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스’는 없다 ‘에너지’만 충만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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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 타는 것이 싫어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싶지 않다는 윤석민. 다소 엉뚱해도 팀의 활력이 되는 에이스로 거듭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민훈기(민): 이제 고졸 4년차인데 지금까지 많은 역할을 맡아온 것 같다.
윤석민(윤): 신인 때 처음에 패전용으로 뛰다가 조금 잘하니까 중간으로 갔다가 또 마무리도 좀 했다. 데뷔 첫 해에 7세이브를 했다. 그리고 2년차에는 마무리를 많이 하다가 작년부터 선발로 뛰었다. ‘밥’이 안 되니까 감독님 지시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민: 작년에는 승리보다 지는 데에 더 익숙했을 것이다(7승18패). 올해는 다승 선두다.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나.
윤: 던지는 것은 똑같다. 작년에는 처음 선발을 맡으면서 생각이 많았고 엄청 준비를 많이 했다. 타선의 지원이 뒷받침되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내가 못 던져서 진 경기들도 많았다.
민: 작년 득점 지원이 9이닝 당 1점대 후반이었다. 2점만 줘도 진다는 뜻인데.
윤: 투수가 그런 것들을 극복하려면 1-0, 2-1 같은 경기에서 승리해야 하는데 반대로 그런 경기에서 많이 졌다. 심리적으로도 ‘아깝다, 아깝다’ 하니까 더 맞기도 하고. 올해는 편안하게 내 할 것만 한다는 생각으로 오른다. 볼은 작년보다 확실히 안 좋은 것 같은데 타자들이 잘 쳐주니까 심리적으로 훨씬 편하다.
민: 작년 평균자책점 3.78이고 올해는 2.84면 훨씬 좋은 것 아닌가.
윤: 작년 이맘때는 더 좋았다. 후반에 아킬레스건이 아파 몇 게임 무너지면서 많이 올라갔지만 그 전까지는 아주 좋았다.
민: 그럼 불운의 에이스라는 말은 잘못된 건가.
윤: 그건 맞다. 운은 정말 없었다(웃음).
민: 고졸 3년차부터 에이스라는 말을 들었는데 본인은 어떤 느낌인가.
윤: 그런 말을 들어도 나는 에이스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성적도 중요하지만 경험이나 멘탈적으로도 아직 어리고 멀었다. 2연패, 3연패하면 감정이 컨트롤 안 된다. 운동도 대충대충하게 되더라. 하지만 서재응 선배한테선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서재응 선배는 두들겨 맞아도 겉으로 내색하지 않는다. 나처럼 어린 선수들은 맞으면 바로 기분 다운되고 죽고 싶고 그런데 서재응 선배는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그런 모습을 보면 언젠가는 차고 올라올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민: KIA 2차 1번으로 지명된 사실을 알았을 때 맨 처음 무슨 생각이 들었나.
윤: 난 두산이나 LG 쪽으로 갈 줄 알았다. 프로에 지명됐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니까 KIA라는 팀 자체가 좀 겁이 나더라.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까 시대가 많이 변해서 그런지 그렇게 무섭진 않았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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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신인이라 이것저것 가릴 입장이 아니었다. 그저 1군 무대에서 던진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개막전에 마운드에 오르는 행운이 주어졌다. 한화의 첫 타자에게 안타 맞고 고지행 선수에게 볼넷도 주고 2사 만루에선가 내려왔다. 그런데 다음 투수가 3루타를 맞아 주자가 모두 홈으로 들어왔다. 처음엔 정신이 없어 내 자책점인 줄도 몰랐다. 집에서 인터넷에다 내 이름을 치니까 방어율이 40.50인가 나오더라(웃음). 규정은 정말 잘 아는데 그때는 처음 나가서 내 자책점인지도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민: 미국이나 일본 야구에서도 뛰고 싶은가.
윤: 미국은 별로 가고 싶지 않다. 너무 멀다. 비행기 타는 걸 정말 싫어한다. 기아 첫 해에 캠프를 하와이에 가고 두 번째는 플로리다로 갔는데 정말 죽음이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것 같다. 일본은 나중에 도전해보고 싶은 무대다. 자신은 있지만 실력이 어떨지 모르겠다. 그런데 뽑아 줘야 가지.
민: 여자 친구는 있나.
윤: 아직 없다. 사귀고는 싶은데 방법이 없다. 소개를 해주는 사람도 없고(웃음). 휴일이면 잠자고 쉬기에도 벅차다. 낚시를 좋아하는 편이라 시즌 초에는 쉴 때 ‘낚시라도 가야지’ 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쉰다. 솔직히 야구만 하기에도 생활이 너무 힘들다.
민: 같은 또래에 비해서 억대 연봉자라 소득이 높은 편이다. 자부심이 대단할 것 같다.
윤: 그런 것 없다. 주로 친구들에게 얻어먹는다(웃음). 부모님이 어렵게 생활하신 탓에 지금도 근검절약을 몸소 실천하며 사신다. 어머니가 주시는 한 달 용돈이 80만 원이다. 돈이 떨어져서 돈 좀 더 달라고 전화를 하면 바로 끊어버리신다. 신용카드도 없다.
민: 시즌 전 우승 후보로 꼽히던 KIA가 고전하다가 지금은 상승세로 돌아섰다.
윤: 앞으로 분위기 타서 진짜 잘하면 4강에 갈 수도 있을 것 같다.
민: 야구 선수로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윤: 어릴 때는 프로야구 선수가 되고 싶었는데 지금은 야구를 오래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 10년, 15년 동안 꾸준히 선발 투수로 뛰고 싶다.
너무 멀고 비행기 타는 것이 싫어서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싶지 않다는 엉뚱한 친구. 인터뷰 내내 천진한 개구쟁이 같은 웃음이 이어졌지만 야구에 관한 자신감만은 대단했다. 작년에 3점대의 수준급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도 18패를 당했는데 올해는 이미 8승을 거두고 있는 윤석민. 앞으로 오랫동안 KIA의 중심 투수로 좋은 활약 펼치길 바란다.
메이저리그 야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