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계약 협상결렬 ‘살짝 서운~’
▲ 홍순국 메이저리그 사진전문기자 | ||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장기 계약을 추진하다가 협상이 결렬된 것입니다. 구단에서 제시한 협상안을 에이전트인 스캇 보라스가 받아들이지 않았고 스캇 보라스가 제시한 몸값을 구단에서 거절했다는 게 맞는 말일 것 같네요. 스캇 보라스의 말에 의하면 시애틀 매리너스의 중견수 프랭클린 구티에레즈보다 계약 조건이 좋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구티에레즈가 올 시즌을 앞두고 4년에 2050만 달러의 계약을 맺었는데….
사실 팀과 장기 계약을 맺게 된다면 오로지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까 마음 편할 것 같았어요. 잘하든 못 하든 계약이 돼 있기 때문에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있고요. 그런 편한 환경에서 야구를 한다면 약간은 위축된 정신적인 부분이 상당히 여유로워질 것 같았고, 야구하는 데 좋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를 했습니다.
에이전트의 말을 듣고 조금은 속상하고 섭섭했습니다. 지난 시즌 어려운 팀 상황에서도 몸 사리지 않고 정말 열심히 뛰었거든요. 결국 비즈니스적인 상황에 부딪히면 팀과 선수는 어떤 감정보다는 철저히 이성적으로 움직인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대우를 받고 운동하는 게 올 시즌 저한테는 더 좋은 방향으로 작용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오기도 생기고 더 잘해야 한다는 당위성, 그리고 반드시 지난 시즌보다 더 좋은 성적을 올려서 내년에는 우리 팀이 더 좋은 조건으로 저랑 계약하길 소원하도록 만들어야겠다는 책임감까지 생깁니다. 그래도 클리블랜드가 절 위해 장기계약 플랜을 만들고 협상에 나섰다는 데에 만족하면서 더 이상 계약 문제에 대해선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스캇 보라스를 만나기 전까진 이런저런 소문들이 많아서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러나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눠 보니 그의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에 감탄이 절로 나올 때도 있었습니다. 몸값이 높은 스타플레이어뿐만 아니라 저처럼 저연봉 선수, 또 부상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는 선수들한테도 지속적인 관심을 표하며 직원들을 통해 선수들 관리를 철저히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기까지 합니다.
애리조나에서 많은 팀이 스프링트레이닝 캠프에 참가하다보니 마이너리그에서 활약 중인 한국 선수들 소식을 종종 듣게 됩니다. 며칠 전에는 우연히 시애틀 매리너스 마이너리그 캠프에 있는 두 후배들을 만나기도 했는데요, 사실 후배들 얘기를 듣다보면 그들이 앞으로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될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가슴이 답답해질 때도 있어요. 안쓰럽기까지 하다면 오버일까요? 제가 좀 더 일찍 자리를 잡고 후배들을 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있다면 모든 후배들과 돌아가면서 만나 식사도 하고 좋은 얘기도 전해 주고 싶은데 아직은 그럴 정도의 상황이 아니다보니 괜시리 후배들한테 미안해지기도 합니다. 마이너리그의 후배들이 걸어갈 길이 너무 험난하고, 거기서 살아남는 건 더더욱 어렵지만, 그래도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 메이저리그입니다. 한 사람도 포기하지 않고 모두 통과해서 빅리그 마운드와 타석에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해 봅니다.
오늘 하루는 내 자신에 대해, 그리고 내 야구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본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오늘 따라 참으로 긴 하루를 보낸 느낌이 드네요^^.
애리조나에서 추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