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관급 예우 무보수 명예직…2주마다 대통령 건강 체크하고 휴가·출장에 동행
청와대는 최고 권력자의 건강을 책임지는 주치의 선정에 각별한 신경을 쓴다.
최근 청와대는 윤병우 서울대 의대 신경과학교실 교수(61)를 박근혜 대통령 새 주치의로 발탁했다. 전임인 서창석 서울의대 산부인과 교수는 서울대병원장 자리에 올랐다. <일요신문>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DJ) 주치의였던 허갑범 허내과의원 원장으로부터 베일에 가려 있는 청와대 주치의의 생활을 들어봤다. 허 원장은 만 79세의 고령이지만 여전히 현역 의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허 원장이 DJ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 1990년. DJ가 단식 투쟁 후 허 원장이 근무하던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면서부터다. 허 원장은 1997년 대선 당시 DJ의 건강 문제가 핫 이슈로 떠오르자 건강 진단서를 발급해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대선이 끝난 후 한 동교동계 인사가 “대선 일등 공신은 허갑범”이라고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 주치의였던 허갑범 허내과의원 원장.
“당시엔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나는 DJ와 ‘환자와 의사’ 관계 외에 개인적인 인연도 없었고 야당 총재 시절부터 오랜 시간을 함께한 장 박사가 맡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꼈다. 간단하게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고사의 뜻을 밝혔지만 결국 제안을 받아들이게 됐다.”
DJ는 정치권에서도 소문난 ‘대식가’였다. 주치의는 대통령 건강관리 차원에서 식생활에도 일정 부분 관여해야 했다. 허 원장은 “알려진 대로 대통령이 잘 드시는 것은 사실이다. 식사량을 조절하시라는 의미로 방문 때마다 허리둘레를 측정했다. 감사하게도 요구에 잘 따라주셔서 실제 허리둘레가 줄었다”고 말했다.
주치의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허 원장은 6·15 공동선언 당시 DJ를 모시고 북한을 방문했던 장면을 꼽았다. 허 원장은 “김정일 위원장 주치의도 만나볼 수 있었다. 50대 후반 나이의 리세원 주치의는 평양의학대학 출신으로 김일성 주석 때부터 일을 했다고 하더라”라고 떠올렸다. 허 원장은 북한을 포함해 총 21회의 해외 출장에 DJ와 함께했다.
허 원장은 DJ 임기 종료를 약 6개월 앞둔 2002년 8월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에 대해 “당시 65세로 연세대 정년을 앞두고 있어 더 이상 교수가 아니기에 주치의 자리도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허 원장 뒤를 이어 장석일 박사가 DJ 주치의로 임명됐다.
허 원장은 대통령 주치의들이 청와대에서 나와 대형 병원장 자리로 옮겨가는 것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박근혜정부 두 번째 대통령 주치의인 서창석 교수는 지난 2월 서울대학교 병원장 공모신청을 위해 물러난 뒤 지난 5월 31일부터 병원장 임기를 시작했다. 5월 30일에는 박 대통령 첫 주치의였던 이병석 연세대의대 학장이 연세의료원장 후보로 추천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연세의료원장에 이 학장이 임명될 경우 현직 대통령 전직 주치의 2명이 국내 의료계에서 쌍벽을 이루는 두 개 기관의 수장을 차지하게 된다.
이에 대해 의료계에선 곱지 않은 시선이 적지 않다. ‘청와대를 배경으로 병원장이 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허 원장은 “내가 그분들에 대해 평가를 내릴 입장은 아니다. 병원을 잘 운영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나는 성격상 그런 자리에 욕심도 없다. 대통령의 건강을 관리하고 연세대의대 학장을 했던 것만으로도 영광이고 과분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김상래 인턴기자 scourge2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