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스포츠 고질병에 나만 돌 맞아”
사연은 지난해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효준 전 감독은 한 학부모로부터 고발을 당했다. 고려대 농구부가 아들을 스카우트해 준 것에 대한 대가로 4000만 원을 진 전 감독에게 줬다는 내용이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외에도 진 전 감독은 학부모들로부터 총 1억 원을 불법으로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수사와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진 전 감독은 고려대 측으로부터 퇴진을 종용받았다. 처음에는 총장을 만나 상황을 설명하니 ‘사표를 내지 말고 버티라’는 말을 들었고 이에 어느 정도 버텼지만 총장이 바뀌면서 사표를 내고 나왔다. 검찰은 배임수재 혐의로 기소했고, 법원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 그리고 추징금 1억 원이라는 실형판결을 내렸다. 항소를 했지만 지난 8월 22일 2심에서 진 전 감독이 패했고, 대법원 상고를 앞두고 있다.
진 전 감독도 돈을 받은 것은 깔끔히 인정했다. 돈을 받았으니 수재는 명백한 것이다. 하지만 배임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였다.
“저는 학부모들로부터 받은 돈을 결코 개인적으로 착복한 적이 없어요. 고스란히 스카우트 비용으로 썼죠. 저와 제 아내, 그리고 장모님 통장까지 검찰에서 다 뒤졌지만 개인이 쓴 건 없는 걸로 나왔어요. 그러니까 법원에서도 그러더라고요. 뒷돈을 주고 좋은 선수를 스카우트하면 성적이 좋아지고, 또 일 잘했다는 평가를 받고, 그걸 바탕으로 나중에 프로팀 감독으로 가는 것 아니냐, 그러니까 결국 개인의 이익에 부합하니까 배임이 된다고요.”
진 전 감독은 아마추어, 그리고 학원스포츠에서 이런 스카우트 관행은 좋게 말하면 ‘관행’, 나쁘게 말하면 ‘고질병’이라고 했다. “김연아, 박태환 등 우수 선수를 스카우트하려면 스카우트비가 들어가요. 방송에도 한 번 보도됐는데 예전에 연·고대의 하승진 스카우트 경쟁 때 돈이 무려 10억 원까지 올라간 적도 있었죠.”
실제로 이런 아마추어 스포츠의 병폐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실력이 없는 선수를 스카우트할 때 뒷돈을 받고, 이를 다시 좋은 선수를 뽑을 때 스카우트 비용으로 쓰는 것이다. 주요 사립대학은 종목별 ‘선수 TO(정원)’를 늘리고 줄이는 식으로 스카우트 비용을 정하는 것도 익히 알려져 있다. 대학과 해당 감독은 당연히 좋은 선수를 뽑으려 한다. 그리고 그 비용은 불법적으로 만들어 쓰고 있는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누구나 다 실정법을 어기고 있고, 재수 없게 걸리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법에 걸리지 않도록, 즉 법망을 피해 불법 스카우트를 잘하는 것이 유능한 지도자인 셈이다.
진 전 감독이 고려대에 서운한 것은 이 대목이다. 결국 학교는 감독과 공범자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도 불법 스카우트 관행을 부추기거나, 최소한 방관한 혐의를 벗기 힘들다는 얘기다. 각 대학의 체육위원회(혹은 체육실)가 이를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운이 없게도 스카우트 비리로 적발된 감독이 나오면 학교 측은 대외적인 모양새를 고려해 사표를 받기는 하지만 고발자 설득, 사법비용 보조 등 표 나지 않게 도움을 준다고 한다.
예컨대 이미 고려대에서는 농구 이외에도 최근 몇 년 사이 축구, 럭비, 아이스하키 등에서도 스카우트 비리가 터졌다. 그리고 문제 감독이 물러나는 과정에서 학교 측(체육위원회)이 배려를 했다.
진 전 감독은 “2003년 12월, 보수는 적어도 위기에 처한 모교 농구부를 한 번 살려보겠다는 의지 하나로 고려대 사령탑을 맡았어요. 만약에 학교가 지금처럼 불법스카우트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할 것이라면 그때 저에게 그런 일은 하지 말라고 얘기했어야죠. 그리고 제가 부임한 후에도 3년간은 관행대로 해온 스카우트에 대해 어떤 제지나 경고도 받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렇게 해서 좋은 선수를 뽑으면 칭찬을 했죠. 그런데 문제가 터지니 학교는 개인 비리로 몰고 가면서 전혀 관련이 없다고 합니다”라고 토로했다.
오히려 고려대는 이전 케이스와는 달리 진 전 감독에게 철저하게 냉담했다고 한다. 진 전 감독은 재판의 증거자료 확보를 위해 학교 체육위원회 관계자나, 농구계 선후배들에게 ‘확인서’를 부탁했지만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국농구연맹(KBL)에서 각 대학으로 지원금이 나옵니다. 그걸 스카우트비로 써 온 것이 관행이었죠. 지난 해에도 지원금을 예상하고 개인적으로 돈을 빌려 선수를 스카우트했습니다. 어차피 나오는 돈이니까요. 그런데 갑자기 학교에서 올해부터는 줄 수 없다고 그러는 거예요. 미리 얘기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추징금에다 변호사 비용 등을 대려면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팔아야하는 상황입니다.”
진 전 감독의 호소 가운데 체육계가 관심을 가져야할 부분은 이런 문제가 구조적이라는 데에 있다. 종목을 불문하고 대학 지도자는 우수선수 스카우트를 위해 불법을 감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 안 걸리면 다행이지만 만일 법의 처벌을 받게 되면 한순간에 모든 것이 잃게 된다는 것이다. 경제적 손실도 엄청나지만 지도자로 도덕성이 실추돼 다른 자리를 찾기가 힘든 게 현실이다.
농구인 진효준은 고려대-삼성전자(현 서울삼성)를 거친 스타플레이어 출신으로 명지대-여수 코리아텐더(현 부산KTF), 중국 프로농구 1부리그 난강 드래곤스, 고려대 감독을 차례로 역임했다. 제법 성공한 농구인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한순간에 명예는 물론이고 경제적으로도 큰 타격을 입게 됐다. 물론 법원의 판단에 따르면 진효준 전 감독은 명백히 실정법을 위반했다. 하지만 ‘(법에) 안 걸리면 다행’식인 현재의 대학 스카우트 시스템은 확실히 문제가 있고, 제2, 제3의 진효준을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