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급관리 아버지 둔 평민 출신…지난해 한 차례 유산의 아픔 겪어
지난 2014년 3월 9일 김정은의 동생 김여정이 김일성정치대학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투표를 하는 모습이 ‘조선중앙TV’를 통해 공개됐다.
# ‘운명의 남자’는 어떻게 만났나.
김여정은 1988년 9월 1일 생이다. 북한 최고지도자인 오빠 김정은과 마찬가지로 어머니 고영희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김여정은 김정은의 심적인 최측근이다. 김여정은 2007년경 김일성종합대학에 입학했다. 국내에 잘 알려진 바 없지만, 확인한 바에 따르면 그의 전공은 물리학부다. 다만 그는 일반적인 4년 학부과정이 아닌 6개월짜리 속성과정을 다녔다. 해당 과정은 철저하게 김여정을 위해 신설한 특설과정이었다.
이 당시 그와 함께 속성과정을 다닌 동기들은 남자 6명, 여자 5명을 포함한 11명이었다. 속성과정은 김여정을 위한 ‘공주’교육과정이었지만 나머지 동기들은 하나같이 엄선한 인재들로 알려졌다.
다른 김씨 가문 자제들과 마찬가지로 김여정 역시 학부 시절 신분을 철저히 숨겼다. 이는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다니던 김정은도 마찬가지였다. 참고로 김정은도 속성과정을 졸업했다. 그의 신분을 아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를 관리하는 군사종합대학 책임간부들과 책임 교원뿐이었다.
김여정은 당시 한 남자를 만났다. 김여정보다 몇 학번 위의 선배였다. 그는 인문계열(구체적인 학과는 보안상 삼가기로 한다)에 재학 중이었다. 훤칠한 외모와 좋은 성품의 이 남자에 김여정은 반했다. 적극적인 쪽은 김여정이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과거 고모 김경희가 한눈에 반한 장성택에 적극적으로 다가갔던 일화와 묘하게 오버랩된다.
이 남자는 당시 김여정의 신분을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적극적인 김여정의 대시에 두 사람은 연인으로 발전했지만 남자가 김여정의 신분을 인지한 것은 나중의 일이다.
# 남자는 시·군 당급 하급 관리 아버지를 둔 평민 출신
이 남자는 김일성종합대학을 입학한 인재다. 일반적인 주민들과 비교한다면야 배경과 지식수준이 당연히 낮지 않다. 허나 이 남자의 아버지는 최고위급 인사는 아닌 것으로 조사된다. 조사 결과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중하위급 관리에 지나지 않았다. 즉 핵심 엘리트라 할 수 있는 중앙급 기관 간부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도당 비서급 간부도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는 현재 북한 지방의 시·군 당기관 하급 관리로 근무 중이다. 이 정도 직함이면 중앙에 영향력이 거의 없다.
과거 김일성 주석은 딸 김경희가 선택한 사위 장성택을 거부한 바 있다. 빨치산 적통이 아닌 장성택의 출신 성분을 두고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 장성택은 김일성의 의도적인 귀향 조치로 갖은 수모를 당했다. 김경희의 적극적인 노력 후에야 어렵사리 사위가 됐다.
그런 장성택과 비교한다면 김여정의 남자는 오히려 출신 성분이 더 보잘 것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장성택의 형제들은 군 핵심 요직에 적을 두고 있었다. 장성택의 아버지 역시 광복회 참여 경력이 있는 인텔리 출신이었고, 친척들 중 삼촌이 항일혁명에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여정의 남자는 장성택의 이러한 배경에도 미치지 못한 평범한 하급관리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 김정은의 반대와 집안 인사의 도움
당연한 얘기지만 오빠 김정은은 여동생의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김정은은 할아버지가 고모의 남자를 반대했듯 처음엔 여동생과 이 남자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저지했다. 이에 김여정과 그의 남자는 몇 차례 이별과 재회를 겪은 것으로 확인된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에 도움을 주었던 인사는 집안의 한 어른이었다. 이 인사의 구체적인 신분은 보안상 밝히기 어렵다.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두 사람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격려해주고 호응해 줬던 사람은 집안의 한 주요 인사였다고 한다. 김정은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이 집안 인사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이 부분 때문에 김여정은 이 어른에 대해 매우 고마워하고 따른다는 후문이다.
