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민 사태’로 친안 직격탄…안, 박지원한테 ‘대선 관리’ 받아야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지난 4월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38석을 얻으며 이변을 일으켰다. 동시에 안 전 대표의 정치적 주가도 급상승했다. 호남당이라는 비난 여론도 있었지만 제3당으로 캐스팅 보트를 확보하며 정치력을 증명한 까닭에서다. 안 전 대표는 본인이 출마한 노원병에서의 승리가 확정된 후 “좋은 정치로 보답하겠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6월 8일 ‘김수민 의원 리베이트 수수 의혹’으로 국민의당은 발칵 뒤집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김수민 박선숙 의원 왕주현 전 사무부총장 등 5명을 총선 당시 선거홍보업체 B 사와 S 사로부터 2억 3820만 원의 불법 정치 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선관위는 이들이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하기 위해 허위의 세금계산서를 작성해 보전청구와 회계보고를 했다는 혐의도 추가했다.
이 사건은 결국 ‘안철수 천정배 공동 대표 체제’를 149일 만에 무너뜨렸다. 안 전 대표는 29일 고개를 숙였다. 그는 “정치는 책임을 지는 것이다. 이번 일에 관한 정치적인 책임은 전적으로 제가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표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안 전 대표는 사건 초기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고 받았다”고 말했지만 검찰이 김 의원은 물론 핵심 당직자들을 연이어 소환하자 사퇴를 결심했다.
안 전 대표의 사퇴 결심이 적절했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사퇴 타이밍은 괜찮았다. 안 전 대표는 하루빨리 자신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면 대선출마 기회가 다시 올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사퇴 발표로 일단 본인의 대권가도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리베이트 사건에서 벗어나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 실장도 “빠른 감은 있지만 적절했다. 좀 늦지 않았냐고 하는 건 억측이다. 박 의원이 검찰에 가지도 않았는데 대표가 사퇴하면 모양새가 이상하다”고 보탰다.
안 전 대표가 사퇴를 결심한 배경은 뭘까. 왕 전 사무부총장 검찰 구속 후 28일 열린 의원총회가 안 전 대표 심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김수민 리베이트 수수 의혹’ 사건이 터진 뒤 국민의당 내에서 지도부 사퇴론이 공식적으로 제기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날 의총에서 유성엽 의원 등 중진의원들은 ‘안철수 사퇴론’을 공식 제기했다. 결국 안 전 대표는 이튿날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사퇴 카드를 빼들었다.
안 전 대표의 초기 대응도 도마에 올랐다. 안 전 대표는 리베이트 사건에 대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고 받았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김 의원과 박 의원은 물론 왕 전 사무부총장도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국민의당은 이상돈 최고위원을 단장으로 하는 자체 진상 조사단도 구성했다. 조사를 마친 이 최고위원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영장 청구하고 기소하면 검찰은 망신당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이때까지만 해도 안 전 대표는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리베이트 사건 당사자들의 ‘폭탄 돌리기’가 시작된 뒤 안 전 대표는 점점 궁지에 몰렸다. “공천헌금, 리베이트 없었다”고 줄곧 강조했던 김 의원은 6월 23일 검찰조사에서 “당의 지시로 허위 계약서 작성이 이뤄졌고, 브랜드호텔과 B 사, S 사 사이 이상한 계약 관계를 왕 전 사무부총장이 주도적으로 지시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칼끝은 왕 전 사무부총장으로 집중됐고, 이어 박 의원으로까지 수사망은 확대됐다.
이번 검찰 수사로 ‘친안’ 진영은 직격탄을 맞았다. 2월 5일 국민의당 내부는 박 의원을 당 사무총장으로 임명하는 방안을 두고 진통을 겪었다. 현역 의원 중 일부가 박 의원의 사무총장 임명을 반대한 것이다. ‘안철수 사당화’ 논란의 시발점이었다. 호남 중진 의원들 중심의 ‘비안’ 진영이 이번 사건에 더욱 공분한 까닭이기도 하다.
주목할 만한 것은 비대위원장을 맡은 박지원 원내대표 손에 국민의당 운명이 달렸다는 사실이다. 박 원내대표는 30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안철수의 새정치와 박지원의 헌정치‘가 접목하면 잘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호남 대표 정치인인 박 원내대표 체제는 국민의당의 새 정치의 모델은 사라졌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 국민의당 정체성은 새누리당과 더민주 사이에서 어떻게 줄타기하느냐와 같이 미세한 정치게임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안 전 대표 대권가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국민의당 창당으로 쌓아온 지지기반이 흔들린 것은 물론 앞으로 박 원내대표의 ‘대선 관리’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안 대표 쪽에서는 자신의 대권가도와 관련된 모든 프로그램을 박 원내대표에게 의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윤태곤 실장은 “안 전 대표의 대권가도에 이번 리베이트 사건은 분명 좋지 않다. 하지만 안 전 대표는 ‘스테이지 돌파형’ 정치인이다. 대선후보 사퇴, 신당창당, 대표직 사퇴 등 짧은 시간 동안 계파가 아닌 자기 힘으로 정치적 위기를 돌파해왔다. 안 전 대표의 현명한 대응이 더욱 중요한 시점”이라고 보탰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