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수도’ 뺨치는 대선이슈 떴다
▲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정치권의 열띤 공방에 이 전 시장측은 싫지 않은 눈치다. 논쟁이 가열되면 될수록 이슈 선점 차원에서 큰 광고효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한 정치 전문가는 “대운하 문제는 수도권, 충청, 영·호남 등의 이해관계가 ‘골고루’ 얽혀 있어 전국적 이슈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점에서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 공약과 비교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내년 대선 판도를 가를 수도 있는 한반도 대운하 계획을 집중 점검해보았다.
'이명박 운하' 는 서울의 한강 하구나 경기도 파주의 용강보를 출발해 행주-잠실-남양주-여주-충주-조령터널-문경-상주-구미-대구-의령-밀양을 거쳐 부산의 낙동강 하구에 이르는 총 연장 550km의 ‘물길’을 말한다. 이 운하를 고속도로로 설명하자면 마산-현풍-김천-상주-충주-여주-양평 등을 잇는 중부내륙고속도로의 ‘물길 노선’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운하 노선 가운데 ‘정치적’ 의미가 있는 구간도 있다. 이 전 시장측은 경부운하를 위해 대구 지역에 거점 항만을 건설한다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이런 계획이 발표되자마자 그 동안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밀렸던 이 전 시장의 대구경북 지지율마저도 꿈틀할 정도로 정치적 효과가 만만치 않다는 후문이다.
경부운하 공사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먼저 경부운하 공사의 핵심이 될 인공수로. 서울-부산이 자연적으로는 하나의 물길로 죽 이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물길이 끊기는 낙동강 상류의 경북 문경시 마성면과 남한강 상류인 충북 괴산군 장연면을 인공수로를 만들어 연결해야 한다. 산을 뚫어 터널형태(조령터널)로 만들게 될 이 수로는 25km 안팎의 터널노선과 5km 가량의 교량 노선 형태로 건설된다.
그런데 강물이 항상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보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운하를 연결하면서 수심도 조절해주는 갑문공사가 매우 중요하다. 이 전 시장측은 “두 강의 수위 차(110~120m)를 극복하기 위해 인공수로 양끝에는 배를 끌어올리고 내릴 갑문을 설치할 예정”이라고 말한다. 배가 갑문에 들어가면 갑문의 물을 빼거나 주입시켜서 배의 높낮이를 조절해 배가 수위가 다른 하천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물길 자체를 만드는 하도공사가 있다. 남한강 낙동강의 큰 지류는 수심이 상관없지만 운하 구간 대부분의 지류는 낮은 수심의 하천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컨테이너를 실은 선박이 지나갈 수 있도록 깊은 수심을 확보해야 한다. 이 전 시장 측은 “화물을 실어 나르는 바지선(2500톤급)은 수심이 3.5m 정도면 문제없지만 유람선도 다니도록 수심을 6m로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하도공사 때 준설공사도 병행될 예정이다. 운하의 강폭은 100m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한강과 낙동강의 강폭이 대부분 100m 이상이어서 별 문제가 없지만 낙동강의 경우 퇴적물이 많이 쌓인 곳이 있어 수심 확보를 위해 일부 구간은 준설이 필요하다고 한다.
갈수기 때도 배가 다니는 길은 일정 수심을 유지하도록 운하에 물을 공급하는 댐도 한두 개 만들 계획이다. 경부운하의 공사기간은 4년이며, 17조 원 정도로 예상되는 건설비용은 민자를 유치할 예정이다. 공사비의 60%가량은 하천 준설에서 나오는 골재와 모래를 팔아 충당한다는 계획도 있다.
그리고 경부운하 건설 이후 총 연장 200km의 호남운하를 건설해 경부운하에 연결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이는 영산강 하구와 금강을 거쳐 경부운하로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운하 건설이 그리 녹록한 문제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운하 건설 반대론자들은 가장 본질적 질문을 던진다. 환경연합 활동처장 염형철 씨는 이에 대해 “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왜 배가 산을 넘어야 하나. 철도조차 접근성 때문에 도로에 밀리고 있고, 부산과 인천을 연결한 해운은 30시간이면 족하다(경부운하 예상 최단시간은 40시간)”고 반문한다.
또한 경인운하를 추진했던 한 관계자는 “한국 지형에는 대운하 건설이 적합하지 않고 생태계를 크게 교란시킬 수 있다. 바지선이 다니려면 운하의 수심이 4m는 돼야 한다. 곳곳에서 수심을 높이다 보면 기존 댐마저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굳이 운하를 만들겠다면 서울-여주, 부산-물금 구간부터 실시해 경제성을 확인한 뒤 확대하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운하건설이 정치적 표 계산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환경연합 염형철 처장은 “이 전 시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강력한 반대 속에서도 성공시켰다고 강조하면서, 그를 연상시키는 선글라스를 끼고 비슷한 몸 동작을 하며 인터뷰를 한다. 그는 운하와 대선을 연결시키지 말라고 하지만, 검증도 되지 않은 주장으로 낙후된 내륙 주민들에게 표 몰이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운하 건설을 계속 주장하는 이 전 시장 측의 핵심 논리는 ‘획기적인 물류비 절감’이다. 석유 목재 시멘트 유연탄 자동차 제철 등 시간이 급하지 않고 덩치가 큰 화물을 배로 수송하면 운송비를 25~ 33% 줄일 수 있다는 것. 하지만 한양대 홍종호 교수는 “경부운하가 개통되면 컨테이너 화물선이 인천에서 부산까지 40시간에 갈 수 있다고 하지만 이는 짧은 시간이 아니다. 도로나 연안을 통한 운송이 더 경제적”이라고 반박한다.
환경문제도 논쟁이 뜨겁다. 찬성론자들은 운하 건설이 환경 훼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운하의 물은 계속 움직여 자정작용을 하는 데다 배가 다니면서 산소 공급도 원활해지기 때문이라는 것. 하지만 생태계 교란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화여대 박석순 교수는 “인공적으로 한강과 낙동강을 이으면 생태계 교란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태백산맥을 기준으로 서쪽에는 중국계 어류가, 동쪽에는 시베리아계 어류가 살고 있는데 운하로 갑자기 물이 섞이면 종(種)간 이종교배가 이뤄져 돌연변이가 생길 수 있다는 것.
이 전 시장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고 있는 독일과 한국의 하천 강수 유형이 다른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중앙대 김진홍 교수는 “유럽은 비가 1년 내내 골고루 내려 하천 유량이 일정하게 유지되지만 한국은 장마 때 강수량이 집중된다. 이렇게 유량 편차가 심한 강에 배를 띄우려면 인공 구조물을 높게 세워야 하는데 이 경우 물이 거의 흐르지 않아 썩게 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 전 시장의 파격적 발상에 대한 평가는 상반된다. 지지자들은 ‘청계천 학습효과’를 떠올리며 이 전 시장이 한반도 대운하도 훌륭하게 이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면 일부에서는 이 전 시장의 ‘아파트 한 채’ 발언을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아파트 반값’ 공약에 견주며 “왜 공약을 함부로 남발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한편 한나라당의 한 전략 관계자는 “한반도 대운하는 논쟁 그 자체로 이미 성공한 이슈로 자리잡았다고 본다. ‘건설’이 전공인 이 전 시장은 대운하 논쟁이 붙으면 붙을수록 좋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 박근혜 전 대표나 손학규 전 경기도 지사가 자신들만의 ‘전공 과목’으로 논쟁거리를 바꾸려는, 치열한 주도권 싸움이 계속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