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마이 갓! 말 한마디 ‘부메랑’ 돼 돌아오다
▲ 경기 도중 후배 어머니와 고성 오간 강수연(왼쪽). 말 실수 하나로 구설수에 오른 박인비. | ||
울고 싶은 고참, 강수연
지난 7월 21일 오전 미국에서 전화가 왔다. ‘필드의 패션모델’로 유명한 강수연(32)이었다. 내용은 하소연이었다. 현지시간으로 20일 스테이트팜클래식 최종라운드를 치른 강수연은 저녁 늦은 시간이 됐지만 아직도 분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이럴 수가 있나요? 제가 티박스에서 티샷을 준비하는데 A 선수의 어머니가 달려와 잠깐 얘기 좀 하자며 따지더라고요. 제가 오전에 A의 매니저에게 전날 A가 사소한 실수를 한 것 같다는 말들이 많은데 조심하는 게 좋겠다고 충고를 했거든요. 경기 당일이라서 선수에게 직접 말하는 대신 매니저한테 슬쩍 전한 것이죠. 그런데 이걸 전해들은 A의 어머니가 달려와서 ‘그런 소리를 어디서 들었느냐’며 따지는 것이었어요. 하도 황당해서 지금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경기를 시작해야 하니까 나중에 얘기하자고 했는데도 자꾸 채근하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고성이 오간 끝에 시간이 돼서 경기에 나섰죠. 제가 샷을 하는데 옆에서 째려보더라고요. 화를 참으며 경기를 마치는데 이번에는 18번 홀 그린 옆에서 그 어머니가 저를 기다리고 있잖아요. 결국 거기서도 또 한 번 입씨름이 벌어졌죠. 지금 LPGA사무국에서는 제가 갤러리 하고 말다툼을 했다고 해서 징계를 논의하고 있대요. 이게 말이 됩니까?”
강수연은 미LPGA의 한국선수 중 정일미(36)에 이어 두 번째로 고참이다. A 선수보다는 열 살 이상 많다. A가 골프에 입문할 때 강수연은 이미 한국 최고의 선수였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 최근 미LPGA에서 고참들보다는 영 파워들의 성적이 더 좋아지면서 일부 어린 선수들과 해당 부모들이 선배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짙었는데 이번 사건이 갈등에 불을 붙인 것이다. A의 어머니가 사과를 하긴 했지만 이미 강수연을 비롯해 정일미 한희원 박세리 등 선배들의 화는 가라앉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에 있던 A의 아버지까지 진화에 나섰지만 선배들이 ‘이대로는 안되겠다’며 벼르고 있다. 에비앙마스터스-브리티시여자오픈으로 이어지는 미LPGA의 유럽투어 기간 중 한국선수들 전체 모임을 갖고 미LPGA의 선후배 관계의 재정립에 대한 토론이 있을 예정이다.
한편 A 선수의 부친은 “미국에서 연락을 받았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면 우리도 억울한 점이 있지만 그래도 선배한테 그리고, 경기 중에 말다툼이 벌어진 것에 대해서는 무조건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했다.
‘입조심’ 큰 교훈 얻은 박인비
‘박인비 쾌거’는 지구촌 최고의 여자골프대회인 US오픈에서 박세리 우승 후 정확히 10년 만에 ‘박세리 키드’가 우승컵을 들어 올려 화제가 됐다. 박인비는 소원대로 한국에 들어와 우승컵과 함께 스무 번째 생일파티를 가졌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동시에 IB스포츠라는 국내 최대 매니지먼트사의 가족이 됐고, SK텔레콤이라는 든든한 후원사도 얻게 됐다. 한마디로 ‘더 이상 좋을 수는 없다’였다.
그런데 이런 축제 분위기 속에 작은 일이 터졌고, 이것이 골칫거리가 됐다. 박인비 스토리가 언론에 소개되는 과정에서 한 기사에 박인비의 부친이 옛 코치를 깎아내리는 내용이 담겼던 것. 실명이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당사자인 조성계 박사는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무엇보다 평생 쌓아올린 명예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고통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과를 받았지만 조 박사는 변호사를 통해 IB스포츠와 박인비 측에 법적 대응을 하겠다며 나섰다.
조 박사는 “지금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정도로 정신적 충격이 크다. 말 한 마디가 사람을 죽인다더니 정말 실감했다. 명예 회복을 바란다”고 말했다.
박인비 측도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다. 언론의 취재 공세 속에 많은 말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작은 말 실수 하나가 섞인 셈인데 이렇게 문제가 커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조 박사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또 선수를 생각해서 더 이상 파장이 커지지 않도록 선처를 부탁했다”고 말했다.
진통 끝에 박인비 측이 조 박사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조 박사는 법적 절차를 밟지 않기로 했다. 대신 정정보도나 사과광고 등 미디어를 통해 조 박사의 명예를 회복시켜주도록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신문에 사과광고문을 내는 것도, 정정보도를 내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