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건너온 에이스 ‘보물될까 애물될까’
▲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구단 관계자들끼리 종종 우스갯소리로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고 평가받는 용병들. ‘오면 반가운’ 선수는 큰 무대에서 쌓은 실력을 바탕으로 팀에 일조하는 이들이며, ‘가면 더 반가운’ 선수는 비싼 몸값에도 불구하고 마운드 위에서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는 일명 ‘먹튀족’이다.
현재 팀당 영입할 수 있는 용병은 4명이고 경기 출전은 2명으로 제한돼 있다. 과거의 예에 비춰보면 용병들이 몸값에 걸맞은 활약을 할 확률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때문에 구단 관계자들에게 한 해 용병 농사는 거액을 들여 떠나는 미지의 세계 탐험에 비유되곤 한다. 원정팀을 꾸려 해외 리그를 탐방하는 데만도 한 번에 3000만 원 남짓한 비용이 드는 데다, 용병 영입 후 복리후생 차원의 비용도 만만치 않다. KBO 규정에 따라 국내 체류기간 동안 가구가 완비된 숙박시설을 제공해야 하고 직계가족이 방문을 원할 시에 왕복 비행기 값까지 지불해야 한다. 특히 실력이 검증된 용병은 영입 경쟁이 심한 편이라 고액연봉 외에 옵션을 추가해 편의를 봐주는 것이 거의 관행으로 굳어지고 있어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금액보다 실제로 들어가는 돈은 훨씬 더 많다고 한다.
비용이 많이 들고 투자효과를 장담할 수 없는데도 각 구단들이 외국인 선수 모시기에 나서는 이유는 뭘까. 알다시피 그들의 활약이 팀 성적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KIA 타이거즈의 구톰슨-로페즈가 한국시리즈 우승에 결정적 역할을 한 후로 용병 영입경쟁은 더 치열해졌고 용병 선발도 대부분 ‘직접 선발’로 바뀌었다. 과거에는 에이전트나 현지 정보통들의 추천을 받아 괜찮은 선수를 물색하곤 했지만 이번 시즌에는 넥센 히어로즈를 제외한 7개 구단이 모두 전담팀을 꾸려 해외로 나가 선수사냥(?)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인 팀은 두산 베어스. 다른 팀에서 방출한 선수를 영입하면서 한때 ‘용병 재활용 구단’이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지만 올 시즌엔 10여 년 만에 최초로 원정팀을 파견했다.
통역담당으로 원정팀에 합류했던 이창규 과장은 “이번에 처음으로 도미니카 현지를 탐방해 선수의 경기 운영능력과 실력을 직접 지켜본 후 선발했다”며 새로 영입한 히메네스에 대해 만족감을 표시하며 그의 활약을 기대했다.
LG 트윈스 역시 해마다 미국 메이저리그 트리플A를 돌면서 용병을 선별하고 있다. 김진철 스카우트 팀장은 “보통 미국 트리플A 경기를 4일 간격으로 돌고 캐나다 리그까지 보고 오는 데 50일이 걸린다”며 “괜찮은 선수가 있다 해도 다 데려올 수 있는 건 아니다. 빅리그를 목표로 하지 않는 선수 중에서 고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체로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선수가 대상이 된다”고 설명한다.
▲ 한화 카페얀 | ||
감독이 직접 현지를 찾아가 재목을 찾는 팀도 있다. 롯데 자이언츠 로이스터 감독은 직접 메이저리그 윈터미팅에 참여해 로드리게스를 대체할 용병 사도스키를 영입했다. 구톰슨의 빈자리를 메울 투수를 찾던 KIA 타이거즈는 최근 매트 라이트를 영입했다.
국내 신인의 경우 전면 드래프트를 통해 지난 시즌 성적이 나빴던 순으로 우선지명권을 가지게 돼있어 구단 간 과열경쟁이 일 이유가 없지만 용병의 경우는 그야말로 총성 없는 전쟁터다. 연봉 상한액 외에는 별다른 규제사항이 없기 때문에 좋은 재목이 있다면 먼저 사인하는 구단이 임자다.
또 구단마다 용병을 선택하는 기준과 보는 눈이 비슷하다 보니 물망에 오른 선수군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한국형 용병’의 우선 조건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한국행 의지와 성실성이다. 때문에 각 구단에서 관심을 갖는 선수들은 대체로 거기서 거기다.
