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 중 1명 체납…부과체계 개선 감감 무소식
이 사건은 지난 2014년 2월 발생한 ‘송파 세 모녀 사건’과 많이 닮아 있다. 당시 지하방에서 살았던 60대 어머니 박 아무개 씨는 집주인에게 ‘마지막 월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는 내용의 편지와 70만 원이 든 하얀 봉투만을 남겨둔 채 두 딸과 함께 목숨을 끊었다. 이 돈은 월세 50만 원, 도시가스비 12만 9000원, 수개월 체납한 건강보험료(5만 140만 원)를 어림한 돈이었다.
실직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쌍둥이 형제와 송파 세 모녀는 모두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였다. 이들처럼 실직으로 인해 건강보험료를 체납한 지역가입자가 상당수며, 건강보험료 독촉장 및 통장 압류 통지서를 받고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6개월, 30만 원 이상 건강보험료를 체납할 경우 통장이 압류되거나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어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세운다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건강보험료를 2년 넘도록 체납한 경험이 있는 김 아무개 씨(35)는 “실직으로 건강보험료를 낼 수 없었다”며 “통장까지 압류되면 취업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판단해 대부업 대출까지 받으며 취업난에 빚까지 떠안아 비관적인 생각에 이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5월 10일 현재 건강보험료를 6개월 이상 체납한 지역가입자는 모두 136만 5000여 세대, 체납액만 2조 1262억 원에 달했다. 이 중 장기간 체납으로 인해 통장이 압류된 가구는 12만 7629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월 납입 건강보험료가 3만 원 미만인 자가 6개월 이상 체납할 경우 각 지자체 사회복지사에 이 사실을 통보,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편의를 제공해주고 있다. 하지만 4대 보험 가입 여부는 각 지사에서 별도 관리하고 있어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의 실직 여부 파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장기간 실직 상태로 생활고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 대다수가 건강보험료 체납자다. 법에 따라 독촉장과 통장 압류 통지서를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낀다”며 “건보료 부과 체계가 소득 수준에 따라 형평성 있게 개선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4월 12일 방문규 보건복지부 차관은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 개선에 대해 “이른 시일 내에 (공청회를) 하겠다”고 했지만 두 달이 지나도록 감감 무소식이다.
유시혁 비즈한국 기자 evernuri@biz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