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곤 공항에 흐르는 짧은 이별과 영원한 이별
한국 청년 은과 미얀마 처녀 산. 두 사람이 부족의 의복을 입고 약혼식을 치렀다.
이번에는 결혼허락과 약혼을 위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 부족의 청혼풍습을 몰라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산의 부모님은 북부에 삽니다. 이 부족의 혼인풍속은 우리의 전통혼례처럼 신랑측 어른들이 신부쪽 집에 가서 데려오는 것입니다. 신부집 앞에 가서 준비한 우유와 설탕, 빵들을 들여보냅니다. 청혼을 수락해야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 순간이 중요합니다. 친척들과 마을사람들이 이것을 지켜봅니다. 그리고 양가가 이 우유를 나눠 마십니다. 꼭 준비해야 할 선물은 이불입니다. 이곳은 고산지대여서 춥기도 하지만 딸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배려입니다. 신부의 형제와 친척, 마을사람들에게 간단한 성의의 선물이 나눠집니다. 그후 양가가 모여 약혼식을 합니다.
이 절차를 잘 치러낸 두 사람입니다. 산은 교육자 집안의 3남6녀 중 셋째입니다. 아버지가 이 지방에서 고등학교 교장을 지내셨습니다. 은은 약혼을 하고 내려오면서 산으로부터 선물을 받았습니다. 부족을 상징하는 무늬가 있는 넥타이와 가방입니다. 이제 10월에 신부의 나라에서 먼저 결혼식을 치를 예정입니다. 딱 100일이 남았습니다. 곁에서 보니 준비할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주변을 보면 국경 너머의 결혼은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우선 어느 나라에서 살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또 상대방 언어를 배워야 합니다. 음식도 적응해야 합니다. 자녀교육도 어디서 할지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문화와 관습입니다. 종교가 다를 경우는 더 심각합니다. 한국과 미얀마는 관습이 아주 다릅니다. 이런 고민들을 곁에서 지켜봅니다. 두 사람은 사랑으로 또다른 ‘국경’들을 넘는 중입니다. 대견스럽습니다.
7월 19일은 미얀마의 공휴일. 독립의 아버지 아웅산 장군이 암살당한 날이다. 아웅산 수지 여사가 추모기념행사장에서 헌화하고 있다.
양곤 국제공항의 짧은 이별을 보며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국제공항에 도착하길 가장 바라던 사람. 이젠 이 나라를 이끄는 자리에 있는 아웅산 수지의 남편 마이클 아리스입니다. 수지 여사의 오늘이 있기까지 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티벳불교의 권위자이자 이른 나이에 옥스퍼드대학 교수로 발탁된 총명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부인이 없는 자리를 대신하며 두 아들을 돌보았습니다. 부인의 글을 모아 책을 낸 사람도 남편입니다. 미얀마의 정치적 현실을 세상에 알린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헌신의 일생입니다. 물론 수지 여사도 자신의 꿈을 접고 전업주부로 산 시기가 있었습니다.
말기암으로 죽어가던 남편을 차마 볼 수 없었던 수지 여사는 당시 영국대사관에서 동영상을 하나 찍었습니다. 오랜 가택연금 시절입니다. 남편이 좋아하는 옷을 입고 머리에 장미를 꽂았습니다. 작별의 인사를 대신하는 자리이지만 ‘이 시간들을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당신’이라며 눈물어린 사랑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이 동영상은 남편이 죽은 후에 전달되었습니다. 남편의 유언은 ‘아내가 자랑스럽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소식을 들은 수지 여사는 ‘그 무엇도 나에게서 남편을 빼앗아갈 수 없다’는 말로 슬픔을 삭였습니다. 인간의 유한한 사랑를 생각하면 때론 눈물이 납니다. 그러나 인간의 사랑 안에도 헌신, 기다림, 용서, 아픔, 용기 등이 스며있기에 무한하고 고귀한 힘을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양곤 국제공항을 산이 혼자 또박또박 걸어나옵니다. 조용하지만 결연한 모습을 보니 ‘The power of love’의 노래귀절을 보는 듯합니다. ‘우리는 지금 무언가를 향해 나아갑니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가끔 지금의 내 모습에 놀라기도 하지만 언제나 배울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요. 사랑의 힘에 대하여.’ 그래서 무척 보고싶을 거예요. 그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이제 남은 100일 동안 준비할 일들을 서로 얘기하다 돌아가는 자리. 제가 은에게 문득 카톡을 보내고 싶어집니다.
“비행기를 기다릴 은에게. 지난 밤, 네가 내게 많은 생각들을 털어놓은 거 고맙게 생각한다. 아무것도 걱정하지마. 두 사람의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 그게 인생 최강의 힘. 또다른 ‘국경’도 다 넘을 수 있다. 어느 나라서 사느냐도 뭐가 중요할까. 두 나라 사람이니 두 나라에서 살아야지. 태어날 아이도 두 나라를 똑같이 사랑하게끔 가르쳐야 하고. 상대방의 나라를 서로 좋아하는 둘은 너무 잘 어울려. 산이 어학원에서 한국어 열심히 공부하니까 곧 깊이 있는 대화도 나눌 수 있을 거야. 결혼하면 한국에서 우선 산다니까 100일 동안에는 내가 가끔 특별수업을 할게. 시부모님 대하는 말, 남편에게 쓰는 말투, 서로 다른 문화와 관습 이해하기 등. 많이 찾아서 알려줄게. 잘 다녀와.”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