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6·말리부 ‘배기량 파괴’…쏘나타 7가지 엔진 선택 가능
쉐보레 말리부는 국내 중형차 시장의 고정관념에 변화를 몰고 왔다.
지난해 현대차는 쏘나타의 ‘일곱 가지 쏘나타’ 광고를 내놓았다. 겉모양은 쏘나타로 동일하지만 무려 7가지의 각기 다른 엔진을 선택할 수 있다는 광고다. ①2000cc 가솔린 자연흡기 ②1700cc 디젤 ③1600cc 가솔린 터보 ④2000cc 가솔린 터보 ⑤하이브리드 ⑥플러그인 하이브리드(3819만 원) ⑦2000cc LPi가 그것들이다. 기아차 K5도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제외한 6가지 엔진 라인업을 쏘나타와 동일하게 갖추고 있다.
다양한 선택지가 있음에도 가장 많이 팔리는 엔진사양은 2000cc 가솔린 자연흡기다. 가장 익숙한 데다 쏘나타 라인업 중 가장 싸기 때문이다. ‘쏘나타’를 산다는 것은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기보다 시장의 흐름을 따른다는 의미가 크다. 퍼포먼스를 추구하기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남부끄럽지 않은 차를 사고 싶은 심리다. 또 중고차로 처분할 때도 좋은 값을 받아야 하므로, 가장 많이 팔리는 ‘쏘나타 은색(또는 흰색) 2000cc 가솔린 자연흡기’를 선택하게 된다.
현대차의 주요 수출시장인 미국은 다른 분위기다. 미국에서 쏘나타와 경쟁하는 도요타 캠리, 닛산 알티마, 혼다 어코드 등은 2.5ℓ 가솔린 자연흡기, 3.5ℓ 가솔린 자연흡기로 엔진 라인업이 구성돼 있다. 독일 차들이 디젤엔진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미국과 일본에서는 가솔린 선택 비중이 월등히 높다. 휘발유 가격이 한국의 4분의 1 수준인 미국답게 중형차는 2500cc가 기본이다.
부가세 포함. 말리부는 1500cc 가솔린 터보 엔진. 최신 디젤엔진의 경우 기본적으로 터보(Variable Geometry Turbo)가 장착. LPi 엔진의 경우 가솔린 자연흡기와 엔진구조는 동일.
2004년 5세대 쏘나타(NF) 출시 때 현대차는 2000cc 가솔린 자연흡기와 더불어 2400cc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을 내놓은 바 있다. 국내 도로에서 2400cc 쏘나타를 거의 볼 수 없었지만, 미국 수출을 위해 기왕 만든 것이므로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히는 차원에서 국내 출시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현대차의 터보기술이 본 궤도에 오르면서 2000cc 가솔린 터보를 출시한 뒤 곧 2400cc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을 단종시켰다. 7세대 쏘나타(LF)는 처음부터 2400cc 가솔린 자연흡기 모델이 나오지 않았다.
구형 쏘나타(YF)와 신형 쏘나타(LF)를 시승해 본 기자의 입장에서는 2000cc 가솔린 자연흡기 모델은 파워에서 아쉬움이 남았다. 경쟁 모델 대비 초기 반응성이 뛰어나지만 중속 이상에서는 숨이 차는 듯했다. 최근 소비자들은 다양한 차들을 직간접적으로 접하면서 ‘기본형’에서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충족하려 한다. 자동차 제조사들도 이런 소비자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다양한 엔진 라인업을 갖춰야 하는 것이 지금의 시장이다.
쉐보레 말리부가 1500cc 가솔린 터보(2353만 원, 이하 최저가 기준)와 2000cc 가솔린 터보(3012만 원) 두 가지 라인업으로 출시된 것은 다운사이징 추세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말리부의 1500cc 가솔린 터보 엔진은 쏘나타의 2000cc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10년 전만 해도 터보는 특별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일반적인 것이 됐다. 그만큼 기술이 상향평준화된 것이다. 터보기술 하나로 버텼던 스웨덴 브랜드 사브(Saab)가 사라진 것은 터보 외에 아무런 매력이 없기 때문이다.
