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실책보다 인터넷이 더 무서워
▲ 처음으로 뉴양키스타디움을 밟은 추신수. 홈런을 터뜨렸다. 홍순국 메이저리그 사진 전문 기자 | ||
좀 전에 캔자스시티와의 홈 경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은(한국시간 24일) 여기 시간으로 오후 1시에 경기가 열렸어요. 보통 3연전의 마지막 날은 경기가 이른 시간에 시작됩니다. 그럴 때 야구장으로 출근하는 시간이 오전 7시예요. 아무래도 피곤이 쌓일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오늘같이 안타에 득점도 올리고 도루까지 기록한 날은 힘든 줄 모릅니다.
요즘 한국에선 제 타순에 대해 말들이 많다면서요? 워낙 변화무쌍한 타순이라 그런가요? 1번 빼곤 골고루 돌아가면서 타순을 배정받는 것 같아요. 2번, 4번, 5번, 6번. 그중에서 6번을 가장 많이 맡았는데 솔직히 지금 제 입장에선 타순에 대해 불만을 가질 상황이 아닙니다. 메이저리그에서 선발 라인업으로 계속 나갈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거든요. 9번을 치든, 8번을 치든, 벤치에 눌러 앉아있는 것보다 야구장을 뛰어다니는 게 더 낫다는 거죠.
미국 진출 이래 메이저리그 개막전부터 선발로 뛴 게 이번이 처음입니다. 정말 역사적인 거 아닌가요? 2할대의 타율로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상황의 연속이지만 전 선발 라인업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며 밥값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눈물겹도록 행복합니다. 그래도 고정 타순을 배정받는다면 조금 여유를 찾을 순 있겠죠? 여기서만 살짝 속마음을 밝힌다면 3번 타순을 가장 좋아해요. 그 다음은 5번!^^
참, 지난 번 뉴욕 양키스전에서 제가 3점 홈런 친 거 다들 아시죠? 양키스타디움이 새롭게 오픈한 곳에서 터트린 홈런이라 그 의미가 더욱 컸어요. 이상하게 뉴욕 양키스는 다른 팀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와요. 워낙 주목을 많이 받는 팀이라 그럴까요? 클리블랜드 선수들도 뉴욕 원정 경기를 앞두고 좀 들뜬 분위기였거든요. 새로운 구장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고요. 하지만 기대가 커서 그런지 새 구장은 별로 다른 데랑 차이점을 못 느끼겠던데요? 입장료가 무지 비싸다는 것 외엔.
제가 소중히 보관하고 있는 공들이 있어요. 미국에서 첫 안타, 첫 홈런, 첫 만루홈런을 친 공들인데 구단 관계자들이 그 공들을 다 찾아서 저한테 갖다 주었거든요. 이번 뉴양키스타디움에서 친 공은 운 좋게 우리 팀 불펜 쪽으로 날아가서 동료 선수가 공을 전해주더라고요. 대만의 메이저리그 스타인 왕첸밍으로부터 뽑아낸 홈런이라 더욱 기분이 좋기도 했습니다.
제가 이번 시즌을 맞이하면서 몇 가지 목표를 세운 게 있어요. 그중 하나가 저와 관련된 기사 검색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인터넷으로 다른 뉴스들은 접하지만 제 이름이 등장하는 기사는 절대로 클릭하지 않는 거죠. 웨지 감독이 시즌 전에 선수들을 불러 모아 놓고 자신은 개막 후엔 라디오, TV, 신문 등을 절대로 보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자꾸 보게 되면 의식하게 돼 좋은 경기 감각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저 또한 잘못 표현된 기사들 또는 댓글들로 인해 상처도 받고 흥분한 적이 많았거든요. 신경을 안 쓰려고 해도 자꾸 신경 쓰게 되는 게 어쩔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올해는 제 기사를 절대 보지 않기로 했어요. 하지만 자꾸 보고 싶은 유혹도 있고 궁금증, 호기심이 동할 때가 많아요.
한마디로 제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는 거죠. 오늘 경기를 앞두고 사이즈모어가 특별한 선물을 건네줬습니다. 바로 선글라스예요. 경기용 고글이죠. 고글을 툭 치면 테에 걸쳐 있던 렌즈가 내려오는 제품인데 주로 메이저리그 외야수들이 많이 사용한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시즌 개막 후 두 번 정도 공을 잡다가 떨어트렸거든요. 햇빛 가운데로 공이 뜨면 아무리 노력해도 볼 수가 없어요.
어떤 분은 그런 실수를 WBC 대회 출전으로 인한 훈련 부족이라 우기시는데 그건 정말 아니거든요. 순전히 강렬한 햇빛 때문에 실책을 저지른 거예요. 사이즈모어도 2005년 캔자스시티와의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중요한 순간에 햇빛 때문에 공을 떨어트린 경험이 있다고 해요. 사이즈모어가 건네준 선글라스를 끼니까 신기하게도 햇빛이 작아 보였어요. 앞으론 이
고글을 주로 이용할 것 같아요.
오는 9월이면 제 둘째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이번에도 아들이라고 알려주시네요ㅠㅠ. 아! 전 정말 딸을 원했는데…. 무빈이한테 예쁜 여동생이 생기길 간절히 소원했거든요. 아내만 허락한다면 딸을 낳을 때까지 계속 아이를 갖고 싶어요^^.
지금 애리조나 집에는 제 가족들과 (류)제국이와 제수씨가 같이 생활하고 있어요. 조만간 제국이가 집을 구해 곧 이사할 예정이지만 팀에서 방출된 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게 안타깝기도 해요. 제수씨가 6월에 출산 예정이라 여러 가지로 부대낄 텐데 워낙 착하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어 좌절하지 않고 잘 견뎌내고 있더라고요. 마지막에 제국이랑 제가 환하게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지금의 고생이 헛되지 않겠죠?
내일은 미네소타와 홈 3연전이 시작돼요. 웨지 감독이 절 몇 번에 세우실까요? 그 궁금증을 안고 이젠 잠자리로! 다음 주에 좋은 성적 갖고 다시 찾아 뵐게요.
클리블랜드에서 추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