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협약 법무법인에 문제 있던 그 퇴직 간부가…
국토부의 부동산전자계약시스템은 6개월간 서초구 시범사업 실적이 단 3건에 불과하다. 국토부 홈페이지에 올라온 홍보 포스터.
이 사업의 첫 번째 단계는 부동산 전자계약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을 사용하면 거래 당사자들이 부동산 거래를 위해 대법원, 국세청, 금융결제원 등을 각각 거쳐야 했던 절차들이 부동산 통합 데이터베이스(DB) 안에서 하나로 통합된다. 공인인증서와 스마트폰 또는 태블릿PC을 통해 계약부터 각종 세금납부 등 부동산 관련업무 전반을 온라인에서 처리할 수 있다. 올해 초부터 서울시 서초구에서 시범사업이 시작됐고, 오는 8월엔 서울시 전역으로 시범사업 범위를 넓힌다. 2017년 상반기엔 광역시로, 하반기엔 전국으로 확대된다.
# 대규모 예산 투입, 반응은 없어
전자계약시스템 사업은 그동안 구상 단계부터 도입까지 총 11억 6000만 원이 투입됐다. 국토부는 지난 2014년 사업 타당성 검토 및 실행방안 컨설팅에 1억 6000만 원을 썼고, 2015년 3월 창조비타민 시범사업으로 선정된 이후 10억 원을 들여 시스템 개발을 마무리했다. 여기에 이 사업은 지난 2015년 12월 ‘전자정부지원사업’으로 확정되면서, 대법원 공동사업으로 54억 원이 추가로 편성됐다.
이처럼 거액의 예산이 투입됐지만, 현재 전자계약시스템은 ‘개점휴업’ 상태다. 이 시스템을 활용해 성사된 계약이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는 것. 서초구 시범사업의 실적은 해당 시스템 개발 관련자의 친인척이 진행한 계약 1건을 포함해 6개월간 단 3건이다. 이는 올해 1~6월 서초구 주택(아파트·단독·다가구·다세대·연립) 임대차·매매건수(1만 2233건)의 4077분의 1 수준이다.
여기에 공인중개사와 법무사 등 부동산 관련 업계의 호응도 얻지 못하고 있다. 전자계약시스템에 대해 업계가 각각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 법무사 측은 공인중개사만 전자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다는 점을 두고 “소비자의 편익보다는 공인중개사들에게 편향된 정책”이라고 지적했고, 공인중개사 측은 “매도인과 중개사의 세원이 노출될 수 있는 데다, 소비자 간 직거래가 증가해 현재 과잉 상태인 중개시장 침체가 가속화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특히 전자계약시스템은 지난 2015년 4월 사업계획 확정 이후 3개월 만에 시스템 개발에 착수해 6개월 만에 도입됐는데, 이 과정에서 관련 업계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이 안됐다는 주장도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시스템 정착에 대한 뚜렷한 대책 없이 빠른 성과만을 의식한 졸속 사업”이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 특혜 논란 ‘업무협약’
업계의 부정적인 반응과 지적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최근 국토부는 민간업체들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앞서 지난 3월 22일 국민은행, 신한카드와 금융서비스 협약을 맺고, 시범사업지역인 서초구에서 전자계약서를 작성한 뒤 앞서의 금융기관에 대출을 신청하면 금리를 인하하거나 대출 이자를 할인해주는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고 발표했지만, 실적이 전무하자 새롭게 내놓은 전자계약시스템 활성화 방안이었다.
국토부가 업무협약을 맺은 곳은 법무법인 한울, 한국무역정보통신(KTNET) 등이다. 국토부는 지난 6월 28일 이 업체들과 협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하면서 “전자계약시스템으로 부동산 계약을 체결하면 등기 수수료 30%를 할인해준다”고 홍보했다.
예를 들면 종이로 계약한 매매가 10억 원짜리 주택소유권 이전 등기 수수료는 현행 76만 원 수준인데, 전자계약시스템을 이용해 전자등기를 신청하면 23만 원을 절약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전자계약 과정에서 부동산 권리보험에 가입하면 등기수수료 할인율은 8%포인트 더 늘어난다. 이러한 업무협약 내용은 국토부 전자계약시스템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일주일가량 게시됐다.
