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쨍할 때까진 ‘컴백홈’ 없습니다”
▲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그러나 인터뷰를 위해 나타난 류제국은 기자의 선입견과는 달리 예전 그대로 유쾌한 청년 류제국이었다. 어느 해보다 더 열심히 운동을 하고 추위 속에서도 친형 류제성 씨와 함께 모교인 덕수정보고에 매일 ‘출근 도장’을 찍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통통한 볼살이 ‘살짝’ 감량 효과를 내는 듯하다.
귀국 후인 지난 10월 류제국이 가장 좋아한다는 청담동의 한 곱창집에서 비공식 만남을 가진 이후 3개월 만에 그 곱창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였다. 동계훈련 중이라 술을 많이 마시진 못했지만 술에 취하기보단 류제국의 현란한 입담에 한껏 취해 버렸다. 아쉬운 게 있다면 그 많은 취중진담들을 기사화할 수 없다는 사실. 또 다른 도전과 목표를 가지고 2008년 출발선에 선 ‘쿨가이’ 류제국을 만난다.
류제국을 만나러 곱창집으로 향하는데 문자가 왔다. ‘제국인데요, 저의 정신적 지주인 친형과 함께 가면 안 될까요?’ 약속 시간에서 1분도 늦지 않고 류제국은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 정신적인 지주, ‘형님’을 모시고 나타났다. 체격이 좋은 동생 때문에 형 제성 씨는 어딜 가나 류제국의 동생으로 비치는 모양이다. 류제국이 두 살 위의 형을 인사시키면서 “누나가 보기에도 제가 (형보다) 더 들어 보여요?”하고 묻는다. 사실 그랬다^^.
형제만 있는 집안이라 그런지 형제애가 남달랐다. 성장하면서 자주 싸우기도, 의견 충돌을 빚기도 했지만 동생이 미국에서 야구를 시작한 후론 ‘싸움닭’ 형제들이 둘도 없는 의리와 정, 사랑으로 똘똘 뭉쳤다고 한다. 그러면서 류제국이 이렇게 농담을 한다. “아무래도 호적이 뒤바뀐 것 같아요. 가끔은 제가 진짜 형 같다니까요(웃음).”
2001년 덕수정보고에서 시카고 커브스 입단식을 열었을 때 류제국의 모습은 지금처럼 육중한(?) 체격이 아니었다. 192cm의 키에 80kg을 넘나들었는데 지금은 세 자리 숫자가 넘는다.
“어머님이 가게를 하시는데 가게 안에 제 고등학교 때 사진을 걸어놓으셨어요. 가끔 손님들이 오셔서 저에게 ‘류제국 선수랑 사장님이랑 무슨 관계예요?’라고 물으세요. 사진 속의 제가 실제 류제국이랑 너무 다르니까 못 알아보시는 거죠. 미국 간 후로 체중이 많이 불었어요. 왜 그랬냐구요? 마음이 편했거든요.”
한국에서 운동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훈련량이 엄청 줄어들었고 선후배 간의 엄격한 위계질서도 없는 데다 감독이나 코치로부터의 체벌이나 간섭을 받지 않는 환경들이 류제국을 ‘마구’ 풀어준 것이다.
“2004년 전까지 철이 없었어요. 훈련 시간에 지각을 밥 먹듯이 했으니까. 벌금도 제가 제일 많이 냈을 걸요? 2004년 시즌 끝나고 하루는 투수 코치가 절 부르더라구요. 미국 진출 후 처음으로, 제대로 혼이 났던 것 같아요. 다른 소린 안 했어요. 딱 한 마디로 절 기죽이셨죠. ‘앞으로 그렇게 할 거면 한국으로 돌려보내겠다’라고. 그 후론 단 한 번도 지각을 하지 않았어요. 빈손으론 절대 한국에 갈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류제국은 미국 진출 후 시카고 커브스와 탬파베이 데블레이스, 딱 두 팀에서만 생활했지만 루키리그부터 싱글A, 더블A, 트리플A, 빅리그를 거치며 옮긴 마이너리그 팀만도 11개 팀이나 된다. 메이저리그 산하의 마이너리그 팀들을 두루 거치며 류제국의 야구 인생은 산전수전에다 공중전을 치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007년 시즌 개막 때는 25명의 로스터에도 들어갔고 생애 처음으로 양키스타디움의 마운드에 오르기도 했다. 물론 1⅔이닝 동안 5실점하고 다시 마이너로 내려왔지만 투수들의 로망인 양키스타디움의 경험은 ‘죽어도’ 잊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 곱창과 소주를 곁들인 인터뷰에서 류제국은 차마 기사화할 수 없는 ‘취중진담’들을 쏟아냈다. 아래는 지난해 9월 미국에서 서재응과 함께. | ||
류제국은 서재응에 이어 김선우까지 두산으로 복귀하게 되자 잠시 마음이 흔들렸던 게 사실이라고 고백했다. 실제로 뒤에선 국내 복귀를 염두에 둔 ‘작업’이 있기도 했지만 류제국은 최종적으로 미국 잔류를 선택했다.
“많이 갈등했어요. 누구 누구도 들어오니까 너도 그냥 들어와라 하는 유혹들이 있었거든요. 사실 선수에게 돈도 중요해요. 벌 수 있을 때 벌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고요. 그러나 전 아직은 돈을 쫓고 싶지 않았어요. 국내 복귀 후 목돈을 챙긴다고 해도 기쁘지 않을 것 같더라구요. 며칠 동안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는데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서 없던 일로 하고 말았죠. 재응 형은 메이저리그에서 9승이라도 올렸잖아요. 전 이룬 게 없어요. 현재 마이너리그 옵션이 하나 남은 상태라 올시즌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두드려 봐야죠.”
