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 줄 테니 등록금 먼저 내라!” 가방끈 중시하는 시대상 이용 희대의 사기극 벌여
노원경찰서는 지난 5월 23일 김 아무개 씨(65)를 포함한 일당 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종로구 소재 빌딩에 대학교를 만들고 수강생 68명에게 등록금, 교재비, 논문작성비 등의 명목으로 4억 원 이상을 편취한 혐의다. 김 씨 일당은 지난 2012년 12월 대학교를 설립해 아내와 자녀 등을 설립이사 및 교수 등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해당 대학은 교육부에 정식 등록되지 않은 가짜 사이버 대학이다.
피해자들은 학교의 “능력이 있는데 졸업장이 없는 사람을 위한 곳”이라는 말을 듣고 찾아갔다. 모집공고에는 “본교 졸업, 수료, 학위자는 미 법무부의 ‘아포스티유’ 확인을 받게 된다. 이는 세계 92개 회원국에서 인정될 뿐 아니라 별도의 확인절차 없이 한국을 포함한 회원국 어느 대학으로든 진학과 편입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해당 가짜 대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온 모집 공고. 현재 이 공고는 삭제된 상태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학교는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일자를 다 채우지도 않았는데 학위를 먼저 줬으며 별도의 절차 없이 교수로 임용시켜줬다. 이 학교 육임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신 아무개 씨는 “학교가 석사 학위를 먼저 줄 테니 등록금을 먼저 달라고 요구했다. 등록금뿐 아니라 논문 작성비 200만 원도 달라고 요구했다. 돈을 내면 총장이 알아서 다 완성해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그간 공부해온 자료와 돈을 줬다. 그런데 만들어 준 논문을 보니 내가 준 자료만 그대로 복사해서 석사논문이라고 제본돼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육임과목을 맡던 교수가 병원에 입원하자 총장 지시로 내가 강의를 이어서 했다. 2014년 10월부터 해당학기 강의를 내가 다 했고 2015년 2월부터 5월까지 강의했다. 그러다가 총장 뒷담화를 했다는 이유로 갑자기 교수직에서 잘렸다. 강의료는 단 한푼도 받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동양학 교수를 했던 김 아무개 씨 역시 똑같은 주장을 했다. 김 씨는 “먼저 석사 학위를 줄 테니 등록금 400만 원을 요구했다. 400만 원을 입금했더니 얼마 안 가 박사 학위까지 주겠다며 600만 원을 추가로 요구했다. 아직 그런 돈이 없다고 했더니 교수를 시켜주겠다며 감언이설로 꼬셨다”며 “내가 돈을 내자 그 자리에서 학교 홈페이지에 내 사진을 교수라며 올렸다. 실제로 카메라 앞에서 강의를 하긴 했는데 강의 내용에 대해서는 좋다 나쁘다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학교는 중고교 미필자 본교 입학고시과정, 석사과정, 박사과정 등 다양한 커리큘럼을 제시했는데 강의 내용은 다 똑같다”고 전했다. 김 씨 역시 석사 학위를 받기 위해 논문 작성비 150만 원, 심사비 50만 원을 학교에 냈다. 논문을 본인이 쓴 게 아니라 학교에서 받은 셈이다. 신 씨와 김 씨는 과거 학원에서 강의를 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교수로 써먹기 더 용이했다.
가짜 대학교 교수 촬영이 이루어진 강의실. 사진제공=노원경찰서
피해자들이 주장하는 학교의 악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들에 따르면 학교는 교수들에게 학생을 데려오라고 닦달했다. 김 씨는 “학생을 데려오면 그 학생이 낸 등록금의 50%를 나에게 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학생을 데려갔는데 돈을 주지 않아 항의하자 동냥하듯이 20%에 해당하는 돈만 줬다. 나중에는 교수를 소개하라고도 했다. 여기서 교수는 홈페이지 소개란에 걸어 놓을 명예교수를 의미했다. 명예교수가 되려면 학교에 500만 원을 내야 하는데 그중 200만 원을 나에게 주는 조건이었다. 어떤 사람을 데려와야 하는지 물어보니까 그냥 아무나 데려오라고 했다”고 전했다.
학교는 사이판에 설립된 사이버대학교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총장 등은 학생들에게 사이판 이야기를 평소에도 많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학교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곳은 미국의 한 사이버대학 한국 캠퍼스로 돼 있다. 이 대학의 본교는 사이판에 있다. 김 씨는 “지난해 졸업비 100만 원이 청구됐는데 대체 왜 졸업비가 100만 원 드는지 물어보자 졸업식을 사이판에 가서 한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사이판 졸업식은커녕 한국에서도 제대로 된 졸업식이 없었다”며 “어느 날은 총장이 교수들을 불러 다달이 급여를 주기 힘드니까 연말에 몰아서 주겠다고 했다. 막상 연말이 되자 사이판에 있는 은행 가서 찾으라는 황당한 말만 했다”고 주장했다. <일요신문>은 해당 학교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사이판 전화번호로 연락해본 결과 해당 사이버대학 관계자가 전화를 받았다. 그는 기자의 얘기에 “믿을 수 없다”며 상당히 놀라는 반응을 보인 뒤 “나도 이사장을 지난해 9월에 본 게 마지막”이라고 밝혔다.
이외에도 성추행이 있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신 씨는 “여자 교수들의 외모를 비하하거나 엉덩이나 가슴을 만지는 등의 성추행이 있었다”며 “경찰은 왜 사건이 발생한 즉시 신고하지 않았냐고 했지만 그 당시에는 이사장이나 총장에게 잘못 보이면 교수직에서 바로 잘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 성추행 혐의에 대해서는 무혐의처분을 받은 상태다.
참다못한 신 씨는 지난해 7월 학교를 상대로 고소에 들어갔다. 신 씨를 비롯한 다른 교수 일부도 고소에 동참했다. 경찰은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고 금융거래 자료 등을 분석해 피해자들 및 피해금액 등을 특정했다. 수사 도중 본인이 피해자임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례도 있어서 피해자로 특정하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학교 관계자들이 사기 혐의로 입건됐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측은 여전히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학교는 홈페이지를 통해 “현재 경찰이 배포한 보도자료에 의한 언론들의 보도는 외국 사이버대학에 대한 개념과 시스템 및 기능을 모를 뿐 아니라 본교의 정체성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의 기사들”이라고 주장했다. 학교 측은 또한 교수진에게 학생을 데려오라는 요구는 없었고 입학생들이 속아서 입학한 경우는 더더욱 없다고 주장했다. 경찰에 대해서도 “경찰이 수강생들에게 억압적으로 ‘이 학교는 미국에서도 인가받지 못한 가짜 대학이다’ ‘경찰에 나와서 피해 진술하면 등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왜 그런 가짜 대학에 다니느냐’는 말로 학교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노원경찰서 전경.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학교가 주장하는 요지는 처음에 학생들에게 관련 학위가 국내에서 인정되지 않는다고 말을 했다는 것”이라며 “경찰이 약 40명의 피해자로부터 피해 진술을 받은 결과 피해자들은 일관되게 국내에서 인증되는 학위라고 들었다고 진술했다. 또한 광고글에도 국내 대학으로 진학 및 편입이 가능하다고 홍보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언론이 이번 사건을 보도한 후 경찰이 특정하지 않았던 다른 피해자들한테도 전화가 많이 온다. 그래서 계속 여죄를 수사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