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88회 베팅 신종 도박 기승…중고생들까지 쉬는 시간 접속
사다리게임 중계 화면.
[일요신문] “하루에도 몇 시간씩 휴대폰 화면의 사다리를 바라봤다. 불법 스포츠토토보다도 중독 증세가 심했다. 결국 수개월 치 급여를 잃고 나서야 끊을 수 있었다.”
약 5년간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를 이용해 불법 도박을 해온 김 아무개 씨(29)의 이야기다. 김 씨는 도박에 회의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자신의 심신을 지배하는 중독성으로 수차례 사이트 가입과 탈퇴를 반복했다. 그는 지난해 가을부터는 완전히 도박을 멀리하고 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성업중인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들은 신종 도박으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기존의 스포츠 경기 결과를 예측하는 방식에서 보다 간단한 룰의 게임을 추가하며 이용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성인은 물론 미성년자인 중고등학생들까지도 도박 사이트를 이용하며 수백만 원까지도 베팅했다는 소식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실제 10분 남짓한 학생들의 쉬는 시간에 도박 사이트의 평균 접속자가 1000명 이상 증가한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다.
이러한 신종 도박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은 게임은 ‘사다리 게임’이다. 홀수·짝수의 단순한 결과를 미리 예측해서 베팅한 돈의 1.9배 정도를 가져가는 방식이다. ‘달팽이 레이싱’은 경마와 비슷한 방식이다. 사이트에서 말 대신 3마리의 달팽이가 경주 펼치는 애니메이션이 나와 ‘달팽이 레이싱’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달팽이 레이싱과 파워볼.
김 씨는 “사다리나 달팽이 같은 게임을 처음 접했을 때는 ‘뭐 이런 것 까지 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스포츠 경기에서 잃은 돈을 빠르게 복구해야겠다는 생각에 게임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5분 간격으로 288회의 게임이 진행되기 때문에 더 많은 돈이 오간다. 스포츠토토로 운영을 시작한 불법 사이트들도 지금은 사다리로 벌어들이는 수익금이 훨씬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김 씨는 불법 사이트 이용자들 사이에서 가장 보편화된 사다리 게임에 대해 “이전에는 최대 규모라 불리는 N 사이트에서 사다리 게임을 진행했고 기타 사이트들이 이를 중계하며 그 결과에 따라 돈을 지급했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시장이 커지면서 자체적으로 사다리 게임을 진행하는 사이트들이 등장했다. 일부에서는 게임 결과를 이용자들의 베팅에 따라 조작하기도 한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기자는 지인의 소개를 통해 한 비공개 사이트에 접속해봤다. 메일 주소 등 최소한의 개인정보만으로도 가입이 가능했다. 실제 돈이 오가는 도박 사이트지만 성인임을 인증하는 절차는 없었다. 가입 신청 버튼을 누르면 사이트 측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사이트를 소개해준 지인의 이름을 묻기만 했다. 미성년자도 소개만 받으면 얼마든지 가입할 수 있는 구조였다.
신종 도박이 판을 치고 있는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는 철저한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들은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회원들에게만 사이트 주소를 알려주며 노출을 피한다. 사이트의 존재가 발각돼 주소가 블라인드 처리되더라도 빠른 시간 내에 바뀐 주소를 회원들에게 문자로 전송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서버를 외국에 두고 운영을 하고 있다는 점까지 최근 공식 폐쇄를 선언한 국내 최대 포르노 사이트 ‘소라넷’과 많은 부분이 닮아있다.
정식 회원자격으로 들어간 사이트에는 스포츠토토 코너와 사다리, 달팽이 등의 게임 외에도 가상의 개 경주대회와 축구경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제작된 화면에 매 3분마다 각각의 경기가 열린다. 가상 경기 중계 화면 아래로는 베팅을 할 수 있는 창이 위치했다.
개 경주와 가상축구.
이처럼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에서는 많은 이용자들이 스포츠에 문외한이라도 게임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 신종도박에 빠져들기 쉬운 구조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이에 이용자들은 ‘도박을 위한 도박’에 빠져들며 마치 ‘도박 좀비’처럼 광기를 보였다.
도박 중독자 치료와 재활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는 사다리 게임에 빠져 상담을 위해 찾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들은 일상생활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돈을 잃는 등의 부작용을 호소했다.
관리센터 이슬행 상담사는 도박에 중독된 사람에 대해 “도박 중독이 질병임을 인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질병에 걸리면 초기에 병원을 방문해 치료를 하듯이 최대한 빨리 센터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특히 사다리 게임 같은 신종 도박의 경우 이용 연령대가 낮아 도박 과정서 들어간 비용이나 생긴 빚을 가족들이 대리변제해주는 경우가 많다. 그보다 상담과 치료를 받게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방법이다”라고 조언했다.
김상래 인턴기자 scourge2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