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의 잘못은 인생 어느 지점까지 따라가야 할까. 그 뉴스를 보며 54년 전 내 뺨을 가른 칼날을 떠올렸다. 그때 나는 피해자였다. 겉의 상처가 아니라 내면의 상처가 평생 함께했다. 피해자의 상처와 가해자의 변화, 그 사이에서 답을 찾고 싶다.

한 청년이 사기죄로 입건이 되고 도망 다녔다. 그는 나중에 판사가 되었고, 법원장이 되었고, 대법관 후보까지 올랐다. 혼란스럽다. 강도범 사기범 청년들의 ‘지금’을 믿어야 할까, 아니면 ‘그때’의 범죄가 그들의 본질일까. 선입견은 바위에 새겨진 글자같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인성은 평생 변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많다. 그렇지만 17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이름 외에는 같은 것이 없다. 그게 인간인지도 모른다.
소년 시절 미숙했던 나의 모습을 돌이켜 본다. 까까머리 검정 교복을 입었던 중학교 시절 나는 학교에서 속칭 ‘짱’이 되고 싶었다. 태권도 도장을 다니면서 열심히 싸움 기술을 익혔다. 불량 학생으로 찍혔다. 모두들 나를 싫어했다.
어느 날 같은 불량 학생의 기습을 받았다. 날카로운 칼날이 귀를 자르고 뺨을 갈랐다. 학교의 게시판에 무기정학이라는 종이가 붙고 그 밑에 나의 이름이 적혔다. 나는 이방인이 됐다. 아이들의 눈에 비친 경멸과 혐오를 잊을 수 없다. 나는 거기서 소년 시절의 일탈에 마침표를 찍었다.
세월이 흘렀다. 나는 장년의 변호사가 됐다. 어느 날이었다. 바짝 마른 남자가 사무실로 밀고 들어왔다. 소년 시절 불량 서클에 있던 친구였다. 싸움을 잘하던 아이였다. 그가 외판원이 되어 물건을 팔러 온 것이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던 그가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난 네가 변호사가 됐다는 게 정말 이해할 수 없어.”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일등을 하는 아이들만 서울법대에 가고 사법고시에 합격하는데 어떻게 네가 변호사가 될 수 있는 거야?”
싸움 잘하던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 재벌 집 아이의 호위무사였다. 같은 교복을 입고 친구라고 했지만 사실은 부하였다. 그 연줄로 그는 재벌회사에 취직을 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잘렸다. 그가 덧붙였다.
“사장인 그 친구와 내가 뭐가 달라? 그런데 세상이 왜 이런 거야? 나는 외판사원이 되고 살기가 왜 이렇게 힘들어?”
나는 침묵했다. 우리 셋 모두 같은 검정 교복을 입었던 열일곱이었다. 하나는 재벌이 되었고, 하나는 외판원이 되었고, 하나는 변호사가 되었다. 그 차이를 만든 게 무엇일까. 그가 내미는 물건을 샀다. 필요 없는 물건이었다. 우리는 더 이상 소년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서로를 17세의 눈으로만 보고 있었다.
세상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그 친구는 여전히 열일곱 살의 나를 보았고, 나는 여전히 17세의 그를 보았다.
조진웅을 향한 세상의 시선도 그럴지 모른다. 어떤 이들은 소년 시절의 폭력만 보고, 어떤 이들은 30년간 쌓아온 연기만 본다. 어느 쪽이 더 진실에 가까운지 모르겠다. 아니, 둘 다 진실이다. 인간은 변한다. 동시에 과거는 지워지지 않는다.
조진웅은 은퇴해야 했을까? 잘 모르겠다. 다만, 17세의 내가 56년을 살아 여기 있듯이, 그도 그렇게 살아왔을 것이다. 용서는 피해자의 몫이다. 하지만 변화의 가능성을 믿는 것, 그것만은 우리 모두의 몫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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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mast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