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들 감독, 4번 타자 올리며 힘 싣기…“혐의 입증 때까진 예단 말아야”
7월 6일(한국시간), 시카고 지역 신문을 통해 처음으로 ‘강정호, 성폭행 혐의로 조사 중’이란 내용의 기사가 터졌을 때 강정호는 세인트루이스와의 경기를 앞두고 팀 훈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기사가 나온 시점을 되짚어 봤을 때 강정호는 이미 훈련 시작 전에 보도된 내용을 인지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강정호는 무표정한 얼굴로 타격 연습을 진행했다. 마침 이날은 강정호가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세인트루이스 기자실은 한동안 강정호 얘기로 시끌벅적했다. 일부 기자들은 시카고 지역 신문의 기사를 클릭하면서 옆의 기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엿보였다. 기자들의 관심은 두 가지였다. 성폭행 여부와 약물 복용 문제였다.
예정된 시간에 경기가 진행됐지만 야구가 제대로 보일 리 만무했다. 국내 매체에서 쏟아지는 뉴스를 살피며 경기 후 강정호를 만나 어떤 입장이라도 들어볼 생각을 부풀렸다. 그러나 경기 후 오픈된 피츠버그 클럽하우스에선 구단 홍보팀 관계자가 ‘그 일’과 관련해선 절대 질문하지 말아줄 것을 당부했다. 이날 9회 대타로 나가 안타를 기록했던 강정호에게 경기 내용에 대해서만 질문할 수 있었다.
강정호는 ‘성폭행 혐의’ 보도가 나온 다음날 팀 승리를 결정짓는 결승 2루타를 날리며 좋은 타격감을 선보였다.
강정호의 표정은 담담했다. 물어보고 싶은 내용은 한가득이었지만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선 야구 관련 짧은 대화만 나눴을 뿐이다.
7월 7일 경기에 강정호는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그것도 4번 타자였다. 클린트 허들 감독이 강정호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전날 허들 감독은 강정호를 대타로 출전시킨 것과 관련 “우리가 강정호를 내보내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은 바 있다.
경기 전 클럽하우스에서 다시 강정호를 만났다. 전날보다 한결 표정이 부드러웠다. 인사를 건네자 어색한 웃음을 내보였다. 한국 취재진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피츠버그 프랭크 코넬리 사장이 강정호의 라커 앞으로 다가왔다. 구단 사장이 클럽하우스를 방문하는 건 현지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받아들였다. 한국 취재진과 개별적으로 인사를 나눈 사장은 강정호 통역에게 잠깐 미팅을 제안했고, 강정호는 “사장과 잠깐 얘기하고 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강정호와 피츠버그 사장이 어떤 대화를 주고받았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 일로 사장이 강정호를 찾은 게 아닌가 싶다.
강정호는 이날 팀 승리를 결정짓는 결승 2루타를 날리며 좋은 타격감을 선보였다. 3경기 만에 4번타자 3루수로 선발 출장해 2루타 포함 4타수 1안타 2타점 2득점 1볼넷으로 존재감을 발휘했다. 경기 후 가진 공식 인터뷰에서 강정호는 타격 코치랑 비디오를 많이 보며 타격감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는 얘기를 전했다. 최근 겪고 있는 슬럼프 관련해선 “시합하다 보면 누구나 겪는 일이다. 그걸 얼마만큼 대처하는지가 중요하다. 지금도 시합 나가면서 감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경기 관련 질문과 대답이 계속 이어졌고, 인터뷰가 마무리될 즈음에 현지 기자 중 한 명이 시카고 운운하며 질문하려 하자, 강정호의 통역이 “구단 방침대로 노코멘트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전했고, 인터뷰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강정호는 한국 취재진에게 지나가는 말로 “나보다 기자들이 더 걱정하는 것 같다.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란 얘기를 전했다.
평소 선수에 대한 신뢰가 두텁기로 소문난 클린트 허들 감독은 최근 부진에도 불구하고 강정호를 선발 출전시킨 이유를 설명했다.
“메이저리그 수준의 선수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부진이고 또 언젠가 다시 제 컨디션을 찾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전반기에 서로 다른 종류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걸 극복하고 오늘처럼 활약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곧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고, 피츠버그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선수의 활약이 꼭 필요하다.”
강정호가 아직까지 아무런 혐의가 입증되지 않았고 상대 여성의 일방적인 주장만 있을 뿐이지만 국내 언론은 벌집 쑤신 듯이 난리가 났다(경찰 조사 유무도 확인되지 않았다. 현지 기자들 사이에선 선수단과 함께 움직이는 강정호가 시카고 경찰에 따로 조사를 받기엔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오히려 미국 피츠버그 지역 매체 <피츠버그포스트가제트>는 “강정호는 혐의가 입증되기 전까지 출전 정지 등 징계를 받아선 안 된다”고 전하며 “(혐의가 입증되지 않은) 현재 상황에선 사건에 대해 성급하게 판단하는 것은 공정치 못하다”고 언급했다.
세인트루이스의 마무리로 활약 중인 오승환도 이런 생각에 동조했고, 국내 언론의 태도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정호가 최고의 활약을 펼치다가 이번 일로 큰 타격을 입는 것 같아 걱정이다. 아직 아무 것도 입증되지 않았고, 구단은 정호를 계속 경기에 출전시키고 있다. 즉, 이 사건에 대해 미리 예단하는 것은 옳지 못한 것 같다. 언론이 너무 많이 앞서나가는 경향이 있다. 선수 입장을 조금이라도 고려한다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 같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추신수도 맏형다운 모습을 나타냈다. 무엇보다 가족이 받는 상처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먼저 선수 가족을 생각해보자. 가족들이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겠나. 경찰에서 수사 중이란 사실만 알려졌을 뿐 그 어떤 것도 나온 얘기가 없는데 선수의 이미지는 크게 실추됐다. 미국 현지 언론도 정호를 보호하는데 한국에선 오히려 자극적인 기사로 도배가 되고 있다. 무죄추정원칙에 입각해 사실만을 정확히 전달해줬으면 좋겠다.”
미국 세인트루이스=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