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는 어디 가고 피라미만 걸리나
▲ 바다이야기 파문으로 전국이 떠들썩했던 지난 8월 말 검찰이 영상물등급위원회를 압수수색했다. | ||
이번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시각은 매우 비판적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조사한 한 결과를 보면 국민들의 74.5%가 ‘국정조사와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고 대답하고 있다. 반면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는 의견은 17.6%에 그치고 있다. 그럼에도 검찰 수사 결과는 ‘피라미’를 건드리는 선에 머물고 있다는 불만이 정치권에서 터져 나온다. 사건 발생 석 달째로 접어들고 있는 ‘바다이야기 게이트’를 중간 결산해본다.
검찰은 지난 8월 21일 게임개발업자를 첫 구속한 이래로 ‘바다이야기 사건’ 수사 착수 두 달째를 맞고 있다. 그동안 수사 실적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검찰은 상품권 업자와 게임기 업자 10여 명을 구속하고 수천억에 이르는 범죄수익을 환수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는 ‘피라미’에 불과하다는 것이 야권의 시각이다. 문제는 수사 초기 무성했던 권력 주변 ‘대어’들과 정치권 인사들의 개입 부분이라는 것이다.
먼저 노 대통령 친인척에 대한 의혹부터 살펴보자. 민주당 조순형 의원은 최근 국감에서 “(대통령) 조카는 관련이 없다고 말한 것은 수사 가이드라인이다”라고 질의한 바 있다. 한나라당 이재웅 의원도 “바다이야기의 몸통은 송종석 지코프라임 회장이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조카 노지원 씨가 그의 정치적 배경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사실 노지원 씨는 오락 게임기 판매회사와 합병한 코스닥 기업인 우전시스텍에 근무했던 것으로 드러나 ‘바다이야기 사건’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됐다. 하지만 청와대가 “노 대통령의 조카 노지원 씨는 ‘바다이야기’ 게임기 판매회사인 ‘지코프라임’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한 뒤 노 씨 연루 부분은 잠잠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이재웅 의원은 “바다이야기의 몸통은 송종석 지코프라임 회장이다. 그리고 노 대통령의 조카 노지원 씨가 송종석 회장을 서울 목동의 현대타워에서 자주 만났다는 정황도 있다. 노 씨가 지코프라임과는 무관하다고 하지만 두 사람의 친분관계를 봐서는 그 주장에 신빙성이 별로 없다. 특히 노 씨는 KT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 우전시스텍에서 영업이사로 일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 뭔가 다른 목적으로 우전시스텍에서 근무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한 이 의원은 “노 씨가 우전시스텍에 근무할 때 해외 마케팅 명분으로 중국으로 자주 출장을 다녔던 것으로 안다. 그 즈음에 송 회장도 중국과 관련된 사업을 하고 다녔다. 두 사람의 친분 관계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이전일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청와대는 이 의원의 주장에 대해 “이미 노 씨와 송 회장 부분은 검증이 된 부분이다. 두 사람 사이의 커넥션 부분에 대한 의혹 제기는 헛물켜는 일일 것이다”라고 단언하고 있다.
사실 검찰은 최춘자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서에서 “상품권 발행업체 지정 신청 당시 세금을 체납하고도 완납증명서를 제출한 점 등에 비춰 금품 로비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최 대표가 허위로 공문서를 작성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본지가 입수한 최춘자 대표 공소장에는 그 사실을 뺀 것으로 확인됐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검찰이 코윈솔루션 최 대표의 납세 기록에 관한 허위공문서 혐의를 기소 과정에서 뺀 부분이 석연치 않다. 축소 수사 의혹이 있다. 아니면 국세청에서 전산 조작을 했을 가능성도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한 수사도 해야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사실 대통령 친인척 연루 부분은 청와대에서 거의 스크린을 마쳤기 때문에 더 이상 미심쩍은 부분이 나오지 않을 것이란 게 청와대측 설명이다. 하지만 검찰의 의지에 따라서는 대통령 친인척 부분에 대한 수사도 급물살을 탈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관측도 있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 연루된 정치인들의 경우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한다. 검찰은 최근 게임 관련 협회의 지원을 받아 외유를 다녀온 열린우리당 정청래 의원 보좌관 오 아무개 씨를 소환 조사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박형준 의원의 보좌관 정 아무개 씨도 게임 관련 업체로부터 수천만 원을 받은 혐의로 두 차례 조사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수사에서 정치권 인사의 금품수수가 드러난 것은 처음이다.
이에 따라 지난달 문화관광부 국장을 구속한 이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던 검찰 수사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를지 주목되고 있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문제가 되는 일부 국회의원 보좌진들의 금융계좌를 살펴보고 있고, 일부 계좌추적 과정에서 성과가 나왔다. 게임업체 등으로부터 돈을 받은 보좌진들이 더 있는지도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검찰 주변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검찰은 정 씨 혐의에 대해 집중 추궁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받은 액수도 수천만 원이 아니라 수억 원대라는 이야기도 있다. 정 씨 수사가 정치권 사정의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본다”고 전제하면서 “그런데 게임 업체에서 일개 보좌관을 보고 돈을 주었겠느냐. 정 씨는 중간 다리고 그 윗선으로 건너갔을 가능성도 있다. 검찰의 수사 의지가 느껴진다”고 밝혔다.
그런데 박 의원은 보좌관의 혐의에 대해 “여당의 수사 의뢰로 제가 조사를 받게 된 상황과 보좌관에 대한 검찰수사는 전혀 관계가 없다. 제 사안은 물론 이 문제에 대해 검찰의 엄정하고 철저한 수사를 요청하며 이를 통해 모든 진실이 명확하게 밝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이 정치권으로 칼날을 겨누었지만 실제로 얼마나 성과를 낼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지수라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최근 검찰 관계자를 만난 한 인사는 이에 대해 “수사팀이 매일 야근을 하는 등 크게 고생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수사 결과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는 표정이더라. 특히 정치권 연루 부분은 나온 게 별로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 12월 26일까지인 수사 시한을 연장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고 밝혔다.
‘바다이야기’ 수사팀은 특히 법원으로부터 영장발부를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위의 인사는 “법원이 이용훈 대법원장 발언과 최근 한 부장판사가 검찰에 구속된 것에 대한 대응으로 검찰의 영장 신청을 계속 퇴짜놓는 것 같다. 그래서 계좌추적이나 통화기록 등을 위한 영장 신청도 기각돼 수사에 매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사건에 연루된 ‘몸통’들은 사건 초기 언론에 보도된 뒤 대부분 잠수를 타 검찰의 수사도 진척이 더딘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 야권도 동료 의원의 문제가 불거질까 우려해 추궁의 수위를 조절하고 있는 느낌도 주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