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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일요신문] 임병섭 김재원 기자 = 2005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김선향 시인이 12년 만에 첫 시집 ‘여자의 정면’(실천문학)을 펴냈다.
시인의 첫 시집은 ‘여성의 시에서는 현실인식이 부족하다’는 세간의 편견을 훌쩍 뛰어 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시가 다뤄왔던 현실의 영역이 누구의 세계였는가를 되묻고 있다.
한나 아렌트를 연상시키는 그녀의 여성적 주체의식은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얼굴을 ‘아무나’가 아닌 구체적인 실존을 거느린 상황 속의 얼굴로 되살려낸다.
여성 정체성 범주에 문학을 얽매이지 않고 여성과 남성이 함께 유대를 이룰 수 있는 풍요로운 교감의 세계를 창조하면서도 여성의 근본적 존재 조건으로서의 신체에 대한, 그 근본적인 고통으로 점철된 사색 속에서 시인 자신의 삶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도 그 근시안적 관심에 갇히지 않고 보통명사로서의 여성의 삶과 현실과 고난과 사랑에 대해 새로운 삶의 단계를 노래하고 있다는 평이다.
일일이 나열하지 않더라도 우리 문학사에는 중요한 여성 시인들이 있었다. 시인은 최승자, 김혜순으로 대표되는 여성시의 계보를 따르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자리를 확보한다. 문학평론가 방민호는 “고통스러운 신체를 예술로, 절망을 연꽃으로 승화시킨 프리다 칼로의 그림들”이 떠오른다고 평한다. 그만큼 시인의 시는 문제적이며 일상 속에 내재된 고통을 드러내는데 거침이 없다.
“너도 똑같아, 반쪽만 보여주는 것들!
화가 정수리까지 치민 나는 과도로 물고기 배를 갈라
양변기에 패대기치고는
물을 쏴아, 내려버렸지 그런데 글쎄
빨려 들어가는 구피 눈동자에 그녀의 정면이 박혀있었던 것 같아
허겁지겁 손을 양변기 속으로 집어넣고야 말았는데
그녀의 정면은 정말 무엇이었을까”
― ‘그녀의 정면’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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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끝내 알 수 없는 이면은 언제나 존재한다. “반쪽만 보여주는 것들”이 기만적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어쩔 수 없다. 웃음의 이면에는 슬픔이, 사랑의 이면에는 증오가 있는 것처럼, 오히려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아는 게 중요하다.
시인은 자신의 정면을 보여준다거나 다른 이의 정면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정면은 정말 무엇이었을까”라는 질문을 통해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을 사물이나 일상 속에서 현실의 비밀을 찾는다.
이를테면 집 밖으로 ‘떠돈다’고 여겨지나 실상은 매 순간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숱한 여성들을 한 명씩 꼽아보고(‘여자들’),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친구의 안부를 살피며(‘소금 호수’), 먹고 살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중년 남자에게 어린 여인의 “후드득, 떨어지는 눈물”을 포착하고(‘손등’), 수술한 남편 대신에 혼자서 생선 장사를 하는 “프엉 씨”의 “발개진 얼굴”에서 “하노이의 오월을 붉게 물들이는 꽃”(‘붉은 꽃, 흰 꽃’)의 기운을 발견한다.
독자는 시인의 시를 통해 독자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소외시키기 일쑤인 우리 현실을 새삼스레 바라보게 된다.
시인은 시라는 ‘외줄’에 끈질기게 매달린다. 시인에게 시를 쓰는 일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에 버금가는 일”이다. “오랜 인후염으로 목소리는 갇혀버렸고 결막의 혈관이 터져 한쪽 눈엔 피가 그득 고여 있고 아이들은 울며 매달리다가 마침내 깨물기까지 ”하는 상황에서 시인은 ‘시’를 포기하지 않는다. 외면하지 않는다, 가난한 자들을, 소외된 자들을, 슬픈 자들, 그 속에서 분명하고도 입체적으로 “여자의 정면”이 드러난다.
이 시집은 한국 페미니즘 문학의 또 다른 가능성을 집요하게 묻는다. 시인은 시가 무엇이어야 하느냐는 당위를 따라나서지 않고 시가 무엇일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묻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김선향 시인은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충남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수원시다문화센터에서 여성결혼이민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사월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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