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급’ 테란 붐 일으킨 컨트롤 마법사…게릴라플레이·허 찌르는 전략으로 새 시대 열어
아니다. 5월 8일은 ‘황제’의 결혼식이었다.
‘황제’라 불린 사나이, 임요환.
어버이날이 아니라 프로게이머의 결혼식이라니. 그렇다. 나 아직까지 ‘스덕(스타크래프트 덕후)’이다. 당당하다. 남들이 연예인 팬카페 가입할 때, 프로게이머 팬카페 가입했다. ‘요환님의 드랍쉽이닷-_-’도 가입했고, 글도 올렸다.
임요환만 좋아하냐고? 그건 아니다. 국민썸남 홍진호도 좋고, ‘괴물’ 최연성도 좋고, ‘벼봇춤’ 이윤열도 좋고, 이영호도 좋다. 물론, 악플러 고소 전문 김가연도 좋다. 심지어 해설 못한다고 욕먹을 때의 강존야(강민)도 난 좋았다. 아니, 쉴드쳤다. ‘니들이 뭔데 레전드에 대한 존중도 없이 쌍욕을 하냐, 기다려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속으로 말이다.
99PKO부터 2014년 스타크래프트2 프로리그까지의 리그의 역사를 스덕으로서 재조명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는 포부일 뿐이고 내 자아에 남아있는 스타리그들을 연대기순으로 간략하게 써볼까 싶다. 오늘은 그 연재의 축포를 알리기 위해 스타리그와 나의 추억을 풀어보고 싶다.
때는 2002년. 많은 이들에게 월드컵과 오노 사건, 그리고 여중생 장갑차 사망사고로 기억되는 그 해에 나는 스타리그를 처음 접했다. 아니, 알고 있었던 건 꽤 오래됐다. SBS에 방영된 PKO(프로게이머오픈)가 내 뇌리에 남아있는 걸 보니 분명 예전부터 알았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보게 된 건 2002 SKY 스타리그부터였다.
2002 SKY 스타리그의 최강자는 누가 뭐래도 ‘황제’ 임요환이었다. 1999년 SBS 챔피언십을 우승하며 화려하게 등장한 임요환은 문자 그대로 판타지스타였다. 드랍쉽을 이용한 게릴라 플레이, 날카로운 타이밍, 허를 찌르는 전략 등등 임요환의 장기는 다양했다. 그중 무엇보다 화려하고 강력한 무기는 바로 ‘컨트롤’. 미네랄 50원짜리, 인구수 1의 마린으로 미네랄 125원, 가스 125원, 인구수 2의 러커를 잡는 기적. 임요환은 ‘모세’였다.
단순히 잘해서 황제는 아니었다. 임요환이 데뷔하던 시절의 테란은 문자 그대로 ‘폐급’이었다. 지금에서야 ‘프로게이머 하려면, 테란 하세요’라는 말이 있지만, 당시 테란은 폐급 그 자체였다. 저그한테는 저글링 & 럴커 러쉬에 털리고, 프로토스한테는 다크 템플러에 털리던 동네북이었다. 하지만 임요환이 보여준 드랍쉽 전략, 컨트롤로 테란은 새 시대를 맞이했다. 테란의 새로운 시대를 열고, 프로 게임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래서 그는 황제가 됐다.
2002 SKY 4강전에서 만난 임요환(왼쪽)과 ‘효자테란’ 베르트랑.
테란의 신성이던 임요환은 온게임넷 초대 스타리그인 2001년 한빛소프트 스타리그에서 ‘저글링대장’ 장진남을 3:0으로 꺾고 황제로 등극했다. 황제의 위용은 이어졌다. 이어진 코카콜라 스타리그에서 영원한 숙적, ‘폭풍’ 홍진호를 3:2로 꺾어 스타크래프트의 ‘끝’을 보여줬다.
심지어 이때 동시에 치러진 WCG(World Cyber Games) 2001에서 ‘전승’ 우승을 달성했다. 국내 스타크래프트 리그에서는 2연속으로 우승하고, 세계 대회에선 무패 우승을 달성하니 ‘황제’의 자리는 공고해졌다.
사실 임요환의 인기는 단순 게임 성적 때문만은 아니었다. 180㎝의 훤칠한 키, 곱상한 하얀 피부, 깔끔한 스타일까지. 그간 게임하면 ‘PC방 폐인’을 떠올리던 많은 이들에게 처음으로 ‘꽃미남 프로게이머’를 각인시켰다.
얼굴만 잘생긴 게 아니다. 마음도 예쁘다. 오리온에서 활동하던 임요환은 오리온이 해체된 다음 억대 연봉의 개인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여기서 말하는 개인 스카우트란 프로 골퍼처럼 선수 개인에게 스폰서가 붙는 방식이다. 하지만 임요환은 e스포츠를 프로리그로 키우기 위해, 개인이 아닌 팀 체제를 만들기 위해 개인 스폰서를 거절했다. 아, 게임 내적으로만 황제가 아니라 인성도 황제다.
2002 SKY 스타리그는 임요환에게 전화위복의 기회였다. 2001 한빛소프트-코카콜라를 연속 우승하고, 2001 SKY에서 3회 우승의 기치를 높이려던 황제는 ‘가림토’ 김동수에게 막혔다. 그 후 2002 NATE 스타리그에서 3회 우승을 이룩하려던 임요환은 안타깝게도 16강에서 탈락했다.
황제의 복귀를 막은 박정석(왼쪽)과의 2002 SKY 결승전.
한 번의 준우승과 한 번의 16강 탈락에서 이를 간 황제는 2002 SKY에서 3회 우승에 세 번째 도전을 시작했다. 기세는 좋았다. 전승으로 4강에 올라가고, 4강에서도 ‘효자테란’이자, 현재 포커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갬블러 베르트랑을 3:0으로 꺾었다. 2001 WCG 이후 전승 우승을 눈앞에 둔 황제였다.
하지만 그 도전은 부산에서 올라온 점박이 소년한테 막혔으니…. 그 친구의 이름은 ‘박정석’이다.
구현모 필리즘 기획자
*구현모는 스타크래프트1을 좋아하는 흔한 20대로 브런치 @jonnaalive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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