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연패 후 첫승’ 독수리여, 3년 전 눈물을 기억하라
지금까지 수많은 팀들이 길고 짧은 연패로 고난의 길을 걸어왔다. 강팀이든 약팀이든 예외는 없다. 프로야구 역사에 남을 만한 연패를 기록한 팀들도 여럿 나왔다. 역대 최다 연패 기록은 삼미가 1985년 3월 31일부터 4월 29일까지 당했던 18연패. 개막전에서 롯데를 이겼지만, 그 후 18경기를 내리 졌다. 그 다음은 쌍방울의 17연패다. 1999년 8월 25일부터 10월 5일까지 어둠의 역사를 남겼다. 쌍방울은 이 시즌을 끝으로 팀이 해체됐다. 2002년엔 롯데가 6월 2일부터 26일까지 16연패에 빠졌다. 구단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였다. 그해 시즌 최종전에는 당시 3만 명 규모였던 사직구장에 관중 69명이 입장했다.
그 후 연패로 가장 고생했던 팀은 단연 KIA와 한화였다. 2010년 KIA는 롯데의 16연패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전년도 한국시리즈 우승팀이었기에 더 충격적인 결과였다. 2013년 한화는 명장 김응용 감독을 영입하고도 개막하자마자 13경기를 내리 져 역대 개막 최다 연패 기록을 바꿨다. 여전히 야구팬들 입에 오르내리는 아픔의 기록이다.
# 감독이 공개 사과까지 한 KIA의 16연패
참혹했던 22일이었다. 모든 건 에이스 윤석민의 부상과 함께 시작됐다. 2010년 6월 18일 문학 SK전. 4연승을 달리던 KIA는 윤석민이 8회까지 1실점으로 호투해 3-1로 승기를 잡았다. 그러나 내내 불안했던 불펜을 의식해 9회에도 윤석민을 다시 올린 게 화근이 됐다. 윤석민이 주자를 내보냈고, 불펜은 끝내기 패배를 허용했다. 공 132개를 던지고도 완투승 목전에서 승리를 날린 윤석민은 울분이 치솟았다. 공을 던지는 오른손으로 라커룸 문을 세게 치다 새끼손가락이 부러졌다.
그 후 KIA의 날개도 꺾였다. 외국인 에이스 아퀼리노 로페즈가 다음 날 5.1이닝 9실점으로 무너졌다. 그 다음 날은 선발 서재응이 호투하자 상대 에이스 김광현이 완봉승으로 응수했다. 3연패였다. 이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5회까지 팽팽하게 맞서다 후반 불펜 싸움에서 무너지기도 하고, 이어진 두 경기에선 각각 4회 0-7, 3회 0-9로 일찌감치 승기를 내줬다. 그 다음엔 두산 김동주에게 쐐기 3점 홈런을 맞았고, 또 그 다음엔 2회 한 이닝에만 연속 6안타를 하용하기도 했다. 그 사이 2000년 해태가 기록했던 역대 타이거즈 프랜차이즈 최다 연패 기록(9연패)을 넘어섰다. 10연패로 새 역사를 쓰던 날, 설상가상으로 중심 타자 최희섭이 발목 부상까지 당했다.
연패를 끊을 기회는 있었다. 11연패를 찍었던 6월 30일 광주 SK전이 그랬다. 7회까지 5-2로 앞섰다. 그런데 1점을 더 쫓긴 8회 2사 만루에서 마무리 투수 유동훈이 정근우에게 2타점 동점 적시타를 맞았다. 결국 연장 11회에 5점을 내줘 5-10으로 졌다. 이뿐만 아니다. 다음 날 내민 곽정철 깜짝 선발 카드는 실패로 돌아갔고, 양현종은 시즌 최악의 피칭을 했으며, 로페즈는 김현수에게 1회부터 3점 홈런을 맞았다. 비로 경기가 취소되는 행운을 만나도, 체력이 회복되기는커녕 오히려 타격감이 무너졌다. ‘뭘 해도 안 되는’ 시기. 그렇게 15개의 패배가 쌓였다.
