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공산에 ‘제3의 깃발’ 펄럭이나
민주당은 지난 6~7일 천안연수원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독자생존론’을 채택했다. 워크숍에서 주로 한화갑 대표 계열의 원외 위원장들이 대세를 이루며 여론몰이에 나선 결과였다. 그러나 불과 일주일 뒤인 지난 13일 민주당 대표단·의원단 연석회의에서 ‘독자생존론’을 폐기시켰다.
김효석 원내대표 측은 “이제 민주당에 더 이상 독자생존론이라는 말은 없다. 그런 용어를 쓰지 않기로 합의했고 한화갑 대표도 동의했다”고 전했다. ‘독자생존’은 민주당이 내부적으로 추스르자는 의미일 뿐, 이를 두고 민주당 간판만 고집한다고 비춰져 외부세력에 상당한 부담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한 대표가 한발 물러선 가운데 의원직까지 상실할 경우 민주당은 한화갑 계열이 급속히 동력을 잃고 ‘제3지대 헤쳐모여’식 정계개편에 앞장 설 수도 있다. 우선 이낙연 의원이 비대위 구성을 제안한 상태이고 집단 지도체제를 실시하자는 의원들도 있어 한 대표 중심의 민주당 지도체제에 변화가 예상된다.
한 대표의 사퇴여부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열린우리당 통합신당파와 고 전 총리 측도 ‘포스트 한화갑’ 체제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열린우리당 통합신당파인 한 호남 의원은 “한화갑 대표가 의원직을 상실한다면 무척 애석한 일이지만 정계개편의 과정으로 보면 활발한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열린우리당 통합신당파에게 상당한 부담이었던 한 대표가 정치적 지위를 상실하게 되면 ‘제3지대 헤쳐모여’ 통합을 주장하는 ‘고건파’와의 접근도 한결 용이해진다. 그렇게 되면 민주당 안팎에서 통합신당을 주장하는 세력이 호응을 보이면서 정계개편이 한층 속도를 낼 수도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즉 실질적인 호남 지지를 얻고 있는 민주당과 여당 통합신당파 간에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열린우리당 통합신당파 중 강경파 일부가 ‘중도포럼’을 제안하며 외부세력과의 통합 논의에 불을 지피겠다고 선언한 것도 이와 맛물려 하나의 흐름을 만들 수 있다. 열린우리당 ‘안개모’ 소속 김성곤 의원은 “통합신당에 찬성하는 당내 단체와 고건 전 총리, 민주당, 국중당이 함께하는 중도포럼(가칭)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이 그것이다. 김 의원은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이 전당대회를 통해 통합수임기구를 설치하면 중도포럼의 중재역할이 필요없겠지만 만약 양당 모두 파행을 겪는다면 중도포럼이 제 3지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 총리 입장에서도 답보상태를 보이고 있는 통합신당과 원탁회의도 탄력이 붙을 수도 있다. 고 전 총리 측 한 인사는 “민주당이 연석회의를 통해 내놓은 ‘중도개혁 수권정당’이라는 개념은 고 전 총리의 국민통합신당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며 “민주당의 움직임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말만 무성하고 진전된 내용이 없었던 정계개편이 한 대표의 퇴진으로 전환의 한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은 한 대표의 판결이 어떻게 될지 미지수다. 그러나 한 대표도 독자생존론을 폐기하고 제3지대 통합신당에 무게중심을 두어왔다는 점에서 큰 흐름에 별 차이는 없을 것이다. 다만 속도의 문제이기는 하다.
김지훈 기자 rapi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