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단의 방심, 초단의 노림
상대가 모두 중국인인 것이 별로 유쾌하지 않다. 한국 최초의 여자 9단이 중국의 신출내기 초단에게 지다니. 질 수도 있는 거지만 그래도 이겨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조혜연 8단도 그렇다. 루이 9단이 세계 최강의 여류기사라고는 하지만 언제적 루이인가. 더구나 루이 9단(1963년생)은 낼모레 쉰을 바라보는 나이인데.
조 8단의 경우 학업과 신앙생활에 모두 열심이어서 승부에 전념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현재 고려대 영문과 재학 중이다. 바둑계로선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본인의 인생이므로 옆에서 뭐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신앙과 공부와 승부, 모두 다 중요한 것이니까.
소개하는 바둑은 박지은-리허의 정관장배 대국.
<1도> 백이 괜찮은 국면. 상변 백은 중앙이 터져 있어 심하게 공격 받을 모습은 아니다. 백1로 나오니 주변 흑도 그렇게 강한 돌은 아니다. 그랬는데….
흑2 다음 백3과 흑4, 이게 이 바둑의 명암을 갈랐다. 백3은 큰 실수였고, 흑4가 방심의 허를 찔렀다. 흑4는 거의 절대 선수. 백5를 생략하면 흑A로 잇는 수를 보고 있다. 흑4는 동시에 필살의 노림을 품고 있었다. 그 전에 백3은 방향이 반대였다. 들여다본다면 B쪽에서 해야 할 자리였다.
<2도> 실전진행. 흑1로 찝는 수. 박지은 9단은 이걸 깜빡했던 것. 백2로 연결해야 하는데 그걸 기다려 흑5로 이쪽을 뚫는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백4로는 A에 두어 패로 버티면서 흑5를 방비해야 한다는 얘긴데 이 패를 버틸 방법이 없다. 흑은 거의 꽃놀이패인 데다 웬만하면 만패불청으로 나올 것이다.
어쨌거나 백6으로 굴신을 했는데도 <3도> 흑7에 이르러 대마가 함몰했다. 비명횡사. 승부도 물론 끝.
<4도>를 보자. <1도> 백3으로 B에서 들여다보아, 백△와 흑▲가 교환된 상황이었다면 백1로 막아 그만이었다. 흑2에는 백3의 장문으로 잡을 수 있다. 실전에선 그게 안 되었나?
<5도> 백1이면 흑2로 끊어 버린다. 백도 3, 5에서 7을 거쳐 9쪽을 뚫는 반격이 있을 듯도 하나 <6도> 흑1~5로 몰아 버리고 7로 끊어 잡으면 백은 다음이 없다.
박지은 9단, 조혜연 8단의 심기일전을 기대한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