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미리 준 후 각자 계산 어때?’ 잔머리가 기막혀!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제안한 ‘김영란법’이 오는 9월 28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일요신문]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이 지난해 3월 27일 제정돼 오는 9월 28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해당 법은 ‘공직자 등에 대한 부정청탁 및 금품 등의 수수를 금지함으로써 공직자 등의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앞서 나온 공직자에는 다소 폭넓은 범위의 국회, 법원, 학교, 언론사 직원 등 공적 업무 대상자 240만 명이 해당된다. 이들은 시행을 앞두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법망을 피해가기 위한 편법 역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김영란법을 둘러싼 관계자들의 천태만상을 알아봤다.
청탁금지법은 부정한 청탁과 금품 등의 수수를 금지하고 이를 처벌하는 법률로, 김영란 전 대법관이 국민권익위원장 시절에 만들어서 ‘김영란법’으로 더 유명하다. 김영란법의 핵심은 형법상 뇌물이 아닌 대가성 없는 금품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수년간 법 제정에 대한 논란이 지속됐고 마침내 시행을 앞두고 있다. 금품 수수를 금지하는 내용은 8조에 따라 동일인으로부터 1회에 100만 원 또는 매 회계연도에 3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 등을 받거나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법 저촉을 우려하는 이들 간에는 처벌을 피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언론사 직원 역시 각각 공공기관과 공직자에 포함됨에 따라 기자들을 상대하는 대기업 홍보실에도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기존 기업 홍보실에서는 기업을 홍보하기 위한 명목으로 언론사를 접촉하고 기자들에게 식사, 숙박 등의 편의를 제공하는 관행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언론인뿐만 아니라 대다수 공무원이 법 적용의 대상이기 때문에 회식 문화가 줄어들까봐 전전긍긍하는 음식점도 많다. 음식점 중에서도 한정식집과 고깃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은 “1인당 3만 원 제한이 너무 심해서 회식을 하러 오지 않을 것”이라며 “그렇다고 가격을 낮출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소리 높여 말하고 있다.
선물 세트의 가격도 5만 원으로 제한돼 있다. 선물 세트 수입으로 추석에 한 대목을 챙기는 농어민 역시 근심에 빠져 있다. 이들은 김영란법과 무관한 대상이지만 영향을 받게 생겼다. 농협에 따르면 국내 주요 농축산물의 40%가 명절에 집중 판매되고 과일은 50%, 인삼은 70%, 한우는 98% 이상이 5만 원 이상의 선물세트로 판매되고 있다. 농협은 2012~2014년 한우의 명절 매출 증가분은 8300억 원이었지만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절반인 4150억 원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선물 세트 가격이 5만 원으로 제한되면서 유통업계에서도 기존 선물 세트의 크기를 줄여 5만 원 한도에 맞추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백화점 관계자는 “백화점의 신선식품 선물세트는 고품질이 기본이라 10만 원 이상의 가격대가 대부분이다. 5만 원대로 낮추려면 용량을 대폭 줄여야 하는데 사실상 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른 방안으로는 백화점 납품 협력업체들의 공동 구매를 통해 단가를 내리는 방식이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음식업에서만 연간 8조 4900억 원의 경제적 손실이 날 것으로 추정했다. 또 골프업과 소비재 유통업의 손실 규모도 각각 1조 1000억 원, 1조 97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이 같은 걱정이 기우라는 의견도 분분하다. 법에 저촉되지 않기 위한 편법도 속속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김영란법 시행령에서 허용하고 있는 상한선은 식사대접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비 10만 원이다. 한 기업 홍보팀 관계자는 “저녁식사나 술을 대접할 경우에는 으레 1인당 3만 원을 넘기기 일쑤니 법이 시행되는 9월 28일 전까지만 약속을 잡고 있다”며 “기자들에게 현금을 미리 나눠주고 계산할 때는 각자 계산을 하는 방법도 생각해봤다”고 말했다.
