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는 몸, 면제받는 몸, 해외 가는 몸
이승엽(요미우리)은 베이징올림픽에서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야한다. 우선 당연히 대표팀에게 메달을 안겨주는 게 1차 목표다. 이승엽은 대표팀 합류 후 틈만 나면 “야구팬과 후배들에게 좋은 선물을 주고 싶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태극마크를 달고 경기에 뛰면 항상 묘한 느낌이었다. 반드시 메달을 따고 말겠다”고 강조했다. 이승엽에게 이번 올림픽은 아마도 마지막이 될 기회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선 야구가 정식종목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이승엽의 또 다른 목표는 타격감 부활이다. 7월 말 입국할 때 “아직 죽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선언한 것과 연관된다. 이승엽은 올시즌 요미우리에서 야구 인생의 최대 위기를 맞았다. 시즌 초반부터 왼손 엄지 수술 후유증에 시달리더니 4월 14일 2군으로 내려갔다. 102일 만인 7월 말 잠시 1군에 복귀해 홈런 1개를 터뜨렸지만 아직 재기 성공을 말하기엔 이르다.
이승엽이 요미우리 1군에서 남긴 성적은 타율 1할4푼1리에 1홈런 5타점. 팀내 4번 타자 입지는 이미 무너졌다. 따라서 이승엽은 이번 올림픽에서 좋은 활약을 보인 뒤 그걸 발판으로 후반기 일본 리그에서 완전하게 부활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한화 김인식 감독은 2006년 WBC 대표팀을 맡아 멕시코, 일본, 미국을 차례로 무너뜨리며 4강 신화를 달성한 뒤 ‘국민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WBC 이후 김 감독은 저녁식사를 위해 야구장 근처 식당에 가면 “국민감독이 오셨는데 어떻게 돈을 받느냐”며 손사래 치는 주인 때문에 당황했고, 차비를 받지 않으려는 택시 기사를 설득하느라 난감한 상황도 겪었다.
베이징올림픽 대표팀을 맡고 있는 두산 김경문 감독도 꿈이 없을 리 있을까. 그가 공개적으로 “국민감독이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은 없다. 하지만 대표팀을 맡았던 모든 감독의 꿈은 명확하다. 좋은 성적을 낸 뒤 존경받는 감독이 되는 것이다. 김경문 감독은 이번 여름 한국에서 가장 바쁜 야구인이다. 온통 대표팀에 신경을 쓰고 있지만, 한편으론 소속팀 두산도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본래 계획은 전반기 막판까지 2위 자리를 공고히 한 뒤 비교적 여유 있게 올림픽을 치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전반기 막판에 팀이 8연패를 하는 바람에 3위 한화에게 승차 없이 쫓기는 상황이 돼버렸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한 뒤 8월 26일부터 시작되는 후반기 일정에 매진해 정규시즌 2위를 지켜야한다. 그 후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해 우승하는 것. 김경문 감독이 바라고 있는 올 한 해 최상의 시나리오일 것이다.
이번 대표팀에는 병역 미필 선수들이 상당히 많이 포함돼있다. 24명의 최종엔트리 가운데 무려 14명이 병역 미필 선수다. 마운드에선 권혁 김광현 류현진 송승준 윤석민 장원삼 한기주 등 7명, 야수 중에선 강민호 고영민 김현수 이대호 이용규 이택근 정근우 등 7명이 바로 이번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경우 수혜자가 될 선수들이다. 동메달 이상이면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으로 군복무를 대체하게 된다.
병역혜택은 프로야구 선수들에겐 엄청난 선물이다. 정상적으로 군복무를 할 경우, 그 기간을 최대한 짧게 2년만 잡는다고 쳐도 엄청난 차이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7시즌을 마친 뒤 군대를 갔다오면 2년을 더 뛰어야 자유계약선수(FA) 신분을 얻고 대박 계약을 노릴 수 있다. 그런데 병역혜택을 받은 동기생은 이미 FA다. 금전적 차이만 해도 상당할 수밖에 없다. 또한 어떤 형태의 군복무를 하느냐에 따라 자칫하면 체계적인 훈련을 하지 못해 도태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물론 대표팀 선수들이 오로지 병역혜택을 위해 뛰는 건 절대 아니다. 선수들은 근본적으로 지기 싫어하기 때문에 일단 경기를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다만 그 결과가 좋았을 때 병역 미필 선수들은 결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시간’을 선물받게 된다는 것이다.
대표팀 3루를 맡고 있는 김동주(두산)에게도 이번 올림픽이 좋은 기회다. 김동주는 지난해 말 FA가 됐지만 우여곡절 끝에 일본 진출에 실패한 뒤 두산에 잔류했다. 1년간 9억 원짜리 계약을 했는데, 당초 4년간 최대 62억 원설이 오갔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금액이었다. 대신 한 시즌을 마친 뒤 다시 해외진출을 노릴 경우, 풀어 준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따라서 김동주는 이번 시즌을 마친 뒤 일본 혹은 미국의 몇 개 구단과 부지런히 접촉할 계획이다. 이미 오릭스를 포함한 일본의 한두 개 구단이 전반기 동안 김동주를 살펴보고 돌아갔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올림픽은 김동주에겐 자신의 능력을 해외 구단에 각인시킬 ‘쇼케이스’ 기회가 될 수 있다. 올림픽 야구경기에 미국과 일본의 스카우트들이 진을 칠 것이기 때문에 좋은 활약만 보여준다면 지난해보다 훨씬 좋은 조건에서 협상할 수 있다. 김동주가 현실적인 판단을 한다면 두산에 남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지만 그 경우에도 두산 측으로부터 높은 몸값을 끌어내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