문제는 전자계약시스템 이용만으로는 등기 수수료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할인 혜택은 전자계약 체결 이후 국토부와 업무협약을 맺은 앞서의 법무법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등기 수수료 가격을 관련 업계와의 협의 없이 국토부가 독단적으로 결정했다”며 “시범지역이 한정돼 있을 때라면 몰라도 서울 전지역, 전국으로 사업이 확대되면 한 업체의 독점 등으로 불거지는 부동산 업계의 시장교란이 심각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즉, 새로 도입된 정부 정책 활용 과정에서 국토부가 특정 업체에 대해 경쟁우위에 설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으로, 사실상 특혜나 다름없다는 의혹이 불거지는 이유다.
여기에 업계 관계자들은 부동산 권리보험 가입이 전자계약시스템 사업에 포함된 점에도 의문을 갖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권리보험은 미국에서 발달한 시스템이다. 미국은 모든 부동산 기록이 낱장으로 각각 보관돼있어 보험사를 거치는 게 편리하고 안전하다. 반면 한국은 등기부등본 한 장으로 모든 거래 내역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부동산 권리보험이 필수적이지는 않다. 이미 지난 2010년에 국내에 권리보험 제도가 도입됐지만 지금까지 부동산 시장에서 외면 받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또한 국토부는 부동산 권리보험에 대해 “매수인이 잔금납부 때부터 타인에게 소유권을 이전할 때까지 권리를 보장한다. 서류 위·변조, 무권대리 등 부동산 매매사기 시 매매대금 전액을 보상해 준다”고 설명했지만, 현재 공인중개사와 법무사도 공제보험에 가입해 부동산 거래 시 과실부터 매매 사기까지 의무적으로 보장해주고 있다. 특혜 의혹은 여기서도 불거진다.
부동산 전자계약시스템 개요. 국토부 홈페이지 캡처.
# 뇌물수수 혐의 전 국토부 과장, 전관예우 의혹
앞서의 의혹은 법무법인을 중심으로 한 협력 업체 2곳을 확인해보면 더욱 힘이 실린다. 이 업체들의 전반적인 업무 과정을 보면, 국토부와 따로 업무협약을 맺지 않았지만 전자계약시스템 사업에 사실상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먼저 A 보험사는 전자계약 체결 이후 부동산 권리보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법무법인 한울 관계자는 “법무법인에서는 보험 상품을 다룰 수 없어, A 보험사와 협력해 고객에게 보험 상품을 안내하고 있다. 전자계약 체결 이후 전자등기 신청 과정에서 보험 가입 여부를 묻고 동의하면 앞서의 보험사를 안내해주고 있다. 이곳을 통해 보험에 가입하면 추가로 등기 수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국토부와 업계 관계자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A 보험사는 보험 상품 판매 건수 당 일정부분의 수수료를 법무법인 한울에 지급하기로 돼 있다.
또한 앞서의 법무법인, A 보험사는 보험 가입에 앞서 허위 매물 등을 판단하는 한 부동산 권원조사 업체와도 협력 중이다. B 권원조사 업체는 등기부등본 등을 통해 매물 진위 여부를 파악하고 문제가 없으면 B 보험사에 조사 결과를 알린다. 보험사는 이 결과를 토대로 보험 상품 판매 여부를 결정한다.
특히 이 3곳의 업체는 한 사람을 중심으로 연결돼 있다. 국토부의 전관예우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앞서의 법무법인의 전무 가운데 한 명인 C 씨는 전 국토부 부동산산업과장으로, 지난 2011년 6월 부동산투자신탁회사인 골든나래리츠로부터 수천만 원 상당의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고 구속돼 퇴직했다. 그는 퇴직 이후 지난 2012년 2월 부동산 권원조사 업체인 B 사의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비슷한 시기 법무법인의 전무가 됐다. B 업체는 지난 2010년 설립 이후 한울과 협력을 맺으면서 2014년 기준 매출액 17억 원을 기록했다.
또한 앞서의 법무법인 홈페이지를 보면, 지난 2015년 A 보험사 계열의 호텔에서 B 업체와 합동 송년회를 열었는데 C 씨가 직원들 앞에서 인사말을 하는 사진도 게시돼 있다. 여기에 법무법인의 또 다른 고문과 이사는 각각 B 업체의 설립 시 대표이거나 현재 감사로 재직 중이다.