7월 8일 잠실 두산전. KIA는 다시 2-5로 져 연패를 ‘16’으로 늘렸다. 경기가 끝나고 광주로 돌아가려던 선수단 버스를 팬들이 막아섰다. 조범현 감독이 탄 승용차를 둘러쌌다. 열띤 응원을 승리로 보상 받고 싶었던 팬들이 기다리다 지치고, 분노했다. 패배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집단 시위를 방불케했다. 대치 상황이 20분간 계속됐다.
결국 조 감독이 차에서 내려 팬들 앞에 섰다.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하겠다. 부상 선수들이 돌아오면 좋은 야구로 성원에 보답하겠다”고 약속한 후에야 길이 열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거리 청문회. 광주로 내려가는 선수단 버스 안은 그야말로 참담했다.
조 감독은 광주구장에 돌아오자마자 감독 전용 의자를 더그아웃에서 치웠다. 한눈에도 불편해 보이는 허름한 의자를 갖다 놓았다. 감독 혼자 몸을 편하게 둘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선수들은 다음 날 평소보다 야구장에 일찍 나왔다. 배팅케이지 두 개를 설치하고 열심히 배팅 훈련을 했다. 상대팀인 한대화 당시 한화 감독은 조 감독을 찾아 위로를 건넸다. 홈 팬들은 ‘그대들 곁엔 우리가 있지 아니한가’, ‘오늘부터 연승하면 타이거즈 우승이다’와 같은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서울에서 수모를 당하고 온 선수단을 감싸 안았다.
7월 9일 광주 한화전. 결국 KIA는 16연패의 악몽에서 벗어났다. 3회 2점을 먼저 내줘 또 패배의 그림자가 드리웠지만, 4-2 역전에 성공했다. 2점 리드 상황에서 7회 2사 2·3루 위기기가 닥치자 더그아웃에는 한국시리즈 7차전 못지않은 긴장감이 넘쳐흘렀다. 다행히 이번엔 22일 만의 승리가 KIA를 찾아왔다.
2013년 4월 13일 한화 이글스가 LG와의 경기에서 삭발투혼에 나섰지만 연패는 3일 뒤인 16일에 끊겼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KIA의 상징과도 같았던 베테랑 이종범은 이 경기에서 한·일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다. 백전노장인 그도 비로소 “나조차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어떻게 연패를 끊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후배들과 팬들에게 더 미안한 마음뿐이었다”고 토로했다. 승리투수가 된 양현종은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무조건 연패를 끊으려고 던졌다”고 했고, 동점홈런을 날린 나지완은 “연패 기간 중에는 팬들께 죄송해서 집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고 털어 놓았다.
역전타를 친 베테랑 포수 김상훈 역시 “16연패가 내 책임 같았다. 주장보다는 포수로서 잡을 수 있는 경기를 못 잡았다는 자책감이 너무 컸다”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모두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스스로를 탓했던 시간. KIA는 어렵게 그 터널을 빠져 나왔지만, 결국 그해 5위로 내려 앉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 삭발로 얼룩지고 눈물로 빛난 한화의 13연패
2013년 4월. 막 새 시즌을 시작한 KBO리그를 뜨겁게 달군 단어는 단연 ‘한화’와 ‘연패’였다. 한화가 언제 시즌 첫 승을 거둘 수 있을지에 야구계 전체의 관심이 쏠렸다. 백전노장 김응용 감독이 8년 만에 현장에 복귀해 한화 지휘봉을 잡은 첫 해. 개인 통산 1476승을 올렸던 명장은 그러나 1477번째 승리를 얻기 위해 무려 14경기를 더 치러야 했다.
