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 아닌 탄원서 제출…오직 ‘무죄’ 주장 위한 갈아타기
# 제자리걸음
“고려할 부분이 많네요. 재판 휴정기도 있고….” 재판부는 지난 4일 열린 최 변호사의 두 번째 공판준비기일에서 우려부터 나타냈다. 검찰과 최 변호사 양측의 입장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재판을 미뤄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법원은 오는 7월 말 하계 휴정기를 앞두고 있어 일정 조율도 쉽지 않았다. 결국 재판부는 오는 8월 8일을 세 번째 공판준비기일로 정하면서, 양측에 “기일을 계속 미룰 수 없으니 기록검토를 서둘러 달라”고 강조했다.
최유정 변호사.
특히 최 변호사는 일명 ‘정운호 게이트’ 관련자 중 가장 처음으로 재판에 넘겨진 인물이다. 이번 재판은 그동안 불거진 법조비리 의혹의 실마리부터 가려져 있던 검찰 수사 내용 등이 모두 공개될 수 있다. 공판준비기일부터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최 변호사 측은 재판을 미루고 있다. 검찰 수사 기록 등 방대한 자료를 보기엔 시간이 부족했고, 이에 따라 입장정리도 명확하게 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최 변호사 측은 지난 6월 14일 열린 첫 공판준비기일에 이어 지난 4일 열린 두 번째 기일에서도 공소사실과 증거, 쟁점 등에 관한 의견을 밝히지 않았다.
실제로 최 변호사 측이 검토해야 할 자료의 분량은 방대하다. 검찰이 첫 기일에서 재판부에 제출한 증거만 330개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확보된 진술 증거와 휴대폰 통화내역 등이 그 내용이다. 여기에 두 번째 기일에서 검찰이 “국세청이 조만간 조세포탈혐의로 최 변호사를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힌 만큼, 자료는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공판준비기일의 횟수 제한은 없기 때문에 다음 기일에서도 재판이 미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갑작스런 변호인 교체, 왜?
하지만 일부 법조계 관계자들은 다른 분석을 내놓고 있다. 최 변호사 측이 두 번째 기일에서도 재판 연기를 요청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는 얘기다. 특히 최 변호사의 변호인 교체를 두고 “적어도 입장정리는 명확히 된 걸로 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 변호사는 두 번째 기일을 앞둔 지난 7월 1일 새 변호인을 선임했다. 향후 재판은 모두 새 변호인이 대리할 예정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재판부가 지난 4일 새 변호인에게 “기존 변호인은 더 이상 관여 안 하는가”라고 묻자 변호인은 “아마 제가 출석해야 할 상황”이라고 답변했다. 실제로 최 변호사가 검거된 이후부터 그를 대리해온 일부 변호인은 지난 5일 소송대리인해임(사임)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당시 최 변호사의 변호인 교체는 갑작스러웠던 데다, 교체 이유도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기존 변호인 가운데 일부는 사법연수원 동기 등 최 변호사와 개인적 친분이 있었지만 새 변호인은 최 변호사와 별다른 관계는 아니라고 밝히면서 궁금증은 더 커졌다. 그는 재판 이후 “최 변호사와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새 변호사는 “몰랐다”고 짧게 답변했고, 교체 이유 등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었다.
# 의견차이
반면 앞서의 일부 법조 관계자에 따르면 변호인 교체는 이미 예고돼 있었다. 최 변호사와 기존 변호인과의 의견차이가 있었다는 얘기다. 최 변호사를 잘 아는 한 법조 관계자는 “검찰이 앞서 제출한 기록 등에 대한 검토는 이미 끝난 것으로 알고 있다. 기존 변호인들이 자료를 보고 재판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변호인들이 검찰이 제기한 공소사실 중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고 선처를 호소하는 방법을 제안하자, 최 변호사가 심하게 반대했다”고 덧붙였다.
최 변호사는 검찰조사 단계서부터 자신의 혐의를 모두 부인하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재판에 넘겨진 이후 최 변호사가 재판부에 자필 ‘탄원서’를 제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반적으로 혐의를 인정하는 피고인은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하며 ‘반성문’을 내지만, 최 변호사는 탄원서 형식을 택했다. 특히 판사였던 자신이 피고인으로 전락한 상황에 대한 심정을 적으면서도, 자신은 정당하게 수임료를 받았다면서 그 경위에 대해 구체적으로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변호인들의 “혐의 일부를 인정하자”는 제안을 최 변호사가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얘기다.
최 변호사를 대리하던 기존 변호인의 지인은 “최 변호사는 공판준비기일은 다가오는데 변호인들과의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자, 변호인을 새로 찾기로 결심했다”며 “최 변호사는 새 변호인이 자신의 의견을 그대로 대리해줄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또 다른 법조 관계자들에 따르면 새 변호인은 대부분 의뢰인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여 변론을 펼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어려운 재판에서도 높은 수임료를 요구하지 않고 ‘무죄’ 변론을 하는 등 의뢰인의 요구를 그대로 대리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여자 구치소 내에서 인기가 높다. 최 변호사도 구치소 내에서 소개 받았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 무죄 주장 받아들여질까
최 변호사의 무죄 주장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최 변호사가 송창수 전 이숨투자자문대표와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받은 수임료가 워낙 거액인데다, 그동안 불거진 의혹 중 검찰이 일부 사실로 판단할 수 있는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앞서의 최 변호사를 잘 아는 법조 관계자는 “최 변호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오직 본인만 알고 있는 상황”이라며 “일각에선 혐의를 일부라도 인정하는 모습과는 정반대로 무죄를 주장하는 것을 보고 놀라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최 변호사가 변호사법 110조와 111조를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변호사법 110조를 보면 변호사가 판사·검사, 재판·수사기관의 공무원에게 금품을 제공하거나 그 공무원과 교제한다는 명목으로 의뢰인으로부터 이익을 받기로 한 행위에 대해 규제하고 있다. 비용을 변호사 선임료나 성공사례금에 명시적으로 포함시킬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최 변호사가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받은 착수금이나 약속한 성공보수에 법원에 대한 로비 명목 금액이 포함됐다면 111조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징역형으로 처벌 가능하다. 여기에 검찰이 조세포탈혐의를 추가해 유죄로 판결 날 경우엔 처벌 강도가 더 높아질 수 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