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허리띠 졸라 감독 주머니 꽉꽉!
2007년 1월 25일부터 2월 17일까지는 리듬체조 우수 선수들의 동계 합숙 훈련이 있던 기간. 서울 성내동의 모 호텔에서 선수단 14명이 숙박하기로 돼 있었다. 모두가 훈련 기간 동안 자신의 기량을 발휘해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발탁되길 꿈꾸던 선수들이었다. 이들에게 지급되는 예산 중 식비는 하루 1인당 2만 8000원이었다. 한 끼당 적어도 8000~9000원 정도의 식사가 가능하지만 감독은 체중관리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근처 김밥 집을 찾았다. 김밥과 라면을 주문해 5000원 이하로 해결하게 한 후 4000원 정도의 차액을 아꼈다. 남은 돈은 학생들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호텔 식당에서 먹은 것으로 업자와 짜고 식비를 모두 쓴 것으로 허위 영수증을 끊었다. 1인당 4000원 정도의 차액은 두 감독의 개인 통장으로 고스란히 들어갔다. 영수증에는 학생들이 고급 호텔에서 식사를 했다고 돼 있다.
숙박비도 마찬가지였다. 훈련비 유용 혐의로 입건된 상비군 감독 이 아무개 씨는 모 일간지에서 “1인당 숙박비 3만 원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3인 1실을 썼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문제가 된 해당 관광호텔에 전화한 결과 방 하나에 3명이 묵는 조건으로 7만 7000원이 든다고 했다. 1인당 2만 5000원 남짓한 금액이다. 학생들의 진술에 따르면 방 하나 당 4명이 숙박한 경우도 있어 최소한 한 명당 5000원 이상이 남겨진 셈이다. 토요일 일요일엔 호텔에 묵지 말고 집에서 쉬다 오라고 지시한 후 주말에도 숙박한 것으로 처리하기도 했다. 이렇게 20일가량의 기간 동안 숙박비와 식비를 아껴 1000만 원 이상의 돈을 탈취했다.
당시 대회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쉽게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수 선수단의 경우 훈련기간 내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야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발탁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모든 평가가 훈련 감독과 코치의 판단에 달려 있어 학생들에게는 그야말로 하늘같은 스승이었다.
이와 같은 불편이 한국 학생들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초청된 일본 학생들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3~4명이 한 방을 쓰게 했다. 당시 한 침대에서 두 명이 자는 것이 그 나라 문화에 맞지 않아 호텔 측에 민원이 많이 제기돼 밝혀진 부분이다.
모든 비용을 아끼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필요 이상으로 많은 비용을 들였던 부분도 있다. 운동용품의 경우 서울에서 단가가 싼 운동복을 구입하지 않고 지방의 어느 이름 모를 용품점에서 필요한 물품을 다량으로 산 경우도 있었다. 운송비를 지불하면서까지 비용을 감수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지방의 이름 모를 용품점 업주가 체육협회 임원이었던 것.
카드깡 수법이 사용된 것은 지방전지훈련을 떠난 경우 교통비와 경기장 사용료를 허위로 끊은 경우다. 지방 지자체에서 무상으로 버스와 경기장을 제공하는 경우에도 여행사와 짜고 비용을 지불해 교통수단과 경기장 임대료를 지불했다고 영수증을 끊었다.
감독들은 현실적으로 훈련비가 부족했다고 주장하나 지방전지훈련의 경우 지자체로부터 받는 지원금도 있었다. 많게는 500만 원이 지급됐다. 주로 일본선수단을 위한 통역비와 교통비, 숙박, 경기 임대료로 쓰여진다. 그러나 배구 감독의 경우 충주시로부터 통역 비 86만 원가량을 지원받아 놓고 개인 예산으로 지출한 것처럼 처리해 금액을 챙겼다. 배드민턴의 경우는 밀양시로부터 300만 원을 지원받은 후 모텔과 여관을 돌아가며 숙박비를 결제해 보조금 및 허위 영수증으로 600만 원을 챙겼다. 이 경우 지역 지자체 감독과도 공모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감독들은 현실적인 문제에 있어 융통성이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감독 주 아무개 씨는 “현금 사용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말한다. 모두 40명의 선수들이 이동할 때 카드만 사용하도록 돼 있는데 이 부분에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주 감독은 “선수들이라고 해도 초·중·고교생인데 자식 같고 선배 같은 마음에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데 카드 사용만 되는 곳을 갈 수 없었다”고 토로한다. 간식에서부터 교통비, 여비까지 감독이 모두 관리하다 보니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한 달 정도의 훈련 기간 동안 지방에 가게 되면 관광도 시켜줘야 하고 자기들끼리 자유 활동도 하고 싶어 하는데 간단히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 교통비나 식비도 챙겨줘야 하고 사고 싶은 것 사라고 용돈도 주고 싶어진다. 이때 카드로 다 할 수 없지 않느냐”라고 반박했다. 또 예산의 경우 숙박비나 식비로 범위가 한정돼 있어 제한된 범위에서 할인받고 아껴 써서 선수들한테 쓸 돈을 마련했던 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유흥비로 지출했다는 것에는 “어쩔 수 없이 들어가는 돈이 있다”고 말했다. 지방에 훈련 장소를 사용할 때 그쪽 관계자에서부터 초청 일본 감독들과 접촉하다 보면 자연스레 접대비가 드는 것이다. 구체적인 액수는 그냥 술자리만 원하는 경우에서부터 유흥업소에 가는 경우까지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르다. 이 부분에 있어서 대부분 “받은 만큼 대접하는 것이 관례”라고 설명했다.
횡령한 액수와 방법, 사정은 문제가 된 8명의 감독마다 달랐다. 가장 횡력금액이 많았던 감독의 경우 배우자가 서울 유명 병원의 의사인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25년을 15평 아파트에 살며 내년 은퇴를 앞둔 감독도 있었다.
그의 부인은 “선수들 학부모가 직접 수확한 대추나 감만 보내도 자필로 편지를 쓰는 등 학생들을 아꼈던 사람이다. 뭔가 잘못된 게 아니냐”며 이번 사건으로 남편의 명예가 실추된 데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손지원 인턴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