KIA가 그랬듯, 연패는 늘 예기치 못한 장면에서 시작된다. 3월 30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개막전. 한화는 9회초까지 5-4로 앞섰다. 이제 세 타자만 아웃시키면 시즌 첫 경기를 승리로 출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9회말 마지막 수비 때 롯데 전준우의 3루수 쪽 땅볼 타구가 베이스를 맞고 크게 굴절됐다. 이른바 ‘베이스의 저주’가 시작된 것이다. 곧이어 장성호의 동점 적시타와 박종윤의 끝내기 희생플라이가 나왔다. 5-6 역전패. 첫 경기부터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꼬여 버렸다. 선수들은 훗날 “사실 그때부터 뭔가 불안한 기운을 느꼈다”고 했다.
개막 8연패가 이어지자 한화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역대 개막 최다 연패는 2003년 롯데가 기록한 12연패다. 설마 그 기록까지는 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 믿음은 곧 무너졌다. 한화는 계속 졌다. 11연패 위기에 빠지자 선수들은 단체로 머리를 삭발하고 야구장에 나왔다. 그래도 소용없었다. 롯데의 기록은 결국 깨졌다.
4월 16일 대전 NC전. 한화는 또 다시 2회까지 4점을 내줬다. 그러나 이후 집중력을 발휘했다. 주장이자 4번 타자였던 김태균이 역전 2점 홈런을 쳤다. 6-4 승리. 시즌 14번째 경기에서 드디어 승수가 ‘1’로 바뀌었다.
김응용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 도중 눈시울이 젖어 들었다. 한국시리즈에서 수없이 우승을 해도 울지 않던 김 감독이다. 그런 그가 시즌 첫 승의 감격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선수들에게 미안하다. 감독이 잘못해서 계속 졌다. 프로야구 감독을 20여 년을 했는데 오늘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김태균도 울먹였다. “그동안 굉장히 힘들었다. 주장으로서….” 이렇게 말하다 말고 잠시 머뭇거렸다. 팀의 간판스타이자 버팀목으로서 누구보다 마음고생이 심했던 김태균이다. 그는 “후배들이 야구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줬어야 했는데, 그렇게 못해서 마음이 무거웠다. 첫 승을 했으니 이제 선수들이 야구를 즐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선수들의 가족도 난리가 났다. 한화 선수의 아내들 역시 첫 승 직후 서로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함께 울었다. 연패를 끊던 날 시구를 맡았던 배우 이태임은 ‘승리의 여신’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팬들이 이태임의 기사에 “한화의 첫 승을 함께 해준 시구자라 고맙다. 잊지 않겠다”는 댓글을 연이어 남겼을 정도다.
물론 누구보다 기뻤던 건 한화 팬들이다. 특히 일명 ‘한화 눈물녀’의 모습과 후일담은 훈훈한 감동을 안겼다. 한화가 NC를 꺾고 13연패 탈출을 확정하던 순간, TV 중계 화면에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여성팬 두 명이 클로즈업됐다. 이 여성들은 경기가 끝나기 직전부터 선수들이 승리의 인사를 건넬 때까지 하염없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한화팬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눈물이었다.
한화는 이 순간 팬들의 소중함을 더 뼈저리게 실감했다. 연패의 과정이 구단과 선수들에게 큰 깨달음을 안긴 것이다. 한화 구단은 공식 SNS를 통해 그 주인공을 수소문했고, 결국 찾아냈다. 열성 한화팬인 민효정 씨와 홍미해 씨였다. 그리고 5월 19일 대전 두산전에서 ‘네버 포겟 더 티어스(그날의 눈물,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이름의 이벤트를 열었다. 최하위로 처진 팀 성적에도 불구하고 늘 야구장을 찾는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날이었다.
