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은 나의 보약, 멋지게 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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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김상우(상): 요한이는 꼭 만나고 싶은 선수였어. 궁금한 것도 많았고. 어제(11일) 구미 경기 중계를 하면서 코피까지 터져가며 플레이하는 걸 보고 솔직히 나, 감동 먹었다^^.
김요한(요): 어제 제가 잘한 게 아니라 그동안 너무 못했던 거죠.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선배님과 인터뷰를 한다니까 제가 더 설레네요.
상: 그동안 마음 고생이 심했지? 겉으로 내색도 못하고 말이야.
요: 몸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팬들의 뜨거운 기대에 부응하려면 하루 빨리 코트에 서야 했어요. 몸은 안 돼 있는데 의욕을 앞세우다 보니까 부상이 생기더라고요. 팀 성적이 워낙 안 좋아 코트 밖에 있어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상: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순위로 지명당한 상태라 당연히 기대가 클 수밖에. 또 워낙 뛰어난 선수이기도 하고.
요: 근데 프로가 결코 만만치 않더라구요. 대학 때 프로팀과 연습경기를 많이 해봐서 프로 선수가 되는 데 대해 큰 부담이 없었어요. 좀 쉽게 생각했던 부분도 있었고 자신감도 충만했었죠. 그러나 막상 프로 선수로 부딪히니까 전혀 다른 거예요. 만만한 팀이 한 팀도 없더라고요. 좀 더 잘하려다 보니까 몸에 힘이 들어가고 실수가 연속 발생하면서 심리적으로 위축도 되고. 참 힘들게 데뷔 시즌을 보내고 있었네요.
상: 흔히 배구 전문가들은 LIG팀에 대해 이런 저런 문제점을 지적하며 다양한 평가를 내리는데, 요한이는 시즌을 치르며 팀에 어떤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해?
요: 우리 팀만의 컬러가 없었다고 봐요. 현대캐피탈 같은 경우엔 블로킹, 속공을 잘하고, 삼성화재는 조직력이 강하잖아요. 그런데 LIG 하면 떠올릴 그 ‘뭔가’가 없었고 결국 그런 점들이 막판에 무너지는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봐요. 반면에 내부적으로 선수들과의 관계는 굉장히 끈끈하고 가족적이에요. 보통 성적이 좋지 않을 경우 선수들 사이에서도 불협화음이 일어날 수 있잖아요. 우린 그런 게 없었어요.
상: 그동안 이런저런 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고 ‘문제아’ 비슷하게 비친 부분도 있어. 할 말이 많을 것 같은데.
요: 그때 심한 얘기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그로 인해 상처도 받았고 사람 만나기가 두려워졌어요. 프로팀에 입단하면서 1억 원의 계약금을 거부한 부분도 제가 약자로만 인식받는 게 싫었던 거죠. 그런 룰이 부당하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도 나서지 못한다면 제가 그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물론 항복하고 들어왔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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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어휴, 엄청 두려웠죠. 형들이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왕따’를 시키거나 하면 정말 괴로운 일이잖아요. 그런데 막상 직접 만나보니까 너무 따뜻하게 맞이해주시는 거예요. 일일이 선배들 방문을 노크하면서 인사드리러 다녔는데 한결같이 ‘잘 들어왔다’고 반겨주시면서 ‘앞으로 열심히 해보자’고 격려까지 해주셨어요. 형들을 직접 만나고 나서 LIG팀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상: 프로 데뷔하면서 신인왕에 대한 기대가 컸을 거야. 현재 스코어 상으론 임시형(현대캐피탈)이 유력한데.
요: 솔직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죠. (임)시형이랑 대학 때 같이 운동을 했기 때문에 경쟁하면서 자극받고 성장하면 좋은 상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부상이 원망스러워요. 경기에 나가지 못한 시간들이 너무 많았잖아요. 그러나 이번에 신인왕을 놓친다면 내년에 MVP에 도전해 보죠 뭐(웃음).
상: 진짜 건강한 사고의 소유자네. 요한이는 굉장히 좋은 환경에서 성장했을 것 같은데.
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아버지가 하시는 일마다 실패를 하는 바람에 생활이 궁핍했어요. 정부보조금을 받고 살 정도였으니까요. 물론 지금도 잘 사는 건 아니지만 제가 조금씩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점점 나아지고 있어요. 다행이라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가족애가 흔들리지 않았다는 사실이에요. 가족들의 사랑이 힘든 환경을 견뎌낼 수 있게 해줬어요.
상: 요한이는 나랑 비슷한 점이 많아. 나 또한 어린시절 극빈자나 다름없는 생활을 했거든. 배구가 없었다면 지금의 이런 모습도 없었을 거야.
요: 정말 그래요. 운동하면서 수십 번도 더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었지만 어려운 환경에서 시작한 운동이라 부모님을 떠올리면 도저히 그만둘 수가 없더라고요. 만약 제가 있는 집 자식이었다면 모든 걸 참아내면서 운동에 전념하지 않았을 거예요.
상: 여자친구가 팬들의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어. 연예인이라는 타이틀도 그렇고.
요: 요즘은 경기장에 오지 않아요. 제가 오지 말라고 했거든요. 그 친구도 일을 해야 하는데 누구 누구의 여자친구라는 꼬리표가 걸림돌이 될 것도 같고요. 만난 지 4년째예요. 별다른 다툼, 잡음 없이 잘 만나고 있으니까 그냥 조용히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코트에서 보여준 것보다 보여주지 못한 게 너무나 많다는 김요한. 그래서인지 그는 벌써부터 내년 시즌에 대해 기대를 잔뜩 부풀린다. 지난 시간동안의 우여곡절을 경험삼아 다음 시즌에는 밝고 활기찬 모습만 선보이고 싶다는 바람과 함께 말이다. ‘없이’ 살던 시절, 혼자서 삼겹살 10인분을 먹고도 허기를 느꼈다는 김요한과의 인터뷰를 마친 김상우 해설위원이 한 마디 던진다. “요한이 너, 진짜 멋있다!”
KBS N 스포츠 해설위원
정리=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