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최근 박 대통령과 여야 3당 원내지도부가 청와대 회동에서 협치를 다짐했다. 이에 따라 불황의 함정에 빠진 민생경제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일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치권이 권력과 이권 싸움에 몰두하여 민생관련 정책이나 법안이 정치적인 인질로 잡혀 사장되거나 변질되는 일이 흔하다. 그리하여 경제가 방향감각을 잃어 국제경쟁력이 떨어지는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다. 정치가 경제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 낙후가 경제를 무너뜨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이번 협치의 합의는 정부와 정치권이 정쟁의 덫을 벗어나 경제를 함께 살리는 노력을 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 경제가 회생하는 것은 물론 정치와 경제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상생의 틀을 구축한다는 차원에서 보통 의미가 큰 일이 아니다.
우리 경제가 성장동력을 잃고 비틀거리고 있다. 조선, 해운 등 주력산업들이 줄줄이 무너져 경제가 저성장의 수렁에 빠졌다. 그러자 경제가 고용창출능력을 잃어 청년들은 대학을 졸업해도 거의 절반이 취업을 못 한다. 설상가상으로 가계부채가 급격히 늘어 1200조 원을 넘었다. 정부는 부실이 심각한 상황에 이른 해운과 조선 등 부실업계에 대해서 구조조정 방안을 내놓았다. 주요 내용은 부실 사업 정리, 근로자 해고 등 강력한 자구노력을 하면 자금지원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필요한 자금은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여 조달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의 비판이 거세다. 정부가 제시한 방안은 부실 대기업을 연명하기 위해 국민의 돈을 계속 찍어내는 것으로 부실을 확대재생산하여 결국 기업, 은행, 경제를 한꺼번에 쓰러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논리다. 따라서 부실에 대한 원인 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실업자 구제, 사회안전망 구축 등 다양한 정책을 구조조정의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협치체제를 구축해서 이러한 조건들을 반영하여 구조조정을 올바르게 추진하면 우리나라 주력산업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노동시장이 양극화의 덫에 걸려 제 기능을 잃고 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비정규직과 정규직 사이에 임금과 근로시간 격차가 비정상적으로 크다.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주말까지 초과근무를 해도 대기업 정규직이 정상적으로 받는 임금의 40% 수준밖에 받지 못한다. 정부는 근로자 파견법과 근로기준법의 개정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노동개혁 방안을 내놓았다.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효율성을 높여 고용을 늘리고 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대기업의 이익을 늘려주는 대신 해고를 쉽게 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개악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앞으로 근로자 전체를 위해 일자리를 늘리고 양극화를 해소하며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협치를 한다면 이 또한 우리 경제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다. 이외에도 서비스발전법, 규제프리존법, 청년고용촉진법 등이 협치차원에서 올바르게 처리된다면 경제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협치가 출발도 하기 전에 암초를 만났다. 야권이 협치의 조건으로 요구한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을 국가보훈처가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정치와 경제 발전에 새 지평을 여는 협치를 멈추면 안 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우리나라 민주화의 상징적인 노래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한시 바삐 정부가 태도를 바꾸어 임을 위한 행진곡을 협치의 걸림돌이 아니라 협치의 첫 출발로 삼아야 한다.
이필상 서울대 겸임교수, 전 고려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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