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소년’ 정상권 향해 다시 비상
▲ 목진석 9단 | ||
막판을 면한 것이 대박이란 건 아니다. 바둑 내용이 대역전의 활극이었다. 중앙에서 이세돌 9단의 필살기가 작렬하면서 백의 요석이 떨어졌다. 흑의 건너붙임 한 방에 백돌들이 헤어 나오지를 못한 것. 바둑은 그걸로 끝인 것 같았고, 도전5번기는 이 9단의 3 대 0 스트레이트 승리로 싱겁게 막을 내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거기서부터 이날의 드라마가 시작된 것. 목 9단은 흑 대마를 향해 패를 들이댔다. 패는 패지만 원래는 말이 안 되는 패. 팻감도 없었고, 패에 지면 백 대마도 날아가게 돼있었던 곳이었다. 그러나 중앙에서 잡혀있는 백돌들이 팻감 공장이었다. 흑의 놀라운 필살기 일격에 낙엽처럼 쓰러졌던 돌들이 팻감의 유령으로 살아나 멀쩡하던 흑 대마를 격침시키며 역전 드라마를 연출한 것.
목 9단은 1980년생으로 1994년에 입단했다. 나이 스물여덟에 입단 14년차. 중고참이다. 입단 직후 2단 시절에 한-중 대항전에 출전해 당시 중국 바둑의 간판이었던 녜웨이핑 9단을 잡아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우주 소년’이란 별명을 얻었다. 이후 승승장구할 것으로 기대됐으나 타이틀의 길목에서마다 이창호 9단에게 막히고, 앞서 이창호 9단과 동년배인 최명훈 9단이 그랬던 것처럼 결국은 이창호를 넘지 못했다. ‘정상’은 밟아보지 못하고 ‘정상권’의 한 사람으로 그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텀블링하듯 중앙무대에 얼굴을 나타내더니 요즘은 갤러리를 몰고 다니고 있다. 매판 호방한 대세력작전, 불꽃 튀기는 전면전, 기상천외한 사석작전, 살 떨리는 수상전 등으로 격렬하기 그지없고 강렬한 인상의 바둑을 선보이고 있는 탓이다. 그것에 갤러리가 열광하고 있다.
스물다섯 전에 정상에서 밀려난 것으로 보였던 목진석이 어쩌면 스물다섯 살이 넘어 다시 돌아와 정상을 밟는, 그런 기록을 세울지 모르겠다.
2008 한국리그 최종 결승도 재미있게 됐다. 한국리그는 프로야구를 많이 닮았다. 8팀이 페넌트레이스를 펼쳐, 일단 시즌 순위를 가린 다음 포스트시즌에서 4위와 3위가 준플레이오프, 거기서 이긴 팀이 시즌 2위와 플레이오프, 다시 거기서 이긴 팀이 시즌 1위와 코리안 시리즈, 왕중왕 타이틀을 놓고 격돌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다만 프로야구 코리안 시리즈가 7번기인데 반해 바둑 한국리그 챔피언 결정전은 3번기. 현재 시즌 1, 2위인 신성건설과 영남일보가 1승 1패다. 여기서도 신성건설 2지명 선수인 목 9단은 갤러리를 몰고 다니고 있다. 다만 여기서는 승점이 아니라 패점으로 신성건설 양재호 감독의 애를 태우고 있다. 스타는 어쨌든 뉴스를 만들어야 하는 것.
1, 2차전에서 윤준상 7단을 거푸 만나 2패를 당했다. 통산 전적에서도 3승 8패. 목 9단에게는 이창호 이세돌 말고는 윤 7단이 천적인 셈이다.
2차전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 한 판은 바로 1회전이었던 강유택 2단과 윤찬희 2단의 대결이었다. 1차전을 내주는 바람에 막판에 몰려 있던 신성건설 윤 2단이 오히려 반집승했다. 윤 2단의 분전으로 기세가 살아난 신성건설은 영남일보에 반격을 하는 데 성공, 두 팀은 1 대 1 타이를 기록했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