예컨대 법 시행 이후인 10월부터는 접대 대금을 미리 지급한 뒤 선결제 후접대를 하거나 연말에 해야 하는 송년회를 9월 중에 미리 하자는 아이디어가 속출하고 있다. 또 다른 홍보팀 관계자는 “시행을 앞두고 7월 초부터 갑자기 우려하는 생각에 말들이 많아졌다. 사내에서도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에 대한 협의가 진행 중이다. 손에 꼽는 대기업들의 방침이 생기면 대부분 기업들이 암묵적으로 따라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비즈니스 관계에서 접대로 즐겨 이용하는 골프장의 경우에도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김영란법이 시행되기 전에 골프를 치려는 수요가 급증해 9월까지 예약이 다 차고 있다는 것. 통상적으로 회원제 골프장의 경우 주말 기준으로 그린피·캐디피·카트비·식사비 등을 합쳐 1인당 50만 원, 퍼블릭 골프장은 1인당 25만 원 정도다. 예약을 할 때에도 법망을 피해가기 위한 아이디어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해당 인원이 아닌 전혀 다른 사람들의 이름으로 골프를 치는 방법 등이 이에 해당한다.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을 공직자 외에 언론인이나 사립학교 교원 등으로 규정해 적용 범위를 지나치게 확장했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언론인의 법 저촉에도 이목이 집중되면서 역으로 언론사와 언론인이 광고주 등에게 접대를 할 경우에도 김영란법에 위반되는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언론사는 광고주들에게 골프 등의 접대를 통해 광고를 받아 왔기 때문이다. 이 역시 법에 위반되는 것으로 해석됐다. 금품 수수에 금품을 제공하고 제공받는 두 가지 의미가 모두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유명 언론사는 얼마 전 가을로 예정된 광고주들과의 골프행사를 취소하기도 했다. 법 시행 전부터 향후 적발대상으로 보이는 걸 예방하자는 차원에서다.
익명을 요구한 공무원 역시 김영란법 시행에 대한 우려감을 밝혔다. 그는 “개개인의 승진을 위해 동료들의 접대를 고발하는 내부고발자들이 많이 생길 것이라는 이야기도 돌고 있다”며 “또 앞으로는 불법을 피하기 위한 편법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부정 청탁이나 금품 수수가 음성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
‘국회의원은 제외, 기자는 포함’ 김영란법 입법과정 변질 논란 김영란법이 당초 취지와는 달리 국회 입법과정에서 변질됐다는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지난 2012년 당시 “공무원이 청탁에 대해 꼿꼿하게 처신하면 좋은데 모든 연줄을 동원해 청탁이 들어오니 얼마나 괴롭겠느냐. 이를 막기 위한 법이 필요하다”며 법 제정 취지를 밝혔다. 4년 후 제정된 법의 내용은 다소 바뀌어 있다. 국회의원이 선출직이라는 이유로 김영란법의 해당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게다가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은 공무원이 아니지만 공적 업무 종사자라는 이유로 김영란법 대상에 포함됐다. 청탁 예외 조항을 명시한 김영란법 5조에는 ‘선출직 공직자, 정당, 시민단체 등이 공익적인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 민원을 전달하거나 법령·기준의 제정·개정·폐지 또는 정책·사업·제도 및 그 운영 등의 개선에 관해 제안·건의하는 행위’를 부정청탁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하고 있다. 강효상 새누리당 의원을 포함한 22명의 국회의원은 지난 7일 김영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강효상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에는 ‘선출직 공직자들이 공익 목적으로 제삼자의 고충·민원을 전달하는’ 행위를 부정 청탁의 범위에 포함하도록 했고, 사립학교 교원과 언론인을 ‘공직자 등’의 범위에서 제외해 법 적용을 받지 않게 했다. 강 의원은 “원안에 포함됐던 이해충돌방지에 관한 규정이 삭제된 것은 물론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들이 공직자로 둔갑했다. 또 국회의원은 부정청탁을 해도 된다고 오해 받을 수 있는 예외조항이 삽입됐다”며 현행 법령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강 의원은 또 개정안 제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이 공익적 성격을 갖는다면, 변호사나 의사, 시민단체도 포함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