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정성환 기자 = 한국전력이 10일 전기공사 ‘활선공법’ 폐지와 관련, 대책을 발표했으나 일선 현장의 반응은 기대와는 달리 의외로 차갑다.
오히려 새삼 확인된 것은 전기노조원들의 한전 경영진들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의 골 뿐이어서 뒷맛이 씁쓸하다.
이날 한전이 내놓은 대책은 전기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작업자의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직접 전선을 만지지 않는 ‘스마트스틱(Smart Stick) 공법’ 등으로 개선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전기원노조가 줄기차게 폐지를 주장한 ‘직접활선 공법’은 지난 2009년 도입된 신기술로 낡은 전선을 교체하는 작업 과정에서 전기를 끊지 않고 시공하는 ‘무정전 이선공법’으로도 불린다.
이 공법은 2만2천V의 고압전기가 흐르는 전선에 ‘절연커버’만 씌운 채 작업이 이뤄지는 관계로 커버가 벗겨지면 감전에 따른 사망·부상 등의 사고가 속출했다.
전기원노조 측은 지난 2009년 공법이 도입된 이후 2년 동안 55명이 감전사고로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전기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작업자의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활선공법을 직접 전선을 만지지 않는 ‘바이패스 케이블공법’이나 ‘스마트스틱(Smart Stick) 근거리 활선 공법’ 등으로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한전은 또 ‘미래형 첨단 활선로봇공법’을 개발하고 개인 안전장구도 한국인 체형에 맞게 개발 보급해 안전한 전기공사 작업 환경을 조성해 나가기로 했다.
이를 위해 한전은 5년간 약 2천억원을 투자해 작업자가 보다 더 안전하게 작업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으로 활선공법을 개선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이쯤 되면 활선공법 존폐문제를 놓고 양 측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교착상태에서 숨통을 트여줄 썩 괜찮은 대책이다.
제대로만 시행된다면 당장 급한 감전사고에 따른 사망,부상 등 전기원의 신체보호 문제가 해결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의외로(?) 비판적 평가가 쏟아졌다. 한국건설노조 산하 전기원노조와 현장 근로자들은 실효를 거두기 힘든 ‘의미없는 대책’이라고 혹평했다.
우선 인력과 장비, 돈 모두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일선 협력업체가 이 공법을 얼마나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거침없이 이렇게 말했다. “한전 측이 최근 전기공사협회와 협력업체에 공문을 보내 활선공법 폐지 지침을 내렸으나 장비와 인력, 돈이 없어 광주전남 72개 업체 중 71개 업체가 기존 공법을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장 사정을 모르는 탁상공론식 대책이다.”
그는 이어 “특히 대책에는 장비 설치가 가능한 지역을 전제로 이 공법을 채택하고 불가피한 경우에는 직접 활선작업을 그대로 시행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거야말로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상석하대(上石下臺)’아니냐. ‘불가피한 경우’가 불명확해 이를 확대 해석하면 얼마든지 활성공법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게 돼 그야말로 ‘눈가리고 아웅’식 대책이다”고 불신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한전이 최근 서울 구이역 사고 등으로 들끓고 있는 ‘위험의 외주화’ 사회적 논란 속에 구체적 실행계획 없이 갑작스레 활선공법 대책을 ‘물타기 카드’로 내놓은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다수의 현장의 의견을 접하면서 활선공법 도입 이래 수년 동안 한전에 대한 불신의 벽이 더욱 높아져가고 있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최근 취재진이 만난 복수의 노조 관계자들은 마치 짠 듯이 첫 일성으로 한전 경영진들의 고압적인 태도부터 바뀌어야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갑(甲) 대 병(丙) 관계로는 더 이상 `협력은 없다‘는 메시지다.
과거 한전과 노조원들의 면담과정을 되돌아보면 이는 한전이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있다.
한 관계자는 “한전 측이 나름대로 대책을 내놓았지만 국회의원 정도가 나오라고 해야 우리(처장급)가 나가지, 전기원노조가 요구한다고 나갈 수는 없다는 마인드를 갖고 있고, 면담과정에서 노조원에 호통치는 고압적인 한전 경영진이 앉아 있는 한 노사 협력관계 구축이 쉽지 않을 것이다”고 일침을 놓았다.
이 같은 노조원들의 불만 해소가 바로 한전이 해결해야 할 문제의 정답인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한전은 제도적 장치 마련에 앞서 어떻게 하면 불신의 장막을 걷어낼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할 것 같다.
한전이 전기노조원들의 이런 분위기를 아는지, 또 어떻게 사태를 풀어나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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