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 ‘돌려차기’ 먹이며 남에 안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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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8일 34년 만에 귀국한 최중화 씨. 연합뉴스 | ||
“북한은 ITF 이름을 도용해 태권도를 정치적으로 이용해왔다” “ITF 사범은 북한의 정치공작원이었다”…. 최중화 씨의 귀국 일성이다. ITF와 관련해 더 이상 북한정권을 자극하기 힘든 말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공격적인 ‘반북(反北) 정서’가 담겨 있다.
최 씨는 ‘태권도’라는 말과 ITF를 만들고, 박정희 정권을 등진 후 북한으로 가 태권도를 보급한 고 최홍희 장군의 아들이다. 그리고 1980년대 초 세 차례에 걸쳐 전두환 전 대통령 암살을 기도했고, 이 때문에 실형까지 산 인물이다. 실제로 아버지와 함께 수없이 북한을 방문해 태권도를 직접 가르치기도 했다. 친북도 보통 친북이 아닌 것이다. 간첩 수준이 아니라 사실상 북한의 주요인사였던 셈이다(국적은 캐나다). 이런 최 씨가 갑자기(?) 한국으로 와 북한정권을 맹비난하니 화제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번 최 씨의 귀국이 한국정부와 관련이 있는 지극히 정치적이라는 사실이다. 최 씨가 친북에서 반북으로 전향한 것은 이미 4년 전의 일이다. 2002년 6월 15일 최홍희 ITF 총재는 평양에서 사망했다. 그리고 장웅 북한 IOC 위원이 후계자로 지명됐다는 유언장이 공개됐고, 평양특별총회를 거쳐 장웅이 새 총재로 추대됐다. 이에 당시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던 (고 최홍희 장군은 자서전에서 내가 직접 아들을 내쳤다고 밝혔다) 최중화 씨는 크게 반발했다. 북한 정권이 유언 날조에, 날치기 총회를 통해 농구선수 출신의 장웅을 후계자로 억지 지명했다는 것이다. 최중화 씨는 이후 자신만의 ITF를 조직했다. 당연히 이때부터 최중화 씨의 반북은 시작된 것이다.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그럼 문제는 ‘왜 지금이냐’는 것이다. 최 씨는 무려 4년여 동안 남한은 물론이고, 북한과도 등진 채 살아오다 이 시점에서 ‘극적인 남쪽으로의 귀환’을 택한 것이다. 최 씨의 귀환은 한국정부와의 사전조율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고, 북한과 우호적이었던 김대중 정부 막판과 참여정부 때는 이것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MB정권이 들어서고 남북관계가 각을 세우는 냉랭한 관계로 발전하자 최 씨가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 마련된 것.
최중화 쪽 한국 ITF의 한 관계자는 “당연히 귀국 전에 (한국)정부와는 오해를 풀었다. 과거문제(전두환 암살기도 등 친북활동)에 대해 필요한 조사를 받기는 하겠지만 이 과정에서 곤란을 겪거나 실제 사법처리로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최중화 씨의 귀국 시점은 또 한 가지 측면에서 흥미를 끈다. 바로 9월 11, 12일 이틀 동안 중국 베이징에서는 세계태권도연맹(WTF)과 장웅 ITF의 통합 조정위원회가 열렸다. WTF는 김운용 전 IOC 수석부위원장이 만들어 태권도를 세계인의 스포츠로 만들고, 올림픽종목까지 올려놓은 한국의 단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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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중화 씨의 노림수는 간단하다. ‘북한정권의 장웅 ITF는 정통성이 없다. 따라서 거기와 통합하는 WTF의 노력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ITF는 장웅 조직, 최중화 조직 외에 최홍희 총재 시절 ITF사무국 임원이었던 베트남계 캐나다인 트란 콴의 ITF까지 있다. 세 단체 모두 정통성은 물론이고 자신의 세가 가장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중화 씨의 귀국 후 한국 내 3단체의 인사들이 태권도전문매체 등에서 치열하게 댓글전쟁을 펼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장웅 ITF와 트란콴 ITF 측은 최중화 씨에 대해 모든 공격을 퍼붓고 있고, 집행부 대부분이 베이징으로 간 WTF는 공식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최중화 씨의 귀국에는 ‘포스트 김운용’ 시대 태권도계 권력 다툼과도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충청대학 오경호 이사장은 이번 최 씨의 한국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 씨의 한국 일정을 거의 모두 함께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오 이사장은 1998년 독자적으로 ‘세계태권도문화축제’를 시작하는 등 태권도와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태권도에 대한 애정이 대단해 제도권과는 별도로 충청대학 차원에서 태권도 발전을 위해 제법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런데 오 이사장은 지난해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태권도문화축제에 최중화 ITF를 참가시키더니 올해엔 문화축제는 물론이고, ITF 선수들과 함께 이종격투기대회를 열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9월 10일 충청대학에서 국내 이종격투기단체인 스피릿MC, 그리고 최중화 씨와 함께 ‘태권도 프로화’에 대한 조인식을 가졌다.
오경호 이사장은 지난 7월 “필요하다면 WTF 총재 선거에도 출마할 생각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최중화라는 인물과 그 ITF 조직이 태권도에 대한 오 이사장에게 더 없이 좋은 상업적 소재인 셈이다.
태권도계의 정치판도는 조정원 총재의 장악력이 떨어지면서 내년도 WTF 총재 선거를 앞두고 극도로 혼미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혼란기에 귀국한 최 씨의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