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기는커녕 봉투만 두둑히 챙겨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은 2014년에만 기본급 1억 9135만 원, 성과급 1억 8114만 원을 받았다. 홍 전 회장은 2015년 경영평가에 따라 지난해 성과급을 반환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일요신문 DB
지난해 산은과 수은은 경영실적 평가(2014년 기준)에서 각각 A등급과 B등급을 받았다. 특히 산은은 2012~2014년까지 줄곧 A등급이었다. 이들 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임원 현황’ 자료 등에 따르면 각 은행장에게 지급된 성과급은 산은이 1억 8114만 원, 수은이 1억 2680만 원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두 은행의 ‘참담한’ 경영 성적을 고려하면 지급된 성과급이 과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산은의 자회사 대우조선해양(대우조선)은 2013~2014년 5조 5000억 원대 분식회계를 저질렀다. 수은의 자회사인 성동조선해양(성동조선)도 2013년부터 당기순손실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감사원이 6월 15일 발표한 ’금융공공기관 출자회사 관리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성동조선의 당기순손실은 2012년 1780억 원에서 2013년 3212억 원으로, 2014년 5792억 원으로 늘어났다.
관리·감독 의무가 있는 산은과 수은은 두 조선사의 부실 경영을 방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더욱이 지난해 5조 원대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대우조선은 산은 등 채권단으로부터 4조 2000억 원을 추가 지원받는 상황에서 877억 원의 ‘성과급 파티’를 벌였다.
또 대우조선의 ‘선장’이던 남상태 전 사장과 고재호 전 사장은 내부 규정을 어기고 재임 기간 동안 각각 18억 1423만 원, 7억 1488만 원의 성과급을 챙겼다. 대우조선과 산은이 체결한 ‘경영평가 MOU’에 따르면 평가연도 기준 당기순이익이 발생하고, 경영실적 등급이 G등급 초과일 때에만 성과급을 지급하도록 돼 있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2년 대우조선의 경영실적이 F등급으로 과다 산정(실제는 G등급)됐고, 2013~2014년 2조 4000억 원대 영업손실까지 기록했음에도 성과급을 지급한 사실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및 배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남 전 사장은 지난 6월 29일 업무상 횡령 및 배임 등 혐의로 구속됐으며, 고 전 사장은 사기대출 등 혐의로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공범’이나 다름없는 산은 전·현직 임원들은 구속 수사를 피하는 등 ‘부실 경영’ 책임에서 한 발 비껴선 모습이다. 먼저 2013~2016년 산업은행 회장을 역임한 홍기택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는 대우조선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휴직계를 낸 뒤 중국을 떠났다. 귀국 여부는 지난 30일 현재 확인되지 않고 있다.
홍 부총재는 2014년에만 기본급 1억 9135만 원, 성과급 1억 8114만 원을 받았다. 기타 수당은 포함하지 않은 액수다. 재임 기간 동안 홍 부총재가 받은 평균 연봉은 5억 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홍 부총재는 2015년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에서 서울 서초구 반포동 아파트 및 상가 등 78억 3091만 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산업은행에 예치한 현금만 5억 5000만 원에 이르러 전형적인 ‘현금 부자’다. 홍 부총재의 은행 예금은 2014년 48억 원에서 2015년 53억 원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대우조선은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
홍 부총재와 함께 감사원으로부터 대우조선 부실 관리에 대한 책임을 물어 ‘인사 통보’ 조치된 임원은 류희경 산업은행 수석부행장이다. 산은 내 기업 구조조정 총괄 책임자인 그는 구조조정 대상인 한진해운 측 오너 일가에 미공개 정보를 전달한 의혹을 함께 받고 있다.
2014년 기준 류 부행장은 1억 5308만 원의 기본급과 1억 3042만 원의 성과급을 챙겼다. 또 류 부행장의 아들 류 아무개 씨는 최근 산은에 입사해 급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류 부행장은 아들 입사 당시 임원 면접관을 맡았다. 일각에선 ‘특혜 의혹’을 제기하지만 산은 측은 “입사 성적이 우수했다”고 해명하는 상황이다.
김용환 전 수출입은행장은 2008년 당시 4억 원대 재산을 신고했지만 2013년에는 18억 원대까지 재산이 늘었다. 지난해 4월 ‘낙하산 논란’과 함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에 취임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산은에 비해 여론 주목도는 덜 하지만 수은 임원진 역시 부실 관리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수은은 2010년 성동조선에 대한 자율협약이 개시된 후 1조 9281억 원을 지원했다. 그러나 수은은 성동조선의 적자 수주가 계속 증가하는데도 이를 제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감사원은 2011~2014년 수출입은행장을 역임한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에게 ‘인사 통보’ 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김 회장은 공직 생활에서 물러난 터라 ‘인사상 불이익’은 실효성이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감독원 출신인 김 회장은 2008년 당시 4억 원대 재산을 신고했지만 2013년에는 18억 원대까지 재산이 늘었다. 이 가운데 2013년 재산 신고에서 농협 예금이 없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김 회장은 지난해 4월 ‘낙하산 논란’과 함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에 취임했다.
김 회장은 수은 재직 당시 4억 3000만~5억 3000만 원의 연봉을 받았다. 뒤이어 취임한 이덕훈 수출입은행장의 지난해 연봉(3억 2000여만 원)보다 1억~2억 원가량 많다. 또 이 같은 부실·방만 경영에 ‘경종’을 울렸어야 할 공명재 감사는 감시망에 구멍을 드러냈다. 공 감사는 이 행장과 함께 대표적인 ‘친박 인사’로 꼽힌다. 공 감사의 2014년 연봉은 1억 4500만 원 수준이다.
국책은행은 올해 추가적으로 12조 원 규모의 구조조정 지원금을 집행할 예정이다. 금융위 경영평가에서 C등급을 받았기 때문에 성과급도 정상 지급될 예정이다. 제윤경 의원은 “기업 구조조정은 부실의 구조적 원인과 책임을 명확히 규명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그 전에는 (국책은행을 통해) 국민의 혈세를 단 한 푼도 투입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산은과 수은은 지난 2일 2015년 경영평가에 따라 지급한 등기임원의 성과급을 전액 반납받기로 결정했다. 여론의 비판 수위가 높아진 데 따른 대응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홍 전 부총재 등은 지급받은 성과급을 다시 반환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