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때부터 LG유니폼 탐났답니다”
▲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인터뷰가 정말 부담돼요. 1군 감독님도 계신데, 2군 감독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그래도 구단에서 인터뷰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어렵게 응했으니까 ‘요상한’ 질문은 하지 말아 주세요(웃음).”
질문도 하기 전에 선수를 친다. 그렇다고 ‘요상한’ 질문을 안 할 수도 없다. “LG 2군 감독으로 오기 전에 다른 팀으로부터 영입 제의가 많았다고 들었다. 모두 사실인가?”라고 잽을 날렸다.
“노 코멘트라고 대답해도 돼죠?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게 뭐가 중요하겠어요. 현재 내가 LG 유니폼을 입었다는 게 중요하죠. 나 혼자만 생각했다면 일본에 남았을 겁니다. LG에서 워낙 강하게 절 원하셨고, 그렇게 필요로 하는 곳에서 2군 선수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물론 언젠가는 한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정말 몰랐어요.”
지난 3일 귀국 후 곧장 LG 선수단에 합류한 김 감독은 아직까지 선수들 얼굴과 이름이 매치되지는 않지만 예상했던 것보단 선수단 분위기가 좋고 선수들 또한 뭔가를 해보려는 의지가 가득해 한결 적응하기가 수월하다고 설명한다.
연수 코치 자격으로 떠났던 일본 생활. 3년간 일본 최고의 명문팀에 몸담고 일하면서 보고 느끼고 배운 게 많았을 것 같았다.
“가장 기뻤을 때가 요미우리로부터 정식 코치 제의를 받았을 때입니다. 하라 감독이 직접 절 불러서 도와달라고 부탁하시는데 기분 좋더라고요. 연수 코치로 있으면서 돈 한푼 안 받고 1군 선수단과 함께 생활했어요. 성실하고 솔직하게 선수들에게 접근했던 부분이 하라 감독의 마음을 움직였나 봐요. 일본에서 제일 야구 잘하는 선수들도 가까이서 봤고, 일본에서 제일 야구 잘하는 팀에 있어봤습니다. 그런 많은 경험들이 잘 버무려져서 ‘김기태표’ 야구가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어요.”
요미우리 2군 코치 및 센트럴리그 퓨처스팀(육성군) 감독을 맡았던 김 감독은 2008년과 2009년 리그 신인왕을 수상한 야마구치와 마쓰모토, 그리고 도미니카 출신인 오비스포를 1군으로 승격시켜 주전 선수들이 부진했던 요미우리에 큰 힘을 보태는 등 하라 감독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얻기도 했다.
한국에서 온 선수 출신이라는 신분이 요미우리 선수들한테 어떤 이미지로 다가갔을지 궁금했다. 김 감독은 ‘솔직히’라는 표현을 쓰면서 “처음엔 정말 고생 많이 했다”라고 회상했다.
“연수 코치로 갔을 때 하라 감독이 배팅 테스트를 하자더군요. 한국에서 좀 친다는 선수가 왔는데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셨나봐요. 만약 제가 메이저리그 출신이라면 절 보는 눈이 좀 달랐겠죠? 제가 선수들한테 무슨 조언을 하면 선수들이 저 보러 직접 해보라고 해요. 한마디로 ‘너 같으면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였겠죠. 전 제가 말한 대로 다 시범을 보였습니다. 그때부터 선수들의 시각이 달라진 것 같아요. 제 말을 잘 듣기 시작하더라고요.”
김 감독은 2008년 2군으로 내려왔던 이승엽과 보낸 시간들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한때 요미우리 4번타자로 최고의 대접을 받았던 이승엽이 2군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는 걸 지켜보면서 누구 못지 않게 가슴 아파했다는 속내도 털어놓는다.
“제가 99년 삼성에 입단했을 때 승엽이가 홈런 54개를 쳤어요. 승엽이 3번이었고 제가 4번이라 가장 가까이서 홈런 54개 치는 장면을 제대로 볼 수 있었죠. 그 당시 아무도 모르게 승엽이 폼을 흉내내기도 했었고 승엽이처럼 야구를 잘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건 흉내를 낸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승엽이는 저보다 한 수 위의 야구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때부터 전 이승엽이란 야구선수의 팬이었습니다. 그런 선수를 요미우리 2군에서 만났으니 얼마나 감회가 새롭겠어요. 워낙 레벨이 높은 선수라 제가 뭔가를 가르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죠.”
이승엽이 마음 편하게 야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았지만 이승엽이 느낀 고통만큼은 함께 나눠가질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고 한다.
선수 때부터 LG 유니폼이 탐이 났었다는 김 감독. 선수가 아닌 지도자로 그 유니폼을 입게 됐다며 환한 웃음을 짓는 그는 LG 트윈스의 2군이 1군의 ‘화수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LG가 10년이 넘도록 우승을 못했다는 건 선수들이 반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선수들이 자신의 의무를 다했는지, 정말 죽을 각오로 훈련을 했는지, 그리고 이기적인 마음을 버렸는지, 잘 체크해 볼 생각이에요. 이제 ‘이름’으로 야구하던 시대는 지났잖아요?”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