이날 지정석을 제외한 내·외야 1만 2000석 전 관중은 무료로 입장했다. 구단이 손해를 감수하고 입장료 전액을 부담했다. 창단 이후 처음 벌어진 일이었다. 시구는 민효정 씨, 시타는 홍미해 씨가 각각 맡았다. 너무 쓰라렸던 13연패의 아픔은 그렇게 구단과 팬의 화합으로 아름답게 막을 내렸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연패 탈출 위해서라면…“상대팀 더그아웃에 몰래 소금 뿌린 적도” 야구는 멘탈 게임이다. 야구의 일부인 ‘연패’도 그렇다. 경기가 꼬이면 마음도 꼬이고, 마음이 꼬인 탓에 다음 경기도 더 꼬인다. 한 선수는 “연패가 슬슬 길어지기 시작하면, 팀 전체가 위축되는 게 느껴진다. 1회에 선취점만 내줘도 ‘오늘 또 지는 것 아닌가’ 싶은 부정적인 기운이 더그아웃에 엄습해 온다”며 “평소보다 플레이도 소극적으로 변한다. 과감한 플레이로 공을 세우는 것보다 ‘절대 실수하면 안 된다’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이럴 때는 ‘내가 해결해야지’ 하는 생각보다 ‘누군가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고 귀띔했다. 어떻게든 1승을 해내야 모든 게 끝난다. 연패를 벗어나는 방법은 아무 것도 없다. 과정도 필요 없다. 그냥 이겨야 한다. 이 선수는 “5점을 앞서도 마찬가지다. 안심을 못 한다. ‘이러다 또 뒤집히지 않을까’ 싶어서 오히려 더 불안하다”고 했다. 또 다른 선수도 “조금씩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경기가 끝날 때까지 불안감이 떠나지 않는다. 더 놀라운 건, 실제로 그런 마음이 결과로 이어진다”고 했다. 연패 중에는 아무 것도 안심할 수 없다. 과거에는 온갖 미신도 횡행했다. 한 야구 코치는 “상대팀 더그아웃에 몰래 소금을 뿌린 적도 있다”고 털어 놓았다. “우리 팀이 유독 상대 전적에서 약한 팀이 있었다. 그 팀을 상대로 10연패를 넘게 했다. 그래서 그 팀과 홈경기를 할 때 더그아웃에 소금이나 팥 같은 걸 뿌렸다. 이른바 ‘부정 탄 기운’을 몰아내자는 의미였다”고 했다. 또 다른 코치는 “연패 중에는 회식을 많이 했다. 다 같이 모여서 ‘한번 해보자’고 밥도 먹고 술잔도 부딪혔다. 그러나 다음 날 야구장에 나와 유니폼으로 갈아입는 순간, 다시 패배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렇게 구렁텅이에 빠진다”고 증언했다. 긴 연패 때 종종 볼 수 있는 장면은 선수단 전체의 ‘삭발’이다. 2010년부터 팀 성적이 꾸준히 안 좋았던 한화는 아마 최근 몇 년간 가장 삭발을 많이 한 팀일 것이다. 2013년 개막 13연패 때도 어김없이 삭발을 했다. 그러나 수도권 구단의 한 선수는 “세상에서 가장 효과가 없는 연패 탈출 방법이 바로 삭발”이라고 했다. 실제로 삭발 당일 경기에서 연패를 끊은 팀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어쩌다 한 번씩 일치했던 사례가 널리 알려졌을 뿐이다. 물론 연패 기간의 삭발이 그저 ‘전시용’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나이 30대 중반에 삭발을 경험해 본 한 베테랑 선수는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삭발을 하게 된다. 그렇게라도 해서 뜻을 모으고 싶은 절박한 마음 때문”이라고 했다. 또 “팬들이 자칫 ‘저 선수들은 이길 의지도 없이 무기력하게 지기만 한다’고 오해할 수도 있지 않나. 선수들도 누구보다 이기고 싶고, 그만큼 단합하려고 노력한다는 의지를 그렇게라도 표현하는 것”이라며 “동료들의 민머리를 보면서 투지를 불태우게 되는 효과도 있다”고 했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