쏘나타도 1600cc 가솔린 터보 모델이 있다. 여기에 장착된 엔진은 벨로스터 터보에 최초 장착된 것으로 지금은 아반떼 스포츠에도 적용돼 있다. 기왕에 개발한 엔진이니 부품 공유가 가능한 쏘나타에 장착해도 큰 개발 비용이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2000cc 가솔린 자연흡기 모델보다 살짝(+162만 원, 최저사양 기준) 비싸다 보니 쏘나타에서는 큰 매력이 없어 보인다. 출력과 토크가 소폭 높지만 극적인 상승은 아니다.
2000cc 가솔린 터보 모델에 없는 듀얼 클러치 변속기(DCT)를 1600cc 가솔린 터보 모델에서만 접할 수 있다는 점이 유일한 매력 포인트다. 이는 벨로스터 터보, 아반떼 스포츠처럼 작은 체구에 날렵한 몸놀림을 가진 ‘퍼포먼스 카’를 선보이려는 목적에서 준중형부터 DCT가 개발된 데 따른 것이다. 쏘나타 라인업에서 DCT는 1700cc 디젤엔진에도 적용돼 있다.
르노삼성 SM6의 엔진 라인업은 다소 의외다. 2000cc 가솔린 자연흡기 모델(2376만 원)이 일반형이고, 배기량이 낮은 1600cc 가솔린 터보 모델(2754만 원)이 고급형이다. 가격 차이는 무려 378만 원이다. 같은 급의 엔진을 가진 쏘나타 가격이 2376만 원인 데다 심지어 쏘나타 2000cc 가솔린 터보 모델이 2651만 원으로 더 싸다. SM6 1600cc 터보 모델이 얼마나 선전할지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르노삼성 SM6는 1600cc 가솔린 터보 모델이 2000cc 가솔린 모델보다 고급형으로 분류돼 있다.
SM6와 말리부의 도전으로 인해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차 쏘나타(2214만 원), 기아차 K5(2204만 원)가 국내 중형차 시장에서 가장 싼 차가 됐다. 르노삼성 SM5(2141만 원)가 가장 저렴하긴 하지만 쏘나타·K5와 가격 차이는 63만~73만 원 차이고, 르노삼성은 SM6로 쏘나타에 도전장을 던진 상황이다. 르노삼성은 그랜저와 경쟁구도를 만들고 싶겠지만, 시장은 쏘나타와 경쟁을 얘깃거리로 만들어내고 있다. 르노삼성도 입소문을 만들어내는 데는 성공했으니 손해 본 장사는 아닐 것이다.
한편 국내 브랜드에서 유일하게 하이브리드카를 판매하는 곳은 현대·기아차다. 쏘나타·K5가 중형차급 하이브리드를 판매하고 있는데, 도로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다만 2014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저유가로 하이브리드 매력이 떨어진 상태다. 최근 유가가 다시 꿈틀대고 있으므로 향후 디젤 모델과 하이브리드 모델의 판매량에 관심이 모아진다.
하이브리드카는 출고가는 비싸지만 특소세 할인 혜택이 있기 때문에 판매가는 오히려 130여만 원 싸다. 쏘나타 하이브리드의 출고가는 2973만 4000원이지만 판매가는 2844만 원이다. 취득세(최저 129만 원)와 공채할인(매일 시세가 변동됨)을 받으면 약 150만 원의 추가 할인효과가 있다.
국내 유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인 쏘나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는 계륵 같은 존재다. 가격이 3819만 원이지만 순수전기차(EV)가 아니기 때문에 전기차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 자동차라는 이유에서다.
쏘나타 PHEV는 국내 유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이지만 순수 전기차가 아니라는 이유로 전기차 보조금 지급대상에서 제외된다.
PHEV는 순수전기차처럼 충전된 전기로 운행하다 배터리 충전량이 줄어들면 하이브리드카처럼 운행하는 차다.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의 장점을 합친 가장 현실적인 친환경차로 여겨진다. 2000만 원(지자체에 따라 달라짐) 가까운 보조금이 지급되는 전기차와 달리 PHEV 보조금은 500만 원에 그친다.
우종국 자동차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