다만 필자는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본다. 김씨 가문의 해당 인사는 왜 앞서의 김정은과 달리 이 남자를 받아들였던 것일까. 이는 정략적인 측면이 크게 고려됐을 것으로 보인다. 백두산 줄기의 인사 하나하나가 곧 북한 핵심 권부의 주요 행위자가 된다. 서로 간 경쟁이 불가피하다. 김여정의 남편은 곧 핵심 권부의 주요 행위자가 되는 셈이다. 만약 김여정이 명문가의 자제를 남편으로 받아들인다면, 집안의 이 해당 인사의 정략적 위치는 손해를 볼 수 있다. 어차피 경쟁해야 할 관계에서 힘과 야심을 겸비한 인사가 집안에 들어온다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 김여정의 기혼은 비공식 사안
우여곡절 끝에 김여정과 그의 남자는 지난 2014년경 혼인을 통해 부부의 연을 맺은 것으로 조사된다. 하지만 이는 철저한 비공식 사안이다. 김여정의 남편은 현재 군의 핵심 요직에 몸담고 있는 군 간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북한 내에서 김여정의 기혼 여부와 남편의 신분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인사는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김여정 손가락의 반지에 의문을 품는 수준일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김여정의 기혼 사실과 남편의 신분에 대해 공식화하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후지모토 겐지의 최근 발언을 살펴보고자 한다. 어찌 보면 그의 당시 김여정에 대한 발언이 김여정의 기혼 여부에 혼란을 준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이자 김정은의 어린 시절 놀이 친구기도 했던 후지모토 겐지는 지난 2016년 4월 북한을 다녀왔다. 당시 겐지는 김정은과 김여정을 면담했고, 당시 나눈 이야기들을 일본의 주간지 <주간겐다이>를 통해 밝힌 바 있다.
후지모토 겐지는 당시 김여정과 나눈 이야기를 통해 “김여정은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고 앞서 언론에 밝혔다. 필자는 겐지가 언론을 통해 거짓을 증언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김정은은 아무리 예전 가깝게 정을 나눴던 인사라도 이미 대외 인사인 겐지에게 김여정의 기혼 사실을 알리진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김씨 가문의 가계도가 곧 김정은과 김씨 가문의 권력기반도와 일맥상통한다. 김여정의 남편을 노출한다는 것은 곧 김정은의 권력기반의 일부를 노출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평시도 아닌 위기를 겪고 있는 북한 체제의 현실을 놓고 본다면 김정은의 이 같은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한편, 최근 영국의 <더선>은 한 탈북자의 말을 인용해 김정은이 김여정의 남편감을 찾기 위해 물색에 나섰다는 보도를 한 바 있다. 178cm 이상의 신장에 준수한 외모, 김일성종합대학 출신 인재 중 여동생의 남편을 물색 중이라는 해당 보도는 전혀 근거 없다고 단언한다. 이는 앞서의 혼란에서 비롯된 근거 없는 낭설에 불과하다.
이미 국정원을 비롯한 우리 정부는 김여정의 기혼 사실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를 넘어 지난해에는 김여정의 임신 사실을 공개한 바 있다. 필자가 입수한 최근 정보에 따르면, 김여정 부부는 지난해 한 차례 유산의 아픔을 겪은 것으로 확인된다. 이를 종합해 보면, 기존의 정부가 공개한 김여정의 기혼 사실은 어느 정도 타당하다고 본다. 무엇보다 베일 속에 싸인 김여정의 남편이 훗날 어떤 역할을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