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분명한 기준으로 ‘음란물 봐주기’ 의혹까지 제기
포털사이트 다음(Daum)의 커뮤니티 운영 정책 ‘클린 다음’의 규제를 받지 않은 음란 게시물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일요신문] #1. 20대 여성 A 씨는 성인 여성들만이 가입할 수 있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남성의 성기 모양을 본뜬 여성용 자위기구 사용 후기를 사진과 함께 올렸다. 그러나 해당 게시물은 누군가의 신고를 받고 커뮤니티 정책 위반이라는 이유로 삭제됐으며, 규제에 따라 A 씨의 계정은 한 달 동안 정지됐다.
30대 여성 B 씨는 미성년자에게 ‘몸캠(성적 행위를 하는 장면을 찍은 동영상)’을 보낸 남성의 동영상을 보고 “꼭 XX도 작은 놈들이 저런 변태 행위를 한다”는 댓글을 달았다. 해당 게시물은 커뮤니티 정책 위반 사유로 삭제됐으며, B 씨는 물론 비슷한 내용의 댓글을 게시한 다른 회원들의 댓글은 ‘관리자에 의해 규제’됐다.
#2. 같은 정책을 공유하는 또 다른 커뮤니티의 회원인 30대 남성 C 씨는 여성의 성기 모양을 본뜬 남성용 자위기구를 만드는 방법과 제작 후기를 올렸다. 이 게시물 역시 다른 회원에 의해 커뮤니티 운영 센터에 신고됐으나, “정책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전히 게시돼 있는 상태다.
20대 남성 회원 D 씨는 남자친구와 공개 연애를 밝힌 한 여자 아이돌 멤버의 배가 노출된 사진이 해당 커뮤니티에 유머성 게시글로 올라오자 “배가 불러 보이는데 XX(남자친구) 애 밴 거 아니냐”라는 댓글을 달았다. 해당 댓글과 게시물은 다른 회원에 의해 신고는 됐으나, 위와 같은 이유로 규제되지 않았다.
페미니즘 단체의 상의 탈의 시위 사진도 다음의 ‘클린 다음’ 정책에 따라 규제됐다는 한 커뮤니티 회원의 증언.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포털사이트 ‘다음(Daum)’의 불분명한 기준의 게시물 단속 정책이 최근 커뮤니티 회원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선정적이거나 일부 사람들이 불쾌해 할 수 있는 내용의 게시물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더라도 한 쪽은 ‘청소년 유해정보’라며 회원에게 징계까지 내려졌고, 다른 한 쪽은 여전히 ‘유머성 게시물’로 버젓이 게시돼 있는 것이다. 심지어 규제를 당한 게시물 중에는 해외의 과격 페미니스트 단체인 ‘페멘(FEMEN)’의 회원들이 상의를 탈의한 채 시위를 하던 중 진압당한 사진이 담긴 게시물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게시자는 이들의 노출된 부위를 일일이 가린 뒤에 글을 올렸으나 역시 ‘청소년 유해정보’로 다음 측의 규제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다음의 경우는 커뮤니티 운영에 있어 ‘클린 다음(Clean Daum, 혹은 클린 카페)‘이라는 규정을 두고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커뮤니티에 성기나 여성의 가슴이 그대로 노출되거나 투명한 의상 등을 통해 비치는 사진이나 영상, 옷을 입었더라도 지나치게 다리를 벌리고 있거나 여성의 엉덩이를 강조하는 자태 등 성욕을 자극시키는 내용을 게시하는 것이 규제된다. 성인들이 주로 가입하는 커뮤니티더라도 커뮤니티 자체에는 성인인증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아 미성년자 등 불특정 다수가 게시물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청소년 유해정보에 해당하는 글들은 규제 대상으로 분류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규정이 각 커뮤니티 내 모든 게시물에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특히 남성 회원들과 여성 회원들에게 각기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두고 가장 논란이 뜨겁다. 앞서 언급한 사례들 역시 이런 측면에서 다가갈 수 있다.
다음 측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에 기반해 음란 게시물을 규제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실제 해당 심의규정에 따르면 ’사회통념상 일반인의 성욕을 자극해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정보‘를 유통할 수 없게 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산하의 남성 회원 위주 커뮤니티에는 교복을 입은 채 선정적인 포즈를 취하는 어린 여학생이나 주요 부위만을 간신히 가린 반라의 성인 여성의 사진, 포르노 배우들의 동영상들이 지속적으로 게시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게시물은 음란성 및 선정성으로 신고되더라도 “규제 기준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커뮤니티 내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규정상으로는 ’성욕을 자극시키는 내용‘ 전체를 규제하는 것으로 돼 있으나, 성기나 가슴이 직접적으로 노출되지 않은 경우에는 별다른 문제없이 게시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다음은 이와 같은 차별적인 게시물 규제에 대해 수차례 문의를 받았지만 “상세한 규정 기준은 정책상 안내할 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를 두고 일부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포털사이트의 음란물 규제가 명확한 기준 없이 해당 부서의 개인적인 판단에 따라 이뤄지고 방임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다음 측은 “게시물의 음란 및 선정성 기준에 대한 상세한 기준은 대외비로써 상세하게 공개할 경우 악용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는 것일 뿐”이라며 “모든 게시물에 동일한 원칙을 적용해 규제 여부를 결정하고 있으므로 문제가 없다”고 답변했다. 다음 측의 이런 태도에 반발한 다수의 커뮤니티 회원들은 ’클린 다음‘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음란 게시물에 대해 무차별적인 신고를 넣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의 한 커뮤니티 관계자는 “다음 등 포털사이트 산하에 있는 모든 커뮤니티를 사이트 운영 부서가 직접 관리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런 문제는 회원 개개인의 신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면서 “신고한 회원들이 납득할 수 있는 명확하고 객관적인 제재기준을 마련해 음란 게시물을 규제하지 않는다면 사이트 운영 부서가 이들을 방임하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