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엔 신수 일본엔 태균 난 한국 지킬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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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품절남’ 이대호는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파스 붙여줄 아내가 있기에 행복하단다. “또 한번 팬들의 가슴을 적셔주겠다”고 말하는 그가 있기에 롯데 팬들도 행복하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롯데 자이언츠 홍보팀 서정근 팀장은 이대호를 가리켜 인터뷰하기 힘든 선수라고 표현했다. 언제부턴가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면 대부분 거절 의사를 밝히는 바람에 인터뷰를 진행시키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이대호를 만나자마자 왜 인터뷰를 꺼리는지를 물었다.
“원래는 기자분들이랑 굉장히 친하게 지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부상으로 성적을 내지 못하다보니까 그 친하던 기자분들이 절 완전히 씹더라고요. 사실인 걸 썼다면 서운하지나 않죠. 그런데 사실이 아닌 걸 사실처럼 쓴 기사들로 인해 팬들한테 엄청나게 씹혔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후론 인터뷰를 잘 안 했어요.”
이대호는 인터뷰의 절반 이상을 선수와 기자의 관계에 대해 그동안 경험했던 부분을 얘기했다. 그래도 일단 프로야구 개막을 앞둔 상태라 올시즌 목표에 대한 질문으로 화제를 돌렸다. 금세 마음을 정리한 이대호는 홈런보다는 타점에 더 많은 신경을 쓰겠다며 자신의 생각을 풀어나갔다.
“홈런왕을 신경 쓰다 보면 주자가 있든 없든지간에 무조건 큰 스윙으로 홈런을 치려고 덤비게 돼요. 그러다보니 삼진도 많고 팀 배팅이 이뤄지지 않는 거죠. 제가 원하는 건 주자가 있을 땐 안타를 쳐서 타점을 올리고 주자가 없을 땐 홈런을 노리는 거예요. 타율도 높이고 안타도 많이 치면서 중요할 때 홈런 한 방씩 때려주는 4번타자가 되고 싶은데, 뭐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죠.”
시즌을 앞두고 가장 큰 관심사는 2년간 3루수를 맡았던 이대호의 올 시즌 보직이었다. 이미 언론을 통해 로이스터 감독이 이번에는 이대호를 1루수에, 3루수 자리엔 정보명을 기용하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알려졌다.
“정말 1루수로 돌아간다면 바랄 게 없겠어요.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요. 방망이 감도 떨어지고 수비도 안 되고…. 1루수는 방망이에만 집중할 수 있거든요. 감독님께선 팀을 위해서라면 제가 1루만 고집해선 안 된다고 하셨어요. 늘 (3루로 갈) 준비는 하고 있겠지만 그래도 1루에 서고 싶어요. 박종윤이 방망이도 잘 맞고 수비도 안정적이라 감독님 입장에선 고민이 많으실 거예요.”
이대호는 그동안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잔부상으로 고생이 많았다고 토로한다. 당장 병원에 입원할 정도가 아니라면 웬만해선 야구장에 서겠다는 각오를 다졌는데, 그래도 가끔은 아프다는 핑계로 게임에 빠지고 싶을 때가 있었다는 것.
“다른 팀에선 그 정도의 부상이었으면 게임에 안 나갔을 겁니다. 그러나 (조)성환이 형이나 (홍)성흔이 형이 하시는 말씀이 제가 야구장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가 크다고 하셨어요. 선수들한테 미치는 영향이 말이죠. 그 형님들한테 죄 짓기도 싫었고 제가 아파도 좀 참고 나가 있는 게 팀을 위해서 좋은 거라면 나가 있어야죠. 한번은 어깨가 탈골돼서 팔이 안 올라가는데도 시합을 뛴 적이 있었어요. 정말 죽겠더라고요. 감독님께선 애써 못 본 척하시던데요(웃음)?”
이대호는 로이스터 감독에 대해 망설임 없이 ‘존경한다’고 말할 정도로 전폭적인 신뢰를 내보였다. 그동안 여러 감독을 만났지만 진정한 ‘리더’ ‘보스’의 모습을 보여준 사람은 로이스터 감독이 최고였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팀 성적이 안 좋으면 불안하잖아요. 작년 초반에 롯데가 꼴찌를 달리고 있는데도 감독님은 ‘괜찮다. 곧 올라갈 거니까 걱정하지 마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팀 성적이 좋을 때는 무덤덤한 태도를 취하시는 데 반해 성적이 안 좋을 땐 오히려 더 많이 웃으세요. 감독님의 보스다운 기질을 보면서 선수들이 더 분발하자고 다짐을 하기도 해요. 감독님 생각처럼 되도록 노력하자면서요. 롯데가 이런 부분에선 이전과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내년 시즌을 마치고 FA가 되는 이대호에게 FA 계획에 대해 물었다. 쉽게 대답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이대호는 순순히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얼마전 (추)신수가 이런 말을 했더라고요. (김)태균이가 일본보다 미국을 선택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저도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일본은 선수의 약점을 파고 들고 자꾸 유인구로 승부를 걸려고 해요. 잘못 말려들었다간 독박 쓰는 거죠. 미국은 힘 대 힘으로 상대하니까 태균이나 저처럼 힘 있는 선수들은 오히려 더 적응하기 쉬울지 몰라요. 하지만 미국은 이미 신수가 있잖아요. 잘하고 있는 신수가 미국을 지키면 되고, 일본은 태균이가 좋은 대우 받고 갔으니까, 전 그냥 한국을 지키려고요.”
