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현 유창혁 등 전설들 꺾고 프로시니어최강전 접수…바둑도장 운영 스미레 키워낸 것으로도 유명
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정수현 9단은 자신의 SNS에 한종진 9단의 우승을 두고 다음과 같이 적었다.
“한종진 9단의 우승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는 바둑도장을 운영하며 후진 양성을 해 왔고, 요즘은 한국프로기사 회장을 맡고 있다. 교육과 행정을 담당하는 기사가 우승을 차지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 더구나 한종진 9단은 기전 성적에서는 주목받은 적이 거의 없는 기사다. 한종진 9단은 프로생활 28년 만의 우승에 감격을 금치 못했다. 그의 깜짝 우승은 다른 기사들에게도 자신감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1979년생인 한종진은 1996년 입단했다. 그 또래 기사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그도 위로는 이창호 9단(1975년생), 아래로는 이세돌 9단(1983년생)과 1985년생 송아지 삼총사(최철한, 박영훈, 원성진 9단)에 치여 별로 빛을 보지 못했다. 우승 후 “죽을 때까지 우승 못 할 줄 알았는데 너무 기쁘다. 아마 창호 형이 후배에게 한 번 기회를 준 것 같아 감사하다”는 소감은 그래서 더 감동적으로 들린다.
첫 질문은 이창호 9단과의 결승전에 관한 것이었다. 한종진 9단은 결승에서 반집 승리를 거뒀다.
“이창호 9단은 어린 시절 저의 우상이었지만 막상 대국에 들어가니 긴장되진 않았다. 초반부터 너무 잘 풀려서 두면서도 ‘이게 뭐지?’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중반이 지나면서부터 꼬이기 시작했고…. 그런데 역전됐다고 느낀 순간 평소 제자들에게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지도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끝까지 침착하자고 다짐한 것이 반집을 남길 수 있었던 동력이 된 것 같다.”
한종진 9단은 나이가 들었지만 타이틀에 대한 꿈은 꾸준히 품어왔다고 회상했다. 바둑을 두는 누구나 그렇듯, 타이틀을 향한 갈망은 모든 기사들에게 공통된 바람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벽이 존재해 꿈을 이루는 것이 쉽지 않았던 만큼, 이번 우승은 그에게 더욱 값지게 다가왔다. 특히 이창호 9단을 비롯해 조훈현, 유창혁, 서능욱 9단 등 당대의 거장들을 모두 꺾고 들어 올린 우승컵이라 그 의미는 더욱 각별하다.
“사실 지난 5월 서봉수 사범님과의 대주배 결승전이 큰 도움이 됐다. 당시엔 초반부터 대국 내용이 좋지 못했다. 나중 역전시킬 찬스도 있었는데 찾지 못했다. 많이 서둘렀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번에는 두 번째 결승전이라 별로 긴장하지 않은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 또 운도 따랐다. 본선 첫 판 조 국수님(조훈현 9단)과의 대국은 제가 많이 나빴는데 마지막에 조 국수님이 실수하셔서…. 우승하려면 고비가 한번은 온다고 하는데 그 대국을 기점으로 기세를 탄 것 같다.”
최근 성적이 좋아진 이유에 대해서는 제자들과 함께 공부하며 얻은 새로운 시각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한종진 9단은 한국기원 인근에서 바둑도장을 운영하고 있다. 도장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오히려 본인도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고 했다.
“바둑도장을 2014년 2월에 개원했으니 어느덧 10년이 됐다. 연륜 깊은 도장들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30명 정도 프로기사를 배출했다. 현재 가르치는 원생도 30명 정도 된다.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이 재미있고 가르치다 보면 오히려 내가 배우는 게 많다.”
한종진 9단은 일본의 ‘천재 바둑소녀’ 스미레 3단(15)을 키워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올해 3월 한국으로 이적한 스미레는 225일 만에 100번째 대국을 소화했다. 이는 한국기원 사상 최단 기록이다. 종전 최단기간 100국 기록은 이창호 9단이 보유한 601일로, 스미레는 무려 376일이나 앞당겼다. 한종진 9단은 제자 스미레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을까.
“기재가 워낙 뛰어나다. 조만간 김은지 9단과 여자바둑 패권을 놓고 다툴 것이다. 최정 9단이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오유진 9단도 최근 상승세여서 여자바둑이 더욱 재밌어졌다. 중국도 무시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중국여자바둑리그 전체 수준이 한국여자바둑리그보다 높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세계여자바둑 판도가 더 흥미진진해질 것이다.”
한종진 9단은 2022년부터 프로기사회 회장을 맡고 있다. 그동안 뜨거운 감자였던 기사 은퇴 위로금 문제를 해결했고, 신예들을 위한 챌린지 리그를 출범시켜 좋은 반응을 얻었다. 1인 3역 역할을 완벽히 수행하고 있는 한종진 9단의 다음 행마가 주목된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