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최근 네덜란드에서 보여준 경기력이 다소 기대 이하이긴 하나 현재 이천수를 대체할 만한 ‘국제용 측면 미드필더’가 한국에 별로 없는 상황이라 더욱 그렇다.
이천수의 대표 탈락은 축구 외적인 이유 탓이다. 본인은 억울하다고 말하지만 이천수는 최근 잇달아 구설에 올랐다. 9월에는 술집 여종업원을 때렸다는 신고가 있었고 12월에는 클럽에서 취객과 시비가 붙는 장소에 있었다.
이천수는 허 감독이 싫어할 만한 행동을 했다. 특히 술집 여종업원을 때린 일이 그렇다. 이천수는 하필이면 페예노르트 입단을 위해 네덜란드로 떠나던 지난해 9월 22일 아침에 일을 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천수는 22일 아침 7시 20분경 전날 밤 함께 술을 마셨던 술집 여종업원과 말다툼을 벌이다 상대 머리 뒷부분을 두 번 때렸다는 것이다. 화가 난 여자는 즉시 112로 신고했고 이후 고소까지 했다.
유럽 재진출을 위한 장도를 떠나던 날 사고를 친 이천수는 두 달 뒤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시즌 중 휴가를 내 한국으로 돌아왔다. 시즌 중 휴가는 흔치 않은 일이라 당시 이천수의 뜬금없는 귀국에 대해 여러 가지 소문이 돌았다. ‘여종업원 폭행사건 마무리 때문에 왔다’거나 ‘K리그 복귀를 위해 왔다’는 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천수는 12월 초 네덜란드로 돌아가면서 “진짜 쉬러 온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얼마 후 새로운 설이 나왔다. 현지 적응에 애를 먹던 이천수가 자신이 네덜란드로 떠난 뒤 외로움을 호소하던 연예인 여자친구를 위로하러 겸사겸사 귀국했다는 얘기였다. 물론 이천수의 에이전트는 이런 설을 부인했다. 하지만 “앞으로 이천수가 축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 것이다. 부모님이나 에이전트가 네덜란드로 가서 이천수 옆을 지킬 것”이라는 ‘뼈 있는 말’을 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전반기 시즌을 마친 이천수는 지난달 31일 구단으로부터 연말 휴가를 받아 귀국한 뒤 또 세인의 입방아에 올랐다. 귀국 당일 밤 강남구 청남동에 있는 C 클럽에서 지인들과 술을 마시다 다른 일행과 충돌을 빚었다.
이천수는 C 클럽에서의 일이 기사화되며 비난 여론이 일자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며 억울해했다. 이에 대해 축구계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많은 선수들이 가라오케도 가고 룸살롱도 간다. 그런데 이천수에 대한 일만 기사화되는 경우가 많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어 “이천수에 대한 잘못된 선입관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건 선수가 자초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재능 하나만 보면 이천수는 오히려 박지성보다도 나은 선수”라며 “이천수가 이번 대표 탈락을 자기성찰의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더는 자신의 재능을 쓸데없는 곳에 허비하면 안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핌 베어벡 감독 시절부터 대표팀에서 빠지며 2010년 남아공월드컵 출전에 빨간불을 켰던 안정환은 ‘허정무호 1기’에 뽑히지 못하며 ‘불명예제대’를 할 위기에 빠졌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이 떠오르는 최근 안정환의 처지는 사실 그가 자초한 것이다. 안정환은 2006년 독일월드컵이 끝난 뒤 유럽진출에 목을 매다 6개월을 쉬는 실수를 저질렀다. 30대의 나이에 소속팀 없이 반년을 쉬면 실력이 급강하한다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지만 꿈만 좇다 부진의 수렁에 빠졌다.
안정환의 지난해 성적은 참담한 수준이었다. 지난해 초 수원 삼성 유니폼을 입고 7년 만에 K리그에 복귀하며 주위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지만 컵 대회를 포함해 25경기에서 겨우 5골(그나마 정규리그 골은 없다)만 넣었고 경기력 점검 차원이긴 하나 한때 2군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대다수 전문가는 안정환이 6개월 동안 쉰 탓에 경기력이 예전보다 많이 떨어져 부진한 성적을 냈다고 하지만 일부는 안정환과 수원의 축구가 맞지 않은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전 시티즌 김호 감독은 “수원 차범근 감독이 구사하는 축구와 안정환의 스타일이 맞지 않다”며 선수와 구단 간의 궁합에 문제가 있음을 조심스럽게 지적했다.
안정환은 수원이 좋은 팀이긴 하지만 이적을 통해서 재기를 꿈꾸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지난달에는 부산 아이파크 및 제주 유나이티드와 이적 얘기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영입을 제안한 양 구단 관계자에게 측근을 통해 현실과 동떨어진 억 소리 나는 요구조건을 내걸었다.
제주 정순기 단장은 “선수로부터 직접 요구조건을 들은 건 아니지만 안정환의 몸값치곤 너무 많은 액수였다. 안정환이 유연한 자세로 협상에 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안정환은 K리그 안에서의 이적은 물론 일본프로축구(J리그) 재진출도 추진한다. 하지만 일본 쪽에서 생각하는 안정환의 적정 연봉도 부산이나 제주가 책정한 금액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과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 에이전트는 “송종국이나 이운재도 수원과 계약하면서 기본급 삭감을 받아들였다. 안정환도 이들처럼 냉정하게 자신의 현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안정환이 이번 겨울 지난 2006년 여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면 앞으로 대표 탈락보다 더한 일을 당할 수 있다. 재기 가능성이 있는 선수인 만큼 이보 전진을 위해 일보 후퇴를 하는 현명한 선택을 했으면 한다”고 충고했다.
전광열 스포츠칸 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