▲ 이대호는 병역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친구 추신수를 위해서라도 함께 아시안게임 우승을 일구고 싶다고 말한다. | ||
“원래 제 꿈은 야구의 본고장인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거였어요. 그런데 제가 FA가 되면 나이가 서른 살이 돼요. 적은 나이가 아니잖아요. 미국이든 일본이든 해외 진출은 최고의 몸 상태와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할 자신이 있을 때 도전해야 해요. 그게 아니라면 굳이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대호는 이상보다는 현실을 선택하고 싶어했다. 한국 최고의 거포로 평가받는 그가 한국 잔류를 원한다면 과연 내년 시즌 FA 시장은 어떤 모양새가 될까? 벌써부터 흥미진진해지는 부분이다.
이대호는 친구 추신수에 대해 많은 느낌표를 갖고 있었다. 수영초등학교 시절 야구부를 통해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각각 한국과 미국에서 성공가도를 달리며 서로 기분 좋은 자극을 주고받곤 한다.
“신수가 워낙 깡다구가 좋은 친구예요. 누구한테 지는 걸 싫어했죠. 야구도 정말 잘했어요. 승부욕에 관해선 신수만큼 근성 강한 놈은 못 봤어요. 지금은 저보다 더 잘돼 있고, 앞으로 더 잘되겠지만 요즘 신수를 보고 있으면 절로 행복해져요.”
이대호는 추신수가 미국 진출 후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했다는 소식을 듣고 상당히 안타까웠다고 말한다. 한국 고교 야구계에선 추신수가 독보적인 투수였고 작은 체구의 몸에서 시속 150㎞/h를 육박하는 스피드가 나오다보니 투수 추신수가 너무나 아까웠던 것.
“WBC 때 애리조나에 있는 신수네 집에 놀러간 적이 있었어요. 가족들과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니까 정말 부럽더라고요. 그 자리에 오기까지 수많은 어려움들이 있었을 텐데, 잘 극복하고 팀의 중심타자로 서 있어 제가 더 뿌듯해요.”
이대호는 병역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추신수를 위해서라도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뽑힌다면 몸을 아끼지 않고 희생할 각오가 돼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전 올림픽을 통해 병역 면제 혜택을 받았잖아요. 선수한테 군 입대는 선수 생명이 달린 중요한 문제예요. 신수도 지금은 야구 열심히 하고 있지만 머릿속은 복잡할 겁니다. 좋은 방향으로 잘 해결됐으면 좋겠어요.”
지난 시즌이 끝난 뒤 구단과 연봉 협상을 벌이며 잠시 팀 훈련에 불참하기도 했었던 이대호. 이미 끝난 일이지만 당시 어떤 마음이었는지 궁금했다.
“처음부터 연봉을 올려준다고 나왔으면 서운하지 않았을 거예요. 연봉을 삭감한다는 얘기에 정말 자존심 제대로 상했습니다. 국제대회 나가 보세요. 다른 팀은 몇 십억, 몇 백억 받는 대표팀 선수들이 수두룩한데 한국은 연봉 3억~4억도 많다고 깎으려고 하잖아요. 일반 직장인들에 비해선 많이 받는 거죠. 그러나 짧은 선수 생명을 계산한다면 그 돈이 많다고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성적도 나쁘지 않은데 수비 실책 등을 거론하면서 깎으려고 하니까 제가 반발할 수밖에 없었죠. 연봉 얘긴 다시 떠올리기 싫어요.”
지난 연말 ‘품절남’ 대열에 들어선 이대호에게 결혼이 주는 행복감에 대해 묻자, “몸이 아파도 집에 들어가면 파스 붙여줄 아내가 있다는 사실”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했다. 그래서 올 시즌 아내 신혜정 씨를 위해서라도 더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9년 연애하면서 와이프 맘 고생이 심했어요. 부산에 워낙 얼굴이 알려져 있다 보니 별별 소문들이 다 돌았거든요. 식당에 들어갔다가 옆 테이블에 여자 분이 앉아 있는 것만 봐도 이대호가 여자랑 데이트했다고 하고, 팬이라는 여자 분과 악수만 해도 이대호가 여자랑 손 잡고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나돌았어요.
제 소원은 와이프랑 아무런 방해받지 않고 길을 거닐며 산책하는 겁니다. 부산에선 꿈도 못 꿀 일이죠 뭐.”
올 시즌만큼은 롯데가 우승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이대호. 지난 시즌에 이어 또다시 부산 사직구장이 롯데팬들의 뜨거운 함성으로 뒤덮일 것 같다고 하자, 이대호가 이런 말로 기자를 뒤집어지게 한다.
“또 한 번 롯데 팬들의 가슴을 적셔줘야죠. 준비 지대로 하고 야구장 오시라고 전해주이소. 하하.”
●이대호는…
▲출생 _1982년 6월 21일
▲신체 _192cm 100㎏
▲혈액형 _A형
▲학력 _영남사이버대
▲포지션 _내야수 우투우타
▲입단 _2001년 롯데 자이언츠 입단
▲수상 _2009년 CJ 마구마구 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사랑의 골든글러브상
▲경력 _2006년 제15회 도하 아시안게임 야구 국가대표, 2008년 베이징올림픽 대표, 2009년 WBC 국가대표
부산=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