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인권침해” vs “부상 염려했을 뿐”
▲ 밴쿠버에서 한 경기도 못 뛴 채 관람석에서 비디오 촬영을 했다는 최정원. 아래 사진은 빙상연맹 게시판에 오른 최정원 관련 글들. 연합뉴스 | ||
“국가대표 4위로 선발돼 밴쿠버로 떠난 딸이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한 채 지도자에게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
밴쿠버 올림픽이 한창이던 지난 2월 중순, 한국빙상연맹 게시판에 올라온 글 하나가 파문의 시작이었다.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결정전에서 4위에 오른 최정원 선수는 실제로 밴쿠버에서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한 채 귀국했다. 최정원의 주종목은 단체전인 계주다. 대개의 경우엔 다섯 명의 선수를 예선과 결선에 번갈아 출전시켜 메달을 딸 경우 다섯 명 모두가 영예를 안게 한다. 그런데 최정원은 단 한 경기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어렵게 전화 연결이 된 최정원의 모친은 “2월 14일 첫 경기 시작 전 담당코치가 ‘너는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 한다’고 통보한 후 망연자실한 딸에게 관람석에 올라가 다른 국가대표 동료들의 경기를 비디오 촬영 하라고 했다”고 밝히며 “그럴 거면 도대체 왜 캐나다까지 데려간 것이냐? 이는 엄연한 인권침해”라고 주장했다. 또한 최정원의 모친은 “모든 일은 지난해 12월 갑자기 최광복 코치가 국가대표 팀 코치로 부임하면서부터 시작됐다”면서 “그때부터 훈련과 연습에 전혀 참가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밴쿠버에서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팀을 진두지휘하고 돌아온 최광복 코치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최 코치는 “무엇보다 최정원의 부상이 염려스러웠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가 여자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로 부임한 것은 2009년 12월. 당시 팀의 상황은 동계올림픽 청사진이라 불리는 국제빙상연맹(ISU) 월드컵 1, 2, 3, 4차전에서 중국 팀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해 ‘역대 최약체’팀이라 불릴 때였다. 당시 빙상연맹은 위기의 한국 팀을 회생시킬 방안으로 최광복 코치에게 지휘봉을 넘겼다.
최 코치는 “연맹의 요청으로 올림픽 두 달 전 갑작스레 지휘봉을 넘겨받은 후 기대에 부응하는 결과를 내기 위해 야간훈련과 엄격한 체중관리로 대표 팀을 매섭게 훈련시킬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평소보다 강도 높은 훈련을 준비하기에 앞서 첫 주는 대표팀 선수들의 이력과 부상, 경기를 풀어가는 능력 등을 비디오로 면밀히 확인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지난해 7월 최정원이 고관절 부상을 당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게다가 대표팀 김기백 트레이너로부터 부상 당시 ‘무리하면 여자로서의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는 의사의 진단까지 받았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부임 이후 강도 높은 훈련을 진행하는 상황에서 최정원이 몇 차례 아이스링크에서 넘어지는 것을 보곤 그때부터 최정원을 훈련과 연습에서 제외시키기 시작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부상이 심한 국가대표 선수를 왜 애초에 교체하지 않았을까. 최 코치는 “올림픽까지 정원이의 부상이 완전히 아물어야 한다는 생각에 훈련에 무리수를 두지 않고 우선 차도를 지켜보는 마음이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올림픽에 가서도 최정원은 단 한 경기도 나갈 수 없었다. 이에 대해 그는 “올림픽에서 기량이 우수한 중국 선수들을 눈앞에서 보며 0.1초라도 줄여야 하는 긴박함을 느꼈다”며 “예선부터 기록을 내야 하는 상황에서 최정원이 회복했을 거라 무작정 믿고 무리수를 던지긴 어려웠다”며 “한 아이와 부모를 아프게 할지언정 금메달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냉정한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 최광복 코치 | ||
결국 최 코치의 말대로라면 최정원의 부상은 단순히 선수로서가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건강을 해칠 정도로 위험한 수준이었던 셈. 이에 최정원의 모친은 이미 지난해 10월 병원에서 완치 판정과 운동하는 데 무리가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맞서고 있다.
대표팀의 김기백 트레이너는 “지난해 7월 부상당해 대표팀 전담 병원에서 대퇴부 골절 판정을 받고 최악의 경우 여자로서의 생명이 끝날 수 있다는 진단을 받긴 했지만 선수 부모가 더 큰 병원으로 옮겨 무사히 수술과 재활치료를 받았다. 10월쯤에는 훈련에 참여해도 이상 없을 정도로 회복됐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다”며 “이 내용을 모두 코치에게 전달했고 최광복 코치가 부임한 후에도 이러한 상황에 대해 보고했다”고 말했다.
당시 최정원의 수술을 담당했던 의사와 전화통화한 결과 “수술 3개월 후 ‘통증을 느끼지 않는 범위 내에서 훈련에 참여하는 건 가능하다’는 내용의 소견서를 작성해 부모와 트레이너에게 전달했다”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결국 부상으로 인해 훈련을 못 받고 올림픽 경기에 출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최 코치는 고강도 훈련을 소화하고 0.1초를 다투는 올림픽 경기에 출전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한 것으로, “그 판단엔 무리가 없어 보인다”는 게 빙상계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이에 최정원의 모친은 “지도자의 선수 선발권은 존중하지만 아이가 당한 마음의 상처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다”며 “이미 대한체육회와 인권위원회에 제소했다”고 말했다. 또한 변호사를 선임해 법적 대응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최 코치는 “대한체육회와 인권위원회로부터 고소장이 접수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부모님과 최정원 선수에겐 너무나 미안하지만 팀 성적을 위해 냉정한 판단을 한 것에는 후회가 없다”며 “당장은 임박한 세계선수권대회 준비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입장을 보였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