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행 눈도장 찍어야 도장 쾅
▲ 로이스터(왼), 선동열 | ||
팬? 흥행? 뭐니뭐니해도 한국프로야구에서 사령탑의 ‘수명’은 성적에 의해 결판난다. 한국에선 야구단을 통한 모그룹 홍보 효과의 실체가 불분명하다. 야구단 자체가 수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금 지원을 전적으로 모그룹에 의존하는 우리네 야구팀들은 무조건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 그래서 계약 마지막해의 감독들은 몸과 마음이 부산할 수밖에 없다.
롯데 로이스터 감독=롯데는 2007년 말 기존 강병철 감독 대신 사상 최초 외국인 사령탑인 제리 로이스터 감독을 영입했다. 파격적인 시도였다.
로이스터 감독은 올해 비교적 여건이 좋다. 지난해 이미 롯데를 8년 만에 포스트시즌 무대에 올리며 최고의 인기를 얻었다. 지난해 야구장에서 부산시장과 함께 ‘부산갈매기’를 부르는 등 쇼맨십도 두루 갖췄다.
‘야구가 곧 종교’라는 부산의 열기를 감안했을 때 로이스터 감독은 올해 역시 4강에만 들면 무난하게 내년 재계약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롯데 구단의 한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경기를 마치고 로이스터 감독이 사직구장의 출입구에서 승용차 있는 곳까지 약 50m쯤 걸어갈 때 얼굴을 알아본 홈팬들이 거의 인기 아이돌 가수를 만난 것처럼 열광적인 응원을 보낸다. 이 정도로 팬들에게 관심 받는 감독을 만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어느 정도의 성적만 낸다면 재계약은 무난하리라 본다”라고 논평했다.
물론 변수는 있다. 형편없는 성적으로 처진다면 롯데는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2008년의 엄청난 롯데 열풍이 과연 외국인 감독 때문이었는지, 아닌지를 시험하기 위해 지휘봉을 국내파에게 넘겨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삼성 선동열 감독=삼성 선동열 감독은 가장 관심이 모아지는 사령탑이라고 할 수 있다. 선동열 감독은 올시즌을 마치면 삼성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5년을 무사히 마친 감독이 된다. 역대 최장수 감독이란 얘기다. 동시에 계약이 만료된다.
▲ 왼쪽부터 김인식,조범현,김재박 | ||
지난해 프로야구판에는 미묘한 루머가 있었다. 선동열 감독이 4년째를 마친 뒤 경질되고 그 자리를 외부 인사가 차지할 것이란 근거 없는 소문이었다. 그때에도 구단 관계자들은 “전혀 신경 쓸 필요없는 낭설”이라며 코웃음을 치는 분위기였다. 결국 선 감독의 경우엔 올해 성적이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한화 김인식 감독·KIA 조범현 감독=WBC 대표팀 사령탑을 겸하고 있는 한화 김인식 감독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7월 중순까지 넉넉하게 4강 진출을 자신할 정도로 승수를 쌓아올렸지만 후반기 들어 8승18패로 주저앉으면서 삼성에 추월당했다. 구단에선 이처럼 무기력하게 포스트시즌 티켓을 놓친 점을 놓고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고 한다. 이미 4년간 팀을 이끌어온 김인식 감독의 ‘덕장 리더십’이 한계에 부딪힌 것 아니냐는 눈길을 주면서 말이다.
김인식 감독이 재계약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정규시즌에서 최소 2위 안에는 들어야 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 같은 구단 분위기가 반영된 예측이다. 물론 WBC에서 또 한 번 4강 신화를 재현한다면, 기존의 ‘국민 감독’ 이미지와 맞물려 소속팀과 재계약 때 프리미엄을 얻을 수 있다. 이 경우엔 정규시즌에서 4강에만 들어도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따라서 김인식 감독의 올해 목표는 ‘4강+4강’인 셈이다.
KIA 조범현 감독도 올해 말로 2년 계약이 만료된다. 어찌 보면 8개 구단 감독 가운데 가장 어려운 처지에 놓인 감독이기도 하다. 당초 2년짜리 계약으로 KIA 유니폼을 입을 때부터 주변에서 말이 많았다. 3년이 아닌 2년짜리 계약이란 건 구단이 조범현 감독을 전적으로 신뢰한다기보다는 “일단 두고 보자”는 심정으로 영입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서재응 최희섭 같은 굵직한 메이저리거 출신을 데리고도 6위에 그쳤다. 올시즌에는 최소 4강에 들고 구단의 심판을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다.
LG 김재박 감독=지난해 꼴찌팀인 LG의 김재박 감독은 2년간 실망스러운 결과를 남겼다. LG가 김 감독을 영입한 뒤 FA 투수 박명환을 40억 원을 들여 데려오는 등 투자에 나섰지만 5위, 8위에 그쳤다. 과거 현대 시절 우승을 밥 먹듯이 했던 김 감독이 LG에 와선 2년간 힘을 못 썼다.
올해 또다시 4강에 실패하면 무조건 경질될 것이라는 의견은 바로 이 같은 관점에 근거한 것이다.
반면 올해 성적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무난하게 재계약에 성공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LG 구단의 구본준 구단주가 직접 사회인야구에 참가할 정도로 야구에 대한 애정이 높은 데다 김재박 감독을 굉장히 신뢰한다는 것이다.
실제 주변 정황이 어떻든 김재박 감독은 올해 명예회복을 해야 한다. 구단에선 지난 12월 이진영과 정성훈이라는 굵직한 FA 타자 두 명을 영입하는데 큰 돈을 썼다. 전력 증강은 감독 입장에선 언제든지 환영할 일이지만, 한편으론 성적에 대한 압박감으로 다가오는 게 현실이다. 이건 마치 “이렇게 해줘도 4강에 못 들면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지요”란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으니 김재박 감독도 계약 마지막 해에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질 것 같다.
장진구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