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덜도 말고 노사모만 같아라
▲ 내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왼쪽)-이명박(오른쪽) 진영의 팬클럽이 한바탕 진검승부를 피할 수 없게 됐다. 가운데 사진은‘노사모’. | ||
그러나 이들 팬클럽 간의 충돌은 유예됐을 뿐이다. 지난달 한나라당 홈페이지에서의 서로를 비하하며 ‘박빠’ ‘명빠’ 논쟁을 벌였듯이 어차피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양 진영의 팬클럽은 한바탕 진검승부를 피할 수 없다.
2002년 ‘노사모’는 대통령을 만들어냈다. 이들 양진영의 팬클럽도 그런 영광을 기대하고 세를 불려나가고 있다. ‘박사모’와 MB계열 팬클럽에게 그런 역량이 있을지 그 경쟁력을 살펴본다.
“미디어를 선점하는 자가 승리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선거 캠페인에서 금언으로 통한다. 97년 대선까지는 미디어의 중심이 신문과 방송이었다면 2002년 대선부터 인터넷이 그 중심이 됐다.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것도 인터넷 미디어였고 이것을 가장 잘 활용한 조직이 ‘노사모’였다.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인 ‘노사모’의 성공으로 이후 많은 정치인 팬클럽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더구나 2007년 대선을 1년여 앞둔 상황에서 대선주자들의 팬클럽도 이미 전투태세를 갖췄다.
한나라당의 박근혜 전 당대표를 지지하는 ‘박사모’는 그 규모나 조직면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2004년 3월에 만들어진 ‘박사모’는 현재 회원수 4만 3000명을 넘어서 대권주자들의 팬클럽 중 독보적인 위상을 과시하고 있다. 박 전 대표의 다른 팬 클럽들도 여럿 있지만 미미한 수준이고 ‘박사모’가 사실상 전국적으로 지부를 만들어 단일대오를 형성하고 있다.
그에 비하면 MB계열의 팬클럽은 ‘박사모’와 비슷한 시기에 탄생했지만 ‘명박사랑’ ‘MB와우리’ ‘애플명사랑’ 등으로 흩어져 있다. 뿐만 아니라 팬클럽들 간에 ‘공식 팬클럽’이라는 명칭을 둘러싸고 묘한 신경전도 있어 하나로 뭉치기가 쉬어보이지 않는다. 또한 MB계열의 팬클럽들의 회원수를 다 합해도 2만 명이 채 안 된다. 하지만 최근 MB계열의 팬클럽들은 연대를 위한 운영위원회를 결성해 한 목소리를 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명박사랑’의 임혁 대표는 ‘10만 대군 양성’ ‘5000 결사대’를 운운하고 있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차이를 박 전 대표가 이 전 시장에 비해 감성적인 온라인 성향에 맞는 콘텐츠를 가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전직 대통령의 딸이라는 점이나 일반인들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청와대 경험 등 대중을 자극할 요소들을 박 전 대표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대중들을 뭉치게 하고 박 전 대표에 대해 열광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전 시장의 경우 대중들이 지지를 보내는 주요한 이유가 경제실정에 실망한 사람들이 반작용으로 이 전 시장이 대통령이 되면 경제문제만큼은 잘 해결해 주리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MB계열의 한 팬클럽 대표는 “이 전 시장의 지지자들은 경제문제만큼은 이 전 시장이 잘 해결해주리라는 이성적 판단으로 그를 지지한다. 그래서 감성적인 ‘박사모’에 비해 우리 쪽은 차분한 것이다”라고 나름의 분석을 내놓았다.
양 진영의 팬클럽이 현재로서는 나름대로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지만 지난 2002년 대선당시 ‘노사모’를 뛰어 넘을지는 미지수다. 2002년 대선 당시 7만여 명의 회원을 둔 ‘노사모’는 모든 회원이 ‘사이버 전사’였다. ‘노사모’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아마추어 논객들을 탄생시키며 노무현 후보가 제기한 지역감정, 구태정치, 한미동맹, 보수언론과의 전쟁 등 민감한 이슈에 대해 적극적인 이슈파이팅을 하며 인터넷을 거의 장악하다시피 했다.
‘노사모’의 핵심 관계자는 “‘노사모’에는 ‘노무현이즘’이라는 말이 있다. ‘노무현이즘’이란 노무현이란 정치인이 가지고 있는 정치철학과 시대정신을 말한다. 그것을 공유한 ‘노사모’가 노무현과 함께 이슈파이팅을 한 것”이라며 “우리가 ‘정치인 노무현’을 좋아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며 다른 정치인 팬클럽과의 비교 자체를 거부했다.
그런 점에서는 ‘박사모’나 MB계열 팬클럽들이 이슈파이팅보다는 대선주자들의 신변잡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응집력에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지난달 ‘박빠’ ‘명빠’ 논쟁도 실은 감정적 차원을 넘어서지 못하고 단지 상대 후보에 막말과 비난만을 쏟아냈을 뿐이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대선주자가 강아지를 기른다거나 가족사진 공개 같은 사소한 일에 팬클럽들이 열광하고 환호하는 게 연예인 팬클럽하고 다른 점이 뭐냐”며 “지지하는 정치인의 비전과 정책으로 논쟁하는 게 아니라 단지 ‘그 정치인이 좋다 싫다’ 가지고 싸우는 것밖에 더 되느냐”라고 반문했다. 한 정치 컨설턴트는 “양 진영의 팬클럽끼리의 과열이 자칫 일반인들에게 정치혐오증을 유발해 심정적 지지자들까지 등 돌리게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 컨설턴트는 또한 “‘노사모’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인터넷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에 사이버 공간을 선점한 효과를 톡톡히 누린 것도 한 이유다”라며 “이젠 노사모와 같은 방법으로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류는 아류일 뿐이다”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박사모’나 MB계열의 팬클럽들은 “우리는 ‘노사모’처럼 정치적으로 오염되지 않았다” “‘노사모’와 달리 대선이 끝나면 자동 해산할 것이다”며 ‘노사모’와의 차별성을 주장한다. ‘박사모’ 정광용 대표는 “우리도 이슈파이팅을 하지만 혐오감을 주지는 않겠다. 무르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노사모’처럼 되지는 않겠다”라고 말했다.
과연 이 같은 주장대로 이들이 또 다른 모습의 인터넷 정치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아니면 단순한 인기인의 팬클럽처럼 인기몰이 정도로 그칠지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김지훈 기자 rapi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