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기원 만들기’ 강수 좀 뒀죠
▲ 김명섭 전 의원 | ||
여의도 KBS 별관 바로 뒤, 동북빌딩 6층, 송천(松泉)기원이다. 실평수 60평, 계약평수 120평. 월세 350만 원. 바둑판 50조. 금연실과 단체실. 대형 공기청정기. 가히 대한민국 최고의 기원이다.
기원이 사양길이라는 것은 오래 전부터 있어온 얘기다. 기원으로 돈 벌었다는 사람은 예전부터 없었으니 사양길이라는 말 자체가 사실은 동어반복이다. 제법 호황을 누리던 시기도 없지는 않았으나, 기원이란 건 애당초 돈 하고는 거리가 있는 영업이다. 하루 기료(棋料), 기원에서 하루 종일 바둑을 즐기는 요금이 요즘은 평균 5000원, 조금 비싸다고 하는 곳이 7000원에서 1만 원이다. 하루에 손님 50명이면 잘 되는 기원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기원은 보통 연중무휴이고, 오전 11시에는 문을 열어 밤 12시쯤 닫는데, 하루 50명 정도면 혼자는 안 되고 사람을 두어야 한다.
현실은 이러한데 두어 달 전, 여의도에 초대형 기원이 새로 문을 열었다. 얼마나 돈이 많기에 다들 어렵다고 하는 이 판국에 이렇게 큰 기원을 낸 것인지, 도대체 주인이 누군지가 궁금했다.
6월 6일, 토요일이자 현충일. 송천기원.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약사회 바둑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대회 정식 명칭은 ‘약사 기왕전’이었다. 바둑판 여기저기를 왔다갔다 구경하는 신사가 있었다. 젊은 사람은 아니었는데, 깔끔한 외모였다. 그가 주인 원장이었다. 뜻밖의 인물이었다. 전직 국회의원. 서울 영등포에서 제13·15·16대 3선을 기록했고, 16대 때는 집권 여당인 민주당의 사무총장까지 역임했던 김명섭 전 의원(71)이었다. 그의 또 다른 현재 직함은 (주)구주제약 회장.
“바둑을 남들처럼 일찍 배운 건 아닌데, 그게 평생 취미가 되었어요. 학교 졸업하고, 군대 갔다 오고, 서른 넘어 배웠거든요. 40년쯤 둔 셈인데, 실력은 여태 4~5급에 머물러 있어요. 안 늘어요. 배울 때 제대로 배워야 하는 건데, 말하자면 돌팔이 친구들한테 배워서 그런 것 같아요. 기원은 당연히 적자지요. 200만 원 이상 마이너스인데, 그래도 그게 조금씩 줄어들고 있어 다행입니다. 기료를 좀 올리면 나아질 거라면서 다들 올리라고 하는데, 다른 곳도 대개 5000원이니까, 당분간은 그냥 갈 겁니다.”
중앙대 약대를 졸업했다. 고향이 영등포. 졸업 후 영등포 시장 안에서 약국을 개업했다. 말이 직선적이고, 남 어려운 일 보면 내 일 제쳐 놓고 도와주고, 의리가 있고, 그런 성격이어서 인기가 좋았다. 영등포 약사회장이 되었고, 서울시 약사회장을 거쳐 나중에는 대한약사회장이 되었다. 대한약사회장은 세 번을 연임했고, 현재도 명예회장이다. 전부 선거를 통해서였다.
토박이인 데다 인기가 있고 선거에 강한 그를 정치권이 불렀다. 국회의원 선거에 처음 나간 것이 11대 때. 기본적으로는 야당 체질이어서 국민당 간판으로 출마했다. 낙선이었다.
13대 때 민정당으로 입후보해 당선되었다. 1988년이었다. 당시 민정당은 서울에서 42석을 목표로 했는데, 사람이 없었다. 그에게 간청이 들어왔고, 주변에서도 약사회장과 야당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스스로도 11대 때를 생각하면 그 말이 일리가 있었다. 서울에서 민정당이 건진 10석 가운데 하나가 그였다. 주가가 올라갔다.
“서울에서 3선을 했으니 그만하면 잘한 것이지요. 약사회장도 그렇고, 국회의원도 그렇고, 선거엔 강했던 모양이에요. 비결이요? 특별한 게 있나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면 돼요. 어떻게요? 가식 없이 진실하게 하는 겁니다. 그게 다예요.”
송천기원의 소문을 듣고 와 본 사람들은 그 규모와 시설과 쾌적함에 모두 놀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거, 몇 달 못 가 또 문 닫는 거 아닌지 해서다. 그런 예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천만에요. 절대 문 닫는 일은 없을 겁니다. 구주제약에서 벌잖아요. 아주 작은 회사지만 그래도 연매출이 400억 정도 되니까요. 공장이 오산에 있는데, 부지는 꽤 넓어요, 4000평이니까. 적자는 내 월급으로 메워 갈 겁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적자는 면할 것 같습니다. 친구들이 미쳤다고 그래요. 그냥 돈이나 벌고 운동이나 하지 기원이 다 뭐냐 그거죠. 집사람은 나보고 뭐하는 사람인 줄 모르겠다고 고개를 흔들어요. 아들 녀석들도 마찬가지구요. 그러나 이해는 하는 모양이에요.”
김 원장은 장애인 복지사업도 하고 있다. 약사 출신이어서 국회에 있을 때도 주로 복지 관계 일을 했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만드는데 모금운동을 하면서 자신도 사재를 쾌척했다. 지금도 매년 일정액을 기부하고 있다. 적지 않은 액수인 것 같은데 밝히지 않는다. 하긴 국회의원 시절에도 선서할 때와 주례 설 때를 빼고는 국회의원 배지를 달아본 일이 없으니까.
1980년대 후반까지 이따금 한국기원을 찾아오는 노신사가 있었다. 대한기원협회 회장 김동송이란 분이었다. 그의 평생소원이 ‘올바른, 건전한 기원 문화의 정립’이었는데,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혹시 김명섭 전 의원, 아니 송천기원 김명섭 원장이 그 꿈을 이룰지 모르겠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