그러다보니 같은 선수를 놓고 경쟁하는 경우도 생기는데 이 때문에 구두계약을 해놓고 며칠 만에 다른 구단과 계약하는 용병도 적지 않다고 한다. 용병을 선발해놓고도 시즌 개막 전까지 최대한 발표 시기를 늦추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용병을 직접 보고 선발하지 못한 넥센의 경우는 더 불이익을 당하기도 한다. 김치현 넥센 통역담당은 “현장에서 직접 선수를 보고 뽑는 게 좋지만 재정상태가 좋지 않은 구단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며 “직접 간다 해도 웃돈을 얹어 주거나 다른 편의를 제공하는 등 협상 카드를 내미는 구단에겐 당해낼 수 없다”고 어려움을 전했다. 그는 “에이전시를 통해 선수를 추천받는데, 계약 타결 직전에 선수를 다른 구단으로 빼돌리는 일도 없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각 구단 관계자들이 말하는 ‘진상용병’은 어떤 경우일까. 무엇보다 몸값도 못하고 적당히 시간만 때우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곧장 떠나버리는 ‘먹튀족’을 들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먹튀 용병 중에서도 전설급으로 꼽히는 해태 시절의 숀 헤어다. 그는 광주구장을 방문해 “담장을 넘겨야 홈런인가, 장외를 넘겨야 홈런인가”라는 말로 거드름을 피우며 광주팬들의 기대를 한껏 부풀렸지만 막상 시즌에서는 단 한 개의 홈런도 기록하지 못한 채 방출됐다.
이런 먹튀족 때문에 각 구단에서는 확실하지 않은 선수와 계약할 때는 5개월 정도 단기 계약을 하기도 한다. 용병 선수에게도 긴장감을 계속 줄 수 있는 데다, 써보고 아니다 싶으면 일찍 방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 돈만 밝히는 선수도 골칫거리다. 두산 관계자는 “지난 시즌 용병 투수의 방어율이 3.75인데 이를 낮추면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약속했더니 정말 3.71까지 낮췄다. 시즌 막바지에 진짜 팀에게 중요한 경기에서도 호투해달라고 말했더니 ‘난 인센티브 조건을 채웠으니 경기에 나가지 않겠다’고 단박에 거절해 농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등판하지 않았다”며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새로운 용병투수 길라잡이
더도 덜도 말고 로페즈만큼만 던져라!
# 사도스키
(롯데·계약금 10만 달러 연봉 20만 달러)
로이스터 감독이 윈터미팅에 직접 참여해 간택한 라이언 사도스키. 지난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선발로 데뷔해 13 연속 이닝 무실점의 돌풍을 일으키며 ‘거물급’으로 발돋움했다. 감독이 현지에서 직접 한국행을 설득했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끄는 선수. 지난해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에서 모두 높은 볼넷 허용률을 보인 게 불안요소다. 메이저리그에서 6게임에 등판해 28.1이닝 동안 17개의 볼넷을 허용해 9이닝당 평균 5.4개의 볼넷 허용률을 보였고, 6년간의 마이너리그 기록도 9이닝당 4.0개의 볼넷 허용률을 보였다.
# 번사이드
(넥센·계약금 3만 달러 연봉 27만 달러)
실력보다는 운이 없어 일본리그에서 빛을 발하지 못한 선수다. 2008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15경기에 출전해 5승 3패 평균자책점 3.48의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2009년에는 용병엔트리에 밀려 2군 신세를 졌다. 결국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요미우리에서 퇴출되고 말았다.
한 시즌 동안 등판하지 못해 실전 감각이 떨어진 점이 단점이라면 단점. 넥센 관계자는 “2008년에만 해도 140km/h 초반의 포심 패스트볼과 좌완 특유의 슬라이더로 좌타자를 상대로 수준급 투구를 한 선수다”며 적응기간만 지나면 10승 이상은 무난히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왈론드
(두산·계약금 5만 달러 연봉 25만 달러)
왈론드는 2005년 LG 트윈스에서 뛰었던 선수다. 당시 4승 10패 평균자책점 5.04을 기록, 재계약에 실패했다. 이후 일본 요코하마로 이적해 5승 10패 평균자책점 4.80을 기록하며 기량이 성장한 모습을 보여 두산이 스카우트에 나섰다.
