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밴쿠버 다음엔 2014년 소치가 있잖아요”
▲ 부상으로 인해 밴쿠버올림픽 선발전에는 탈락했지만 전국체전 3관왕에 오른 안현수. 누가 그를 ‘비운의 스타’라 하던가. 2014년 소치올림픽을 향해 위해 뛰고 있는 그에게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오늘(2월 2일) 태릉선수촌에선 올림픽 출정식이 열렸다. 태극마크를 달지 못하고 동계체전에 참가하고 있는 부분이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다.
▲솔직히 오늘이 출정식인지 몰랐다(웃음). 체전 준비하느라 다른 데엔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 사실 올림픽에 나가지 못하는 게 그리 편한 마음은 아니다. 올림픽이 매년 있는 것도 아니고 4년에 단 한 번밖에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데, 부상 때문에 나가지 못한다는 게 속상하다.
―지난해 4월 열렸던 대표팀 선발전에 대해 아쉬움이 크지 않나. 빙상 연맹에선 규정대로 선발전을 치렀다고 하지만 일부에선 2월에 있을 올림픽을 앞두고 전년도 4월에 선발전을 치르는 건 문제가 있다는 비난이 높았다.
▲부상 후 1년 동안 수술을 4차례나 받았다. 대표팀 선발전을 앞두고 무리하게 몸을 만들려고 했던 부분이 상태를 더 악화시키기도 했다. 선발전이 좀 늦게 열렸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지금도 내 몸 상태가 완벽하게 돌아온 게 아니기 때문에 대표팀에서 탈락한 부분에 대해선 아쉬움이 없다. 그리고 선발전 시기와 관련해선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위에서 결정하는 것이고, 결과에 따라 순위가 매겨지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뽑히지 않았다고 해서 시기가 잘못됐다고 왈가왈부하는 건 옳지 않다.
―이번 체전에서 금메달 3개를 획득했다. 인터뷰하기 전에 이 금메달이 나름 의미가 있다고 말했는데.
▲체전이라고 해서 올림픽보다 수준을 낮게 보면 안 된다. 쇼트트랙만큼은 워낙 선수층이 두껍기 때문에 대표팀 선수들이나 체전에 참가하는 일반 선수들이나 실력이 거의 엇비슷하다. 지난 12월부터 훈련하는데 몸이 아프지 않기 시작했다. 큰 부상을 당한 이후라 부상 재발에 대한 두려움은 있지만 오랜만에 통증 없이 훈련을 하니까 기분이 좋아지더라. 비록 몸 상태는 70~80% 정도 회복됐지만, 오는 4월 대표팀 선발전에선 지금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4차례의 수술을 받으면서 혹시 선수 생활을 포기하고 싶은 적이 없었나.
▲통증으로 엄청난 고통을 느끼면서도 운동을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단, 얼마만큼 빨리 회복할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사실 몇 년 동안 쇼트트랙의 정상을 달리다가 스케이트화조차 신을 수 없는 상태가 됐을 때는 좌절과 절망감이 엄청났다. 그런데 이전과 다른 내 몸 상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거지, 운동을 포기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었다.
▲ 2006토리노올림픽 1500m에서 금메달을 딴 안현수. 그때가 인생 최고의 빅게임이었다고. AP/연합 | ||
▲항상 1등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굉장히 컸다. 1등을 하는 것보다, 1등을 못하는 게 더 주목받는 상황이었다. 한때 과정 없이 결과만 인정받는 풍토가 너무 싫었고 기자들과 인터뷰하기 싫어 피해 다닐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밑으로 내려오니까 그 자리에 다시 설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안 생기더라. 그리고 그 자리가 얼마나 대단하고 소중한 자리인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부상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선물이라면 내가 정말 쇼트트랙을 무지하게 사랑한다는 깨달음이었다.
안현수는 2년여의 공백 기간 동안 ‘쇼트트랙의 황제’에서 ‘비운의 스타’로 뒤바뀐 자신의 처지에 대해 쓴웃음을 지었다. 물론 언론에서 붙인 타이틀이지만 아직은 ‘비운의 스타’로 내몰릴 만큼 비참한 상황이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히려 쉼 없이 앞만 보고 질주했던 ‘황제’ 시절보다 옆, 뒤도 돌아보고 후배들의 살벌한 도전을 몸으로 느끼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이 더 행복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얼마 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에서 역대 종목별 동계올림픽 최고의 라이벌을 선정했다. 그중 쇼트트랙에서는 은퇴한 김동성, 안현수, 아폴로 안톤 오노를 최고의 라이벌로 꼽았다. 선배 김동성한테 라이벌 의식을 느낀 적이 있었나.
