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고지 소홀 지적…혈전 위험 모르고 계속 복용하는 경우 많아
이후 지난 5월 인천의 한 산부인과에서 야스민을 처방받은 한 환자가 사망했다. 제약업체 바이엘코리아와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이 사망자의 사인을 조사 중이다. 이번 사망이 야스민 부작용에 따른 것인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전에 사망했던 환자의 경우 복용을 유의해야 했던 대상이었지만 어떤 상담도 받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사망 사례가 제대로 접수되고 있지 않아 피해 정도가 확인되지 않은 가운데 이 시간에도 많은 여성들은 야스민을 복용하고 있다.
바이엘에서 제조하는 경구피임약. 사진=바이엘코리아 제공
야스민을 복용하던 환자의 사망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2년 춘천의 S 병원에서도 세 달 치 야스민을 처방받은 A 씨(당시 26세)가 한 달 만에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차는 증상을 보이다 사망했다. A 씨의 사인은 야스민의 부작용으로 나타날 수 있는 폐색전증이었다. 국내 한 산부인과의원에서 여의사가 야스민을 복약한 후 하지마비 증상을 보인 것으로 보고된 사례도 있었다.
바이엘코리아 관계자는 “이번 사망사건의 경우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이고 이 환자가 당시 다른 약도 복용했기 때문에 사인이 야스민 복용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는 조사가 끝나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야스민 복용 환자 중에서 사망 사례가 회사에 보고된 것은 두 건이 전부”라면서도 “부작용 등이 병원이나 식약처로 접수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어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야스민은 난포를 성숙시키는 호르몬인 고나다트로핀을 억제해 배란을 막고 자궁 경관의 점액과 자궁 내막의 변화를 일으키는 프로게스틴 유도체다. 21일 동안 매일 같은 시간에 1정씩 복용하고 그 이후 일주일 동안에는 약을 먹지 않는 복용법을 따라야 한다. 이 다음에도 복용을 하려면 계속해서 처방받아 구매하면 된다.
야스민은 피임을 목적으로만 복용할 수 있다. 야스민과 같은 성분을 포함하고 있지만 함량이 조금 다른 야즈의 경우에는 피임뿐만 아니라 여드름 치료에도 사용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약처에 따르면 야스의 경우 국내에서는 보고된 부작용 사례는 없지만, 일본에서 3건의 사망사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가 되는 성분은 야스민의 주성분인 ‘드로스피레논’인 것으로 알려졌다. 드로스피레논 함유 피임약은 다른 피임약보다 혈전증 발병 위험이 높았다. 미국 의료 클레임 데이터 연구에 따르면 야스민에 함유된 호르몬인 드로스피레논을 복용한 여성이 다른 호르몬인 레보노르게스트렐을 복용한 여성에 비해 정맥 혈전색전증 위험이 2배나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혈전증은 쉽게 말해 피가 응고하는 질환으로 심장 내 혈관에서 응고하면 심근경색이 유발될 수 있고 폐 혈관에서 응고할 경우 폐색전증의 위험이 크다. 야스민 사용상 주의사항에 따르면 혈전 관련 이상반응(부작용) 발생 시 복용을 중단하라고 돼 있다.
또 혈전 정맥염, 폐색전증, 심근경색 등의 이상반응이 경구피임약 복용과 관련이 있다고도 명시돼 있다. 복용에 위험성이 내재돼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바이엘코리아 측에서는 이상반응을 허가사항에 기재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해당 약은 약국에서 판매하고 있지만 의사와의 상담 후에만 야스민을 처방받을 수 있다. 독일 본사와 국내에서 제작한 복용법을 확인해보니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처방을 받으라는 권고사항이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 병원에서는 피임약을 처방할 때 어떠한 상담 과정도 진행하지 않았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여성호르몬 제제를 복용할 때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부작용이 혈전하고 유방암이다”며 “야스민의 경우 드물게 색전이 일어날 수는 있는 약인데 논문들을 살펴봐도 주의해야 할 질환을 갖고 있지 않다면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높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약을 처방하는 병원에서 부작용 고지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환자 본인이 어떤 질병을 갖고 있는지 모를 수가 있는 상황에서 이전 병력이나 가족력에 대해 상담이 없이 고가의 처방전을 발급해주는 것으로 병원의 의무는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은 김 아무개 씨는 “야스민의 부작용이 걱정돼 의사에게 괜찮냐고 물어봤지만 ‘함량이 적은 야즈를 먹으면 문제없다’는 이야기만 들었다”고 말했다.
바이엘코리아 관계자는 “회사 측에서는 의사들에게 꾸준히 적극적으로 환자의 병력 및 가족력을 조사하고 복용 중의 상태에 대해서도 검진을 받게끔 안내해달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권유사항이라 강제성은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A 씨는 평소 편두통과 자궁내막근종을 앓아온 고위험군 환자였지만 병원에서 의사가 야스민을 처방할 때 과거 병력을 묻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유가족들이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설명의무 위반과 사망 사이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내렸을 뿐이다.
해외에서도 야스민와 야즈 등 경구피임약의 부작용으로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에서도 부작용 문제로 지난해까지 9000여 건의 부작용 관련 소송이 제기됐다. 프랑스의 한 여성은 지난 2012년 야스민을 복용한 후 뇌졸중이 발생했다며 바이엘을 상대로 소송을 벌였다. 이에 프랑스 정부는 혈전을 일으킬 수 있는 피임약에 대해 보험금 지급을 중단하면서 성분의 위험성을 인정했다.
바이엘 독일본사에서 작성한 2011년 연간보고서를 확인해보니 당시 1만 1300여 건의 제품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었다. 원고는 야스민 등의 경구피임약을 복용한 여성들이었다. 보고서에는 이들이 “바이엘에서 부작용에 대해 알고 있었어야 했다. 또 바이엘은 환자들에게 부작용을 알리고 경고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해 민형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며 “법적 처벌과 보상을 원한다”고 주장했다고 내용이 담겨 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