(메이저리그 규약상 한 선수에게 옵션(마이너리그로 내려 보내는 것) 3번을 쓰면 그 후 다시 불렀다가 내려보낼 때 자유계약선수로 풀어줘야 한다. 류제국은 탬파베이에서 옵션을 두 번 행사했기 때문에 올시즌 또다시 빅리그에 올랐다가 마이너리그로 내려가면 내년에는 사실상 팀에서 나와야 한다.)
2008베이징올림픽 예선전에서 생애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뛰었던 류제국은 대표팀 얘기만 나오면 할 말이 많은 듯하다가도 금세 입을 닫았다. 대만전을 앞두고 ‘대만야구 실망이다’란 내용의 발언으로 ‘류제국의 도발’ 운운하며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지만 워낙 대표팀에서 보여준 것이 없다고 생각한 그는 대표팀과 관련해선 좋은 얘기만 하고 싶다고 한다.
“많은 걸 보고 배우고 느꼈던 시간들이었어요. 한국 선수들의 수준도 가늠이 됐고 태극마크의 자부심, 뿌듯함에 도취됐던 부분도 있었어요. 처음엔 해외파라는 주위의 선입견에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선후배 간의 끈끈한 정을 느낄 수 있어서 참으로 따뜻한 마음으로 운동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일본전을 앞두고 선발로 이름을 올렸다가 경기 직전에 뒤바뀐 부분(이 부분은 나중에 일본팀으로부터 ‘위장오더’라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 필리핀전에서 직구만 던진다고 선동열 감독님으로부터 혼이 난 뒤 마운드에서 내려온 사연, 대만전 앞두고 실망 운운했던 부분이 이상하게 기사화돼서 200여 개의 댓글 중 비난성 댓글이 180개가 넘었던 아픔 등은 잊히지가 않을 것 같아요.”
“가장 큰 소득이라면 좋은 선후배들을 만났다는 부분이죠. 미국에서 항상 외롭게 야구하다가 오랜만에 마음 통하고 필이 팍팍 꽂히는 동기들을 친구로 만들었어요. 아쉬운 점이라면 대표팀 선수의 실력이 한국프로야구의 실력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제가 첫 평가전에서 난타당하고 들어가자 모 선배가 ‘한국 야구, 장난 아니다.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다고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라구”하시며 어깨를 치시더라구요. 제가 못한 건 인정하겠는데 각 팀에서 최고로 잘하는 선수들만 뽑아 놓은 대표팀 선수들의 실력을 메이저리그와 비교하는 게 좀 그랬어요. 아무래도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겠죠. 서로의 환경이 다르니까.”
지난해 9월 미국 출장 중에 뉴욕 노포크에서 만났던 류제국은 쉽게 마음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한국서 찾아온 기자에게 매너 있게 인터뷰에 응하려고는 했지만 속내를 내보이는 데는 인색했다. 그러나 불과 몇 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새 류제국은 변화의 중심에 서 있었고 자신을 둘러싼 ‘구름 잔뜩’을 ‘맑음’으로 바꾸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고 있었다.
“전 미국에서 오래 버틸 거예요. 제 야구 인생이 활짝 개일 때까지,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거릴 때까지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어요. 대표팀에서 깨달은 부분 중 한 가지는 ‘순수한 마음으로 야구를 하자’는 겁니다. 고등학교 때의 야구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했거든요. 미국에 돌아가면 진정 제 가슴으로 느끼면서 야구를 하고 싶어요. 그렇게 계속 노력하다보면 제 야구 기상도가 조금씩 좋아지겠죠.”
미국에 들어간 에이전트로부터 연락이 오면 조만간 출국할 예정이라는 류제국. 추운 날씨 속에서 후배들과 뒤섞여 훈련을 하는 상황이 편하진 않지만 조급해 하지 않고 여유있게 기다릴 것이라고 말한다.
“절 보는 사람들마다 미국에 왜 안 가느냐고 물어 보세요. 저도 빨리 들어가서 운동하고 싶지만 비자 문제가 해결돼야 들어갈 수 있어요. 스프링캠프가 열리기 전에는 들어가서 제대로 훈련을 할 예정입니다. 재응 형이 미국에 있을 때 제게 한 말이 있어요. ‘넌 몸 관리 잘 해서 형처럼 후회스런 삶을 살지 말라’고. 형이 뉴욕 메츠에서 수술하고 2년 동안 운동을 못했잖아요. 그 시기가 가장 후회스럽대요. 재응 형의 회한을 제가 풀어 드려야죠(웃음).”
노래방으로 장소를 옮겼다. 빅뱅의 ‘거짓말’을 너무 멋지게 부르던(‘가수 뺨친다’는 얘기가 여기에 해당한다) 류제국이 서재응의 부재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한다. “탬파베이에 가면 처음에 좀 이상할 거예요. 그동안 재응 형이랑 한 팀에 있으면서 밥도 같이 먹고 가끔 술도 한 잔씩 했는데 이젠 그런 생활을 못하게 됐잖아요. 많이 그리울 것 같네요. 대신 재응 형이 한국에서 멋지게 성공해서 해외파 출신들의 몸값을 쫙쫙 올려놨으면 좋겠어요(웃음).”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