그러나 다시 찾은 한국 리그에선 맥없이 무너졌다. 시범경기 때 왼팔 통증을 호소해 시즌 개막을 재활군에서 맞이한 후 다시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시범경기 2경기 성적도 평균자책점 10.80으로 2패만을 기록, 낙제점을 받았다.
# 히메네스
(두산·계약금 5만 달러 연봉 25만 달러)
히메네스는 메이저리그 윈터미팅에서 발굴한 용병. 2007~2008년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2009년은 시카고 화이트삭스 산하 트리플A팀인 샤롯데 나이츠에서 뛴 것이 주요 경력이다.
성적은 메이저리그 선수로 데뷔했던 시절 34경기에서 3승 무패 평균자책 7.50을 기록했으며 2008년에는 15경기에 등판, 승패 없이 평균자책점 5.63을 기록했다. 트리플A팀인 샤롯데 나이츠에서는 총 40경기에 등판, 6승 3패에 평균자책점 4.02를 기록했다.
# 곤잘레스
(LG·계약금 5만 달러 연봉 25만 달러)
LG 원정팀이 어렵게 영입에 성공한 곤잘레스. 영입에 성공했다는 것만으로 야구 관계자들 사이에선 대박 스카우트로 꼽힌다. 이유는 LG와 계약하기 직전 멕시코 윈터리그에서 보인 뛰어난 활약 때문이다. 모두 7경기에서 4승 1패 방어율 2.87을 기록했다. 2003년부터 메이저리그(애리조나, 오클랜드)와 트리플A를 오가며 거둔 성적도 준수한 편이다. 마이너리그 통산 51승 40패, 방어율 3.81을 거두며 주목받은 곤잘레스는 메이저리그에서도 14승 25패, 방어율 5.88을 기록했다. 그러나 한국리그에서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아직 기대 이하라는 평가다.
# 오카모토
(LG·계약금 5만 달러 연봉 20만 달러)
오카모토 신야는 전지훈련에 참여해 시험을 치르고 합격한 용병이다. 일본에서 통산 9시즌 동안 357경기에 출전해 32승 19패 평균자책점 3.21을 기록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5개의 사회인 야구팀을 전전하다 37세라는 늦은 나이에 일본 프로야구팀 주니치 드래건스에 4순위로 입단했다. 당시 선발투수로 뛰며 시즌 초반 150km/h의 빠른 공을 뿌리는 괴물로 주목받았으나, 5회만 되면 체력이 급격하게 저하하는 단점을 보이기도 했다. LG 관계자는 “팀의 숙원과제였던 마무리 투수로서의 역할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 카페얀
(한화·계약금 5만 달러 연봉 25만 달러)
카페얀은 메이저리그보다는 마이너리그에서 활약했던 선수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메이저리그 애틀랜타, 콜로라도에서 뛰며 모두 99경기 등판, 통산 성적은 5승 7패 평균자책점 4.89을 기록했다. 한국 영입 직전에는 2009년 윈터리그 10경기에서 선발투수로 뛰었으며 5승 3패를 기록했다. 평균자책점 2.66.
# 데폴라
(한화·계약금 5만 달러 연봉 25만 달러)
메이저리그에서는 2007년 미네소타에서 16경기에 나와 1패에 평균자책점 8.55만 기록했다. 2009년 윈터리그에선 13경기에 출전해 선발로는 뛰지 못하고 중간계투로 활약하며 승리 없이 2패만 기록했다. 평균자책점은 7.20.
# 매트 라이트
(KIA·계약금 4만 달러 연봉 21만 달러)
KIA 타이거즈는 구톰슨의 빈자리를 채울 새로운 외국인 투수를 영입했다. 마이너리그 출신 매트 라이트가 13일부터 팀에 합류했다. 매트 라이트는 키 192㎝ 몸무게 122㎏의 건장한 체격을 보유하고 있으며 오클랜드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지난해까지 10시즌을 활약했다. 메이저리그 경력은 없지만 3년 연속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 시범경기에 참가했었다. 라이트는 10시즌 동안 166경기에 선발로 나서 59승 60패 방어율 3.95를 기록했다.
KIA는 “라이트는 전형적인 선발 투수로 직구는 140km/h 중후반대며 볼이 묵직하고 무브먼트가 좋으며 안정된 하체 밸런스를 바탕으로 제구력과 변화구 각이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