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나무’ 혹한 견뎠다
▲ 제52기 국수전 도전기에서 맞붙은 이세돌 9단(왼쪽)과 목진석 9단. 국수 이세돌 9단이 타이틀을 방어했다. | ||
국수전은 제한시간이 3시간. 우승 상금은 4500만 원, 준우승은 1500만 원. 속기화 추세에 따라 현행 기전 대부분이 속기인 것에 비추면 그것도 값지다. 제한시간이 보통 5시간이었던 예전에 비하면 3시간도 많이 짧아진 것이만 요즘은 길어야 1시간이고 10분짜리도 많으니까 말이다. 얼마 전에 있었던 BC카드배는 세계대회인데도 제한시간은 1시간이었다.
이제 국내 기전 중에서 3시간 대회는 국수전과 GS칼텍스배 두 개뿐이다. 두 기전만큼은 앞으로도 3시간 이하로는 줄이지 말기를 바란다. 일본처럼 이틀걸이 기전은 없을망정.
제한시간이 길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닐지 모른다. 10분 바둑도 장점이 있다. 일단 대국자가 편할 것이고, 진행하고 구경하는 사람들도 지루하지 않다. 그러나 기보의 질은 어쩔 수 없이 떨어질 것이다. 프로기사들 스스로도 인정한다.
“속기전의 기보를 보면 예컨대 아껴 두었다가 팻감으로 쓰든지 해야 할 절대 선수 자리들을 시간에 쫓겨 시간 연장책으로 두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그게 아니더라도 시간이 짧으면 착각과 실수도 많아지게 마련이다. 프로의 착각과 실수가 아마추어 팬들에게는 즐거움을 줄지 모르지만 프로기사에게는 기보가 작품인데 그런 수들이 튀어나오는 기보를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창호 9단과 젊은 후배 기사들이 함께한 자리에서 이런 얘기들이 오간 적이 있다. 후배 기사가 물었다.
“제한시간은 어느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하세요?”
잠시 생각하던 이 9단이 대답했다.
“5시간 정도 같아.”
5시간. 바둑 한 판을 두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수긍할 수 있는 수를 둘 수 있으려면 5시간은 필요할 것 같다는 얘기였다.
국수전은 심기일전 새 출발을 하는데, 국수전과 쌍벽을 이루었던 왕위전은 소식이 없다. 아마 다시 시작하지는 않으려는 모양이다.
여기서 또 일본을 보게 된다. 일본 랭킹 1위 기전, 34기를 맞는 기성전(棋聖戰)은 올해 우승 상금을 4200만 엔에서 4500만 엔으로 올렸다. 우리 돈으로 6억 원 정도다. 각국의 바둑대회를 통틀어 제일 많은 액수다. 일본은 바둑 인기가 시들하다고 하는데도 주최사는 대회를 키운다. 인기가 시들해졌으니 규모를 줄인다느니 없앤다느니 그런 얘기는 없다.
게다가 기성전은 도전제이고 여타 세계대회는 선수권전. 선수권전은 올해 우승자도 내년에는 다시 본선부터 뛰는 방식. 도전제는 이번 기에 우승하면 다음 기에는 도전자를 맞아 타이틀전을 벌이는 것. 따라서 올해 우승하면 내년 준우승까지는 확보하는 것. 또 준우승을 하더라도 타이틀을 빼앗기더라도 다음 기 본선 시드를 받게 되니, 그걸 계산하면 기성전 한 번 우승은 6억 원이 아니라 7억~8억 원의 수입을 보장받는 것.
기성전의 주최사는 요미우리신문. 기성전이 생기기 전에는 명인전이 최고 기전이었고, 요미우리가 원래 명인전 주최사였는다. 그런데 경쟁사인 아사히신문이 요미우리보다 더 큰 액수를 일본기원에 제의해 명인전 주최권을 가져갔고, 그러자 요미우리는 명인전보다 더 큰 규모로 기성전을 만들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요미우리나 아사히나 기전 예산은 자체로 조달하고 있다. 기업의 후원을 받지 않는다. 자존심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현재 국수 타이틀 보유자는 이세돌 9단. 이 9단은 제51, 52기를 연패했다. 그런데 이세돌 9단이 앞으로 1년 반 정도 쉬겠다고 하는 판국이니 그렇게 되면 국수전 도전기는 어떻게 되나. 본선 1위자가 자동으로 새 국수가 되는 것인지, 아니면 본선 1, 2위가 3번기나 5번기로 겨루어 타이틀 임자를 가리는 것인지.
이창호 9단은 지난 시즌에는 참가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주최사 추천 시드를 받아 출전한다. 참가하지 않았던 이창호 9단은 추천을 받아 나오고, 타이틀 임자는 나오지 않겠다고 하고, 이창호 9단의 국수전 불참에는 아무 말이 없었는데, 이세돌 9단의 한국리그 불참은 징계 사유가 된다 하고, 좀 헷갈리는 형국이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