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위 상견례서 유승민 복당 논의’ 역정보에 친박계 공분 전국위 무산시켜
새누리당이 내홍이 휩싸였다. 가운데는 정진석 원내대표.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김무성 전 대표와 서청원 전 최고위원 등이 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나 지도부가 공백 상태인 지금, 새누리당은 당의 정상화를 위해 새 지도부를 뽑을 전당대회를 준비하고 또 혁신안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이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와 혁신위원회 구성이 무산됐다. 5월 17일 비대위와 혁신위 구성을 의결할 새누리당 상임전국위와 전국위가 국회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의사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파행되고 말았다. 당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배후에는 친박계의 조직적인 움직임이 있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친박 의원 3인 이름이 공공연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들이 상임전국위원들과 접촉하며 회의 무산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상임전국위와 전국위 개최 하루 전이었던 16일 저녁 정진석 원내대표를 비롯해 원내부대표단, 당 기획조정국 등은 상임전국위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해 출석 여부를 확인했다고 한다. 서너 차례 전화를 돌리고 연락이 닿지 않는 인사에게는 문자메시지를 수차례씩 넣었다. 그렇게 52명 상임전국위원 중 31명이 참석키로 확약하면서 과반(27명)의 의사정족수를 채웠다.
문제는 모두가 잠든 밤에 일어났다. 상임전국위 사회자로 나서기로 했던 친박계 홍문종 의원이 사회를 보지 못하겠다고 연락을 해 온 것이다. 원내지도부는 부랴부랴 대체 인력을 찾았고 비박계인 정두언 의원이 대신 맡기로 했다.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한 원내지도부와 당 사무처가 상임전국위원들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참석 여부를 확인했는데 연락이 닿지 않는 인사들이 많았다.
정두언 의원에게는 “의사정족수를 채우지 못할 수도 있지만 꼭 참석해달라”고 재차 요청했다고 전해진다. 전국위원회 사회를 보기로 했던 친박계 좌장 서청원 전 최고위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만약 상임전국위가 성원이 돼 안건을 처리했더라도 이를 의결할 전국위가 사회자를 잃어 발을 동동 굴렀을 수도 있었던 셈이다.
이날 국회 의원회관 안팎에서는 여러 진풍경들이 연출됐다. 한 비박계 중진 의원은 “분명히 회관 근처에서 보이던 친박계 의원 A와 B 등이 끝내 회의장에 나타나지 않더라. 고개만 내밀고 동태를 살피는 느낌이랄까”라면서 “어디인가로부터 어떤 오더(order)가 있지 아니하고선 그럴 수 있었겠느냐”고 핏대를 세웠다.
상임전국위 사회를 보기로 했다 거부한 홍 의원은 상임전국위와 전국위가 열릴 의원회관의 위층 자신의 사무실에 있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안 정 원내대표와 원내지도부, 비박계가 모두 분노를 표했다. 친박계 한 의원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다 못 들어가는 이유가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바로 전날(16일) 친박계 의원 20명이 집단성명을 내고 “비대위원과 혁신위원장 인선에 문제가 있다. 우물 안 개구리식 인선이어서 원점 재검토해야 한다”는 기자회견을 연 터였다. 이것이 일종의 복선이었다. 친박계는 상임전국위와 전국위에서 부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예 회의 자체를 무산시키는 ‘실력행사’를 선보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친박계는 왜 이런 강공을 택해 비대위와 혁신위를 무산시키려고 했던 것일까. 정가에 전해지기로는 비대위 첫 회의에서 나온 내용을 친박계가 문제 삼았다. 현재 새누리당 비대위는 정진석 원내대표가 위원장을 겸하면서 3선 당선자인 김영우·김세연·이진복·홍일표 의원과 이혜훈 당선자, 재선인 한기호 의원, 초선인 정운천 당선자 등으로 구성됐다. 당연직 비대위원으로는 김광림 정책위의장과 홍문표 사무총장 권한대행까지 모두 10명이다. 이 중 비박계가 6명, 친박계가 4명(정진석 포함)으로 수적으로는 비박계가 우위다.
그런데 첫 회의에서부터 유승민 무소속 당선자의 복당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한 친박계 인사는 “첫 회의는 보통 상견례 자리로 ‘잘 해보자’ 뭐 이런 이야기를 하고 끝낸다. 그런데 어떻게 유승민 복당 문제가 버젓이 나올 수 있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 친박계에서는 혁신위원장으로 내정됐던 김용태 의원이 혁신안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탈당과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의 교체를 요구할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김 의원이 혁신위원장으로 내정되면서 “이번 선거의 최대 패배 원인이었던 계파갈등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보도록 하겠다”고 한 얘기가 발단이 됐다. 결국 박 대통령이 ‘계파 해체’ 선언을 하거나 탈당하는 방법, 그 상징적인 조치로 ‘믿을맨’ 현 수석의 교체가 있어야 한다는 구상을 김 의원이 하고 있다는 소문이 친박계 내부에서 퍼졌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이를 ‘친박계 음모’라고 규정한다. 우선 상견례가 이뤄진 비대위 첫 회의에서는 ‘유승민 복당’ 문제는 거론조차 안 됐다. 비대위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이날 서로 인사가 오갔고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때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할지 제창할지가 워낙 논란이 된 문제여서 이를 새누리당이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요구만 있었다.
유승민 무소속 의원과 가까운 이혜훈 당선자나 김세연 의원도 복당 문제를 꺼내지 않았다. 결국 이는 비대위 구성 자체를 반대하는 친박계가 가장 예민한 부분인 ‘유승민 복당’ 문제를 만들어 흘려 친박계 전체의 공분을 누군가 일으켰다는 시나리오로 모아진다. 비박계는 그 시나리오 작가로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김용태 의원이 박 대통령 탈당과 현 수석의 교체를 요구하려 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19대 국회에서 보수혁신특별위원회 위원이었던 김 의원은 혁신위원장에 내정되자마자 보수혁신위의 전체 활동 상황과 혁신안 정리부터 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탈당과 교체라는 내용이 전혀 없다. 이 부분도 비박계의 김 의원을 비토하기 위해 쓴 일종의 ‘픽션’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상임전국위와 전국위가 무산된 그날, 정 원내대표와 현 수석이 육두문자를 섞인 고성을 통화로 주고받았다는 말이 있다. 문자메시지를 통해 언쟁을 했다고도 전해진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18일 오전 둘은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려고 KTX에 올랐는데 우연히 특실 좌석이 앞뒤로 배치됐다. 하지만 인사도 하지 않았고, 대화도 없었다. 해당 사진이 언론에 도배되다시피 했다.
여기서 알려지지 않은 사실 한 가지. ‘왜 인사를 하지 않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둘은 “같은 공간에 있는지 몰랐다”고 했다. 하지만 이날 KTX에서 정 원내대표를 찾아 현안을 물은 기자가 있었다. 이 때 정 원내대표는 “쉿”이라는 소리를 내면서 눈을 찌푸린 뒤 손가락으로 앞좌석의 현 수석을 가리켰다고 한다. 정 원내대표는 일단 현 수석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일각에선 현 정무수석이 정 원내대표에게 친박계 위주의 비대위원 인선안을 건넸는데 이를 정 원내대표가 무시했고 그래서 상임전국위와 전국위가 무산됐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대신 정 원내대표는 “일부 친박계에 비대위원을 하시라고 했는데 다들 거절해놓고 지금에 와서 이러시면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친박계가 협조하지도 않으면서 이상한 소문으로 파토만 내고 있다는 얘기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