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사위 달라고? 그럼 운영위·미방위는 우리꺼”
여야 3당 원내지도부가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귀빈식당에서 20대 국회 원(院)구성 등을 논의하기 위해 가진 첫 회동에 앞서 자리 배치를 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몸값’ 높아진 법사위
“법안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다.” 5월 17일 더불어민주당의 한 비서관 말이다. 그는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는 전보다 훨씬 중요한 상임위가 됐다. 박영선 의원이 법사위원장을 할 때도 외국인투자촉진법을 가지고 법사위에서 ‘홀딩’을 시켜버렸다”며 “예산이 법사위에서 통과가 안 되는 바람에 난리가 났다. 본회의 자체가 열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2013년 말 당시 박영선 법사위원장은 새누리당이 강력하게 밀어붙인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대해 “외촉법만큼은 내 손으로 상정을 못한다”며 막았다. 결국 여야 원내대표의 일괄 타결 합의와 2014년도 예산안 처리가 지연됐다. 법사위원장이 여야가 공들여 짜놓은 ‘판’을 뒤흔들어버린 것이다.
법사위는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이 본회의에 상정되기 전에 거쳐야 하는 마지막 관문이다. 3당 원내대표가 법사위원장 자리를 두고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회의장·법사위, 야당이 모두 맡아야 한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국회의장과 법사위를 전부 야당이 독차지하겠다는 건 무리”라며 즉각 반발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은 새누리당과 더민주가 나눠서 맡아야 한다”고 보탰다.
그렇다면 3당 원내대표의 속내는 뭘까. 앞서의 더민주 비서관이 흥미로운 얘기를 전했다. “솔직히 국회의장은 얘기 꺼리도 안 된다. 국민의당 쪽에서 국회의장을 이슈화시켜 판을 좀 흔들고 새누리당이 펌프질해서 ‘의장은 너네 가져라 뭐 내놔라’ 하는데 의장은 원래 우리 것이다. 투표해도 어차피 우리가 이긴다. 의장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원래 법사위도 야당 몫인데 양당에서 일부러 카드로 쓸려고 하는 거다. 박지원도 존재감 부각시키려고 국회의장이랑 법사위 함께 띄우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김도읍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의 최측근은 “법사위가 야당 몫인 건 들어본 적이 없는 얘기다. 지금 19대 기준으로 봐도 1당은 새누리당인데 지금은 둘 다 갖고 있지 않다”며 “우린 국회의장도 전혀 포기 안 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제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박지원 원내대표 측근 역시 “국회의장하고 법사위를 더민주가 가져가면 법안은 일사천리다. 그 두 개만큼은 서로 다른 당이 맡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야 3당 원내지도부가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귀빈식당에서 20대 국회 원(院)구성 등을 논의하기 위해 가진 첫 회동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새누리당 ‘후달리는’ 까닭
국회엔 16개의 상임위원회와 2개의 특별위원회가 있다. 상임위원장 선출에 대한 국회법 규정이 없기 때문에 3당 원내대표들 협상력이 중요하다. 원내 과반 확보에 실패한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협상을 벌여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더민주의 한 보좌관은 “더민주는 내줄 게 없다. 국민의당은 가능하면 가져오려고 할 것이다. 새누리당은 지금 상임위 10개를 쥐고 있지만 내줄 건 다 내줘야 하는 상황이다. 지금 새누리당 쪽에서 절대로 안 된다는 마지노선은 운영위, 정무위, 예결위지만 지키기 힘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으로선 뼈아픈 대목이다. 특히 국회운영위원회는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비서실, 대통령 경호실을 감독하고 있다. 새누리당 일각에선 여당이 관례적으로 맡았던 운영위마저 더민주에 내줄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새누리당의 한 당직자는 “사실 운영위를 내주면 우리 입장에선 정말 뼈아프다. 더민주가 청와대 국가안보실을 타깃으로 국정감사를 한다면 여당 입장에선 부담이 상당하다. 절대 내줘선 안 된다”고 밝혔다.
더민주는 느긋한 입장이다. ‘원내 1당’이란 유리한 지형도를 최대한 이용해보겠다는 심산이다. 앞서의 보좌관은 “운영위를 꼭 여당이 가져가야 한다는 보장이 없다. 청와대를 보호하기 위해서 운영위를 여당이 해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왜 국회가 행정부를 보호하나”고 반박했다. 다른 당직자는 “저쪽에서 법사위 내놓으라면 ‘우리는 법사위 줄 테니까 다른 상임위 달라고 하면 된다. 우리는 최상의 카드를 내놓은 상태에서 한두 개를 접어가면서 실리를 추구할 수가 있다. 불리한 쪽은 새누리당”이라고 설명했다.
#미방위 노리는 더민주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는 과학기술과 방송통신에 관한 법안 심사를 담당하고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 등을 감독하는 역할을 해왔다. 19대 국회 때는 한선교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이 미방위원장을 맡았다. 지난 2월 말 미방위는 파행을 거듭했다. 더민주 미방위원들이 요구한 ‘MBC 백종문 녹취록’과 관련해 상임위 개최를 요구하자 홍문종 위원장이 상임위 개최를 거부한 것이다. 당시 미방위원 중 한 사람이 우상호 원내대표였다.
우 원내 대표 측근은 “우리가 특별히 신경쓰는 부분은 미방위다. 내년이 대선이다. 종편은 물론 방송 3사가 다 걸려있다. 정말 중요하다. 보도 기능이 거기 다 들어가 있는데. 지금 방송이 여론 주도하는게 6할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