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 연아 ‘미끄덩’ 미란 ‘번쩍’
▲ 김연아, 박태환이 모교에서 환영받는 모습과 유소연이 수업을 듣는 모습(위부터). | ||
은반 위의 여왕 김연아(19)는 고려대 동기, 전공교수들도 TV로만 볼 수 있는 스포츠 스타다. 올해 4월 2일 학교를 방문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캠퍼스에 나타나지 않았다. 한 학년이 끝나가는 데도 얼굴 한 번 보지 못하다 보니 학생들도 교수도 ‘아쉽다’는 반응이다.
1학년 전공수업을 담당하고 있는 한 교수는 “그동안 전화 통화를 한 적이 없고 메일도 주고받은 일이 없다”며 “과제 제출이라도 해야 학점을 줄 텐데…”하며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출석부에서만 같은 학교를 다닌다는 사실을 확인할 뿐 한 번도 얼굴을 보진 못했다”고 말한다.
김연아를 바라보는 교내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대부분이지만 학점을 둘러싸고는 쓴소리도 새어 나온다. 1학기 기말고사 성적이 공개됐을 당시 고려대 재학생 블로그에 ‘김연아의 성적이 3.0을 상회하더라’는 글이 등장해 학점 특혜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그러나 학사관리과에 확인한 결과 학점특혜는커녕 대체 과제를 수행하지 못해 전공 수업 두 과목에서 F ‘쌍권총’을 받았다. 학사경고를 준 이 아무개 교수는 “수업을 직접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메일로 보낸 후 과제를 내기도 하고 경기 중 보이는 동작 등을 설명하는 간단한 과제를 내기도 했지만 답신을 한 차례도 받지 못했다”고 털어 놨다. 과제를 내지 못한 사유를 성적 입력 기간 이전에 밝혔다면 대안을 마련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지 못해 그것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올해 1학년 수업을 진행해본 교수들은 김연아가 외국 코칭스태프들과 일정을 수시로 조율해야 하고 짧은 국내 체류 기간에도 각종 인터뷰와 광고 출연이 많아 정해진 학사일정에 맞춰 대체 과제를 제출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수업을 온라인으로 대체하고 인터넷 강의 개설 계획도 세웠지만 이 같은 현실에 부딪혀 진행되지 못했다는 것. 김연아의 경우 만약 이번 2학기에도 과제를 제출하지 않는다면 전공 수업 두 과목을 이수하지 못한 경우에 해당돼 2학년이 아닌 1학년 한 학기를 더 다녀야 하는 상황이 된다. F를 준 전공교수는 “광고나 TV 출연 시간을 조금 줄여서 수업에 한 번이라도 왔으면 좋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신입생인 김연아가 아직 대학생활에 서툴다면 같은 과 선배인 장미란(26·고양시청)은 3학년이 되면서 적극적으로 학교생활을 하면서 학점관리도 잘하고 있다.
체육부 관계자는 “베이징 올림픽 이후에는 학교에 자주 나와 교수들에게 조언을 얻어가며 출석과 시험을 충실히 챙기고 있다”며 “경기나 훈련 일정이 없는 날에는 수업도 꼬박꼬박 참석해 동기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과제에 대한 도움을 받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 결과 체육특기생들에겐 ‘마의 점수’라 불리는 3.0대를 1학기 동안 번쩍 들어 올렸다.
▲ 최나연(왼쪽)과 신지애 | ||
그러나 모든 교수가 출석을 인정해주지는 않아 지난 학기 신지애의 성적표에도 ‘쌍권총’이 등장했다. 학과 전공교수는 “교수들도 저마다 교육에 대한 신념이 있는데 전체적으로 출석을 인정해 주자고 강요하긴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원칙을 강조하는 교수들 입장에선 아무리 국민들을 기쁘게 하는 스포츠 스타라 하더라도 학생으로서의 본분은 지켜야 한다는 입장인 것.
같은 과 후배인 신입생 유소연(19·하이마트)은 같은 과 동기들 사이에선 이미 스포츠 스타가 아닌 ‘절친’으로 통한다. 학생들에 따르면 그동안 과 MT, 농활, 축제 때 주점 웨이터 등 학교수업에서부터 각종 교내외 행사에까지 빠지지 않고 참석해왔다고 한다.