▲동성이 형이랑은 같이 운동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처음으로 태극마크 달고 대표팀에 들어가서 만난 선수가 동성이 형이었다. 최고의 쇼트트랙 선수와 생활하며 많은 걸 보고 배웠던 것이다. 감히 라이벌 운운하는 것조차 죄송할 따름이었다. 동성이 형은 쇼트트랙을 위해 타고난 선수였다. 선수 자신의 엄청난 노력도 있었겠지만 갖고 있던 자질 자체가 다른 선수들과는 비교가 안 됐다.
―이런 식의 질문을 더 해보자. 안현수 VS 안톤 오노는?
▲(웃으면서) 오노를 처음 본 순간, ‘와 정말 잘 탄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맞붙었을 때에는 이기기보다 진 게임이 더 많았다. 하지만 게임을 하면 할수록 오노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생기더라. 그래서인지 내 인생 최고의 빅게임은 2006토리노올림픽이다. 올림픽 그 자체도 중요했지만 오노랑 준준결승부터 계속 맞붙었고 단 한 번도 지지 않고 결승까지 올라가서 금메달을 땄다. 세 번 붙어서 세 번 다 이겼다는 게 얼마나 짜릿했는지 모른다.
―오노는 한국에서 ‘반칙왕’으로 불리며 한때 반미 감정을 고조시켰던 선수였다. 그런데 실제로 한국 대표팀 선수들과 친분이 두텁다고 들었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솔트레이크올림픽에서 벌어진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은 승부의 세계에선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고의다, 아니다 하는 건 자신만 아는 부분이다. 모두가 금메달을 따고 싶어 하는 상황에서 예기치 않은 일이 생길 수도 있고, 그로 인해 오노 또한 많은 상처를 받았다. 이젠 많은 시간이 흘렀고 오노는 여전히 올림픽 메달 기대주로 활동하고 있다. 워낙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 선수들과 훈련하는 걸 즐긴다. 특히 전재수 감독님이 미국대표팀을 맡고 나선 더더욱 한국 선수들과의 교류가 잦다.
미국대표팀을 이끌고 밴쿠버올림픽에 참가하는 전재수 감독은 2년 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제일 깨끗하게 플레이하는 선수는 안현수다. 현수의 테크닉은 세계 최고다. 다른 선수들과 부딪히지 않고 물 흐르듯이 경기를 펼친다”면서 “그러나 그 외의 많은 선수들이 알게 모르게 반칙을 자행한다. 나 또한 한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할 때는 내 제자들을 살리기 위해 심판들 눈을 피해 반칙하는 기술을 가르친 적이 있다. 생존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만큼 쇼트트랙이 치열하다는 소리다”라고 설명한 적이 있었다.
▲ 일러스트=장영석 기자 | ||
▲(성)시백이를 비롯해 호석이와는 어렸을 때부터 함께 훈련을 하며 성장해온 관계다. 허물 없이 친하게 지냈던 사이가 대표팀에 들어가서 파벌 문제로 인해 관계가 엇갈리면서 조금씩 소원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경기장을 떠나선 별다른 문제없는 사이다. ‘2인자’로 불린 호석이도 힘들었겠지만 항상 1등을 지켜야 했던 나 또한 많이 외롭고 힘들었다. 1등과 2등은 정말 거의 차이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쇼트트랙에선. 다른 선수들을 비롯해서 호석이도 이번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이전의 ‘한’이 풀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표팀 선발전에서 탈락했을 때 러시아 등 외국 팀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기도 했었다. 국적 변경을 해서라도 올림픽에 출전시켜주겠다는 ‘당근’이었는데.
▲솔직히 그건 불가능한 일 아닌가. 내가 올림픽 선발전에 뽑히지 않았다고 해서 다른 나라 국기를 달고 출전하는 건 비겁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여기 남아서 노력을 거듭한 후에 정정당당히 평가받는 게 더 바람직한 일이라고 믿었다. 난 다시 일어설 자신이 있고, 어떤 편견이나 태클에도 견뎌낸 후 ‘코리아 안현수’로 인정받고 싶다.
안현수한테 올림픽은 밴쿠버가 마지막이 아니었다. 4년 후 소치올림픽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나라 나이로 서른 살이 되는 2014년, 마지막 올림픽 도전을 꿈꾸는 안현수는 몸 관리만 잘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밴쿠버가 아닌 창원에서 만난 안현수에게 더 이상 ‘비운의 스타’ 운운하는 건 정말 ‘몹쓸 짓’이나 마찬가지였다.
●안현수는…
▲출생 1985년 11월 23일
▲신체 172cm 63㎏
▲소속 성남시청
▲학력 한국체육대학
▲주요성적 2002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1000m 4위, 2006 토리노동계올림픽 1500mㆍ1000m(올림픽 신기록)ㆍ5000m 계주(올림픽 신기록) 1위, 500m 3위
창원=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