# 국토부 “문제될 것 없다”
국토부 확인 결과 업무협약 기간이나 특별한 내용은 협약서에 명시돼 있지 않았다. 구체적인 협약 내용을 물었지만 전자계약시스템 사업 전반을 담당하는 국토부 관계자는 “전자 등기를 취급할 수 있다는 내용이 전부”라고 답변했다. 그런데도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앞서의 관계자는 “업무협약은 특정 법무법인에 대한 특혜라기보다 시스템 활성화를 위한 이벤트에 가깝다. 등기 수수료 할인 등 경제적 혜택은 홍보의 한 방법”이라면서도 “시스템 구축 과정에서 업계 관계자들을 만나 논의하면서 소개료, 알선료 등을 소비자가 부동산 거래 시 관행으로 지급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전자계약시스템을 활용하면 이러한 불필요한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또한 앞서의 전관예우 의혹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업무협약 업체를 모집하지는 않았다. 시스템 구상 시점부터 공인중개사협회와 법무사협회 등에 미리 사업 내용을 설명하고 여러 가지 방안을 논의하려 했지만, 도입 이후까지 반응이 좋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법무법인 한울이 지난 3월, 먼저 보험회사와 협력해 등기수수료 30% 할인 의견과 함께 업무협약을 제안했고, 해당 업체가 지난 4년간 부동산 등기 업무를 담당해왔다는 점을 고려해 국토부가 검토 후 받아들인 것”이라며 “다만 협의 과정에서 한울 측에 중개사, 법무사협회나 또 다른 업체가 제안을 해오면 언제든지 교체할 수 있다고 강조했고, 한울 측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울을 통한 전자 등기 신청도 전관예우와 전혀 관련이 없다. 이 업무는 의무가 아니다. 전자계약 과정에서 소비자에게 먼저 연락처 등 개인정보 제공 여부를 묻고 동의를 해야 등기 신청 업무가 진행된다. 보험도 마찬가지다. 특혜와 반대로 소비자 주권이 훨씬 강화됐다고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전히 업계가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지속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국토부의 해명에도 공인중개사 협회나 법무사 협회 등은 업무협약 과정에서 통보 형식으로 공문을 받았을 뿐, 구체적인 논의 없이 결정됐다며 반발하고 있다. 여기에 국토부가 나서 특정 업체를 광고하고, 시장 가격에 관여하고 있다는 의견이 거세지면서, 국토부와 업계의 갈등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개점휴업’ 배경엔 정부-업계 갈등도 국토부는 지난해 전자계약시스템을 구축해 올해 초부터 시범사업을 진행해 왔다. 하지만 전자계약을 통해 거래가 성사된 사례는 적다. 시범사업 기간임을 감안하더라도 낮은 수치다. 이러한 이유에 대해 제도 정착에는 시간이 걸리고 홍보가 부족했다는 점이 첫 번째로 꼽힐 수 있지만, 국토부와 부동산 관련 업계의 갈등 때문이라는 지적도 따른다. 실제로 공인중개사협회는 국토부가 부동산 전자계약시스템을 퍼뜨리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거래 당사자들의 거래내역이 낱낱이 드러나 ‘거래절벽’이 나타날 수 있고 △공인중개사가 개입하지 않는 직거래가 늘어날 수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한다. 중개사협회가 무조건 면대면·서면 등 기존의 종이 계약을 고수하겠다는 건 아니다. 투명하고 절차를 간소화하는 전자계약시스템의 취지에는 공감하고 있으나, 전자계약시스템 운영·관리는 정부가 아닌 협회가 맡아야 하고 공인중개사를 통해서만 전자계약을 맺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인중개사협회 측은 “정부가 거래 일체를 투명하게 들여다보게 돼 오히려 거래가 침체될 수도 있다”며 “지금도 중개 현장에선 거래계약서 작성 전 단계까진 전자적으로 절차가 진행된다. 지금 쓰는 것을 보완해도 된다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법무사협회 측도 중개사협회 측과 마찬가지로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소비자 편익에는 의문이라는 입장이다. 한 협회 관계자는 “현재 전자계약서는 공인중개사만 작성할 수 있다. 일부 거래 당사자들은 부동산이 전재산인 경우가 많아 법무사, 변호사를 통해 법률 자문을 거쳐 거래를 진행한다. 하지만 전자계약시스템은 법무사 등의 접근 자체가 불가능해 계약서 법률 검토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된다”며 “계약서 작성 이후 법률 검토가 가능해 하자가 발생하면 새로 계약서를 작성하는 불편이 초래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을 두고, 국토부는 충분히 업계에 설명을 진행했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문을 보내고 수차례 만나 논의를 했지만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업계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고 협력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지금도 지속적으로 접촉하며 의견을 나누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