기자가 찾아간 지난 11월 23일 유소연은 전날 시합에서 아쉽게 서희경에게 우승컵을 내준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는 화장기 없는 맨얼굴로 오전부터 전공수업을 듣고 있었다. 경기를 마치고 몸과 마음이 피곤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학교생활은 활력소”라며 “경기결과가 안 좋은 날은 학교에 와서 동기들과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를 푼다”고 말했다. 이날 유소연은 오전 수업이 끝난 후 과 선배의 총학생회장 선거를 돕기 위해 캠퍼스에서 유세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전공 교수는 “수업 전날까지 제주도에서 훈련이 있어 못 오겠지 했는 데도 강의실에 등장했다”며 “수업을 듣기 위해 새벽 비행기를 타고 왔다는 말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본인이 공개하는 학점도 3.0~3.5대로 낮지 않은 점수다. 유소연은 “나중에 선수생활이 끝난 후에는 대학원에서 스포츠 마케팅을 전공하고 싶다”며 학점관리를 열심히 하는 이유를 밝혔다.
마린보이 박태환이 등장했다 하면 단국대학교 죽전 캠퍼스는 축제 분위기다. 지도교수의 말에 따르면 올해 박태환은 두 번 학교를 방문했다. 베이징 올림픽 이후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단국대학교에서 준비한 환영식에 참여해 동기 및 선배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이후에는 담당 교수들과 점심식사를 하며 수업에 대한 지시사항을 전달받았다.
중간고사 기간에도 시험을 치르기 위해 학교를 방문했다. 당시 농구수업에 참여해 “수영 다음으로 농구를 좋아한다”며 수업 중인 학생들과 코트에서 시합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박태환 역시 학사관리는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지도교수는 “한 학기 동안의 학사일정을 방학 한 달 동안 압축해서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특별 학사일정은 명예총장과 총장의 특별 지시로 방학 한 달 동안 체육부만의 자체 수업으로 진행된다. 체육특기자들은 학기 중에는 경기에만 전념하고 방학 한 달 동안 따로 전공수업과 교양수업을 이수할 수 있다. 덕분에 다른 대학 스포츠 스타들과는 달리 박태환은 학점관리에서 한시름 놓게 됐다. 체육부 관계자는 박태환과 체육특기생을 대상으로 열리는 특별계절학기에 대해 “오전 8시 30분부터 저녁 6시까지 합숙하며 한 달 동안 한 학기 수업을 모두 진행하고 체육특기생들 내에서 상대평가를 해 학점을 매길 예정이다”고 설명했다.
한편 박태환이 다른 사립대의 입학을 거절하고 단국대행을 택한 것을 놓고 ‘단국대가 거절하기 힘든 특혜를 제안했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이에 대해 학교 측은 특혜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 교수는 “명예총장과 총장이 직접 나서서 박태환의 학부모를 설득한 것으로 안다”며 “단국대가 박태환을 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인 문대성에 버금가는 지도자로 키울 것이라고 약속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우수한 학생에게 해외유학 등을 약속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이는 특혜가 아니라 우수학생에 대한 당연한 투자라고 특혜논란을 일축했다.
신지애와 같이 LPGA에 진출한 ‘얼짱골퍼’ 최나연(22·SK 텔레콤)은 건국대학교에 재학 중이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최나연 역시 3학년으로 학점관리에 민감할 때지만 건국대의 경우 아직 해외에 진출한 스포츠 스타에 대한 규정이 없다. 체육교육과 관계자는 스포츠 스타들의 학사관리에 대해선 아직 특별한 기준이 없어 구체적인 답변을 할 게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관계자는 “미국에 있는 최나연 선수에 대한 수업이나 과제물 대체는 전적으로 교수들의 수업특성과 재량에 맡겨져 있다”고 답했다. 담당교수 역시 비슷한 내용의 입장을 전해 왔다.
스타와 수업받는 특기생들
“특혜는 안돼” 눈에 쌍심지
먼저 스포츠 스타들을 영입하기 위한 체육특기자들의 입시전형은 매년 바뀐다는 게 그들의 평가다. 이전에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던 비인기 개인 종목이라도 국민적 스타로 부상한 선수가 있다면 대학들은 이들을 영입하기 위해 그동안 성적이 부진한 종목 대신 새로운 종목을 추가하기도 한다. 실제 모 대학의 경우는 특정 종목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자 ‘올림픽 종목 중 1~2명의 우수선수를 선발한다’는 규정을 해당 종목에서만 그 인원을 채우는 것으로 바꾸기도 했다.
캠퍼스의 구분도 스포츠 스타들 앞에선 무색하다. 해당 종목에 맞는 훈련장과 모집전형은 원칙적으로 지방 캠퍼스에서 진행돼야 하지만 모두 서울 캠퍼스에서 입학과정을 거치고 수업을 듣는다. 체육 특기자들만이 듣는 전공수업은 간혹 그 분위기가 ‘싸’해지는 경우도 있다. 일반 체육 특기생들 중에도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많은데 이들이 해외 스포츠스타들과 차별을 당하지는 않는지 그들의 학점을 매섭게 관찰한다고 담당 교수들은 귀띔